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 또는 이무기와 대적하며 칼로 일도양단하려는 모습?
어찌됐든 이 녀석(나무)과는 실로 우연찮은 기회에 운명처럼 만났다. 2023년 2월27일 오후.
만날 만한 운명이면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가 보았다.
저 아래 광덕산 오르는 길을 이 녀석은 매일같이 수십년을 바라봤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등산객이 길도 없는 산 위 이 녀석을 찾을 일이 무어 있겠는가.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은 그저 요행이었다.
운초 김부용 묘에서 연관된 김이양 대감묘 찾기. 그리고 그 둘을 잇기.
광덕사 뒷편 대감묘에서 운초묘로 가는 산길을 찾는다고 세월에게 '하루'를 빌렸다. 한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난 길도 없는 산길을 헤메이다 심신이 지친 채 나약한 인간의 전형처럼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곤 가파른 길을 더듬어 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30도쯤 빗각으로 저 멀리 이 녀석이 보였다. 첫눈에 주변의 수많은 나무와는 다른 '특별함'에 끌렸다고나 할까.
다가갈수록 괴이한 생김새에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얼굴가득 미소가 그려졌다.
시골마을마다 마을 입구에 한두그루씩 존재하는 200년~300년쯤 되어보이는 보호수와 같았는데, 그들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왜소하다 보니 '100년'이나 묵었을까 싶다. 왜 너는 산 속에 외톨박이로 이리 존재감 뿜뿜 품어대고 있는가 말이다.
너의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새겨넣는다.
달팽이 얼굴 같기도 하고, 투구벌레 같기도 하며, 코뿔소 코 같기도 한... 모습부터 몸 한켠에 크게 비워놓은 사연까지..
보는 각도에 따라 카멜레온인 양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너.
나 또한 사람마다 나를 보는 그 눈동자엔 다른 모습으로 비쳐질 테지. 그래, <나는 나다>라고 하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일곱빛깔 스펙트럼도 나란 사실을 새삼 주지시킨다.
'안녕 나무야' 인사하고 벗어나는 나의 눈에 미처 보지 못한 또다른 그가 보인다.
바위 위에서 뿌리를 뻗고 자라났다는 사실, 그 사실을 말이다.
너의 특별함은 태생적인 환경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구나.
바위를 먹고 자라난 그 세월, 그렇다면 100년이 아닌 1000년일 수도 있는 고단한 삶.
그래도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내는' 삶을 살아온 너.
세계최고의 자살국가라는 오명, 그 이전에 '산다'는 개념을 너에게서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네 삶이 조금은 더 진중해질까 싶다.
광덕에서, 광덕산에서, 나만은 오다가다 너를 기억할 테니, 때마다 눈이라도 마주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