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곡식은 곧 농부의 삶이다. 농부는 한 알의 씨앗이 싹트고, 열매 맺고, 다시 씨앗을 잉태하는 영속의 삶을 함께 한다. 디지털 사진의 픽셀은 바로 씨앗의 유전자를 닮았다. 디지털 사진의 최소단위인 픽셀과 곡식의 씨앗이 오버랩되는 세상. 농부의 씨앗처럼, 나는 픽셀과 픽셀의 이산적인 수치를 넘나들며 사진을 회화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서성강
서성강 사진작가가 ‘콩’을 소재로 삼은 사진전을 연다.
오는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천안예술의전당 1층 문화센터를 그의 전시공간으로 삼았다.
1980년에 사진에 입문하고 어느덧 44년의 장구한 세월을 보냈다. 그간 한국사협 이사, 충남협회장, 천안지부장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1994년 첫 개인전을 시작하고 201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5회 ‘빛이 칠한 색깔’까지 작품활동도 꾸준하다.
▲ 작품 앞에서.
이번 6회 개인전이 50여 점의 ‘콩(bean)’ 사진작품이 된 건 우연과 필연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의 사진작업 세계에서 콩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는 활동가들에게 있어 감옥과 같았다. 어느날 밥을 먹는데 콩이 눈에 확 들어왔다는 그. ‘콩을 찍어보자’는 생각은 숟가락도 던져두고 바로 작업에 열중했고, 그같은 작업과정을 거친 사진은 도예가인 아내에게도 새롭게 보였다.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eureka)’를 외칠 수밖에.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작품들은 코로나19가 선사해준 ‘아이디어’이자, 앞으로도 다양한 곡식시리즈로 작가의 작품 정체성을 규정하는 방점이 되었다.
서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콩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과 색채를 차용해 회화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이선영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그림과 사진의 경계’로 보았다.
모호한 영역은 새로움 또는 색다름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며 “콩 알갱이들의 형태를 색으로 덮으면서 단색화 같은 외관을 가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단색화가들이 자기만의 색이 있다면 서성강의 전시현장은 단색작품들로 이루어진 다색의 향연”이라고 정의했다.
▲ 서성강 사진작가는 촬영한 사진을 색 변환부터 인쇄까지 직접 한다.
그에 따르면 같은 콩도 배치나 밀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
다양한 질감이 나타나고, 그와 연동되는 색감의 차이가 만들어진다. 수많은 변형을 거쳐 곡물 특유의 알갱이의 느낌이 해체된다. 중심에 밀도가 있는 배치는 핵폭발이나 세포분열 같은 모습이 연상된다.
예술적 순수는 오염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염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관념적 환원에 의해 빈약해진 순수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색을 예술적으로 변질시킨 서성강의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