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번밖에 다니지 않는 기차.
새벽같이 기차를 타기 위해 매일 선밥을 먹고 인적없는 산길을 40분이나 걸었다. 기차를 타고는 30분을 갔었나? 아니 1시간 가까이 갔던 느낌. 기차에서 내리고는 또다시 30분쯤 하염없이 걸었다. 그곳에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차시간까지는 ‘까마득히’ 남았다. 무작정 학교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기차가 올 때까지, 기차가 떠나기 전까지. 충북 제천 박달재 도장골에 살던 소녀는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생애 가장 따스한 날들이었다.
천안문인협회에 소속된 수필가 김용순(66)씨. 그가 기억하는 어린 날이다.
인기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김고은을 기다리며 이런 대사를 날린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 모든 날이 좋았다>고.
▲ 박상돈 천안시장과 함께.
그가 2023년 12월16일 천안문학관(관장 이정우)이 주는 ‘제2회 천안문학상’을 수상했다.
“난 그런 상 필요없어. 열심히 글을 쓰면 그만인 걸” 하는 작가들이지만, 막상 수상이라도 하게 되면 입이 귀에 걸린다. 글을 알아봐 주고, 그 글을 쓴 작가를 알아봐 주는 상을 누가 마다할까.
1997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한 작가는 그간 충남문학상, 수필과비평 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번, 천안 내에서는 유일한 천안문학상을 받게 됐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수상은 그를 춤추게 했다. 요즘은 항상 웃고 다니기에도 바쁘다. 글과 인연을 맺고 글을 써오길 참 잘한 것 같다.
▲ 대학때 학보사 기자로 활동 당시 학보사에서 주관한 교내백일장. 세월이 언제 이리 흘렀을까.
▲ 군부대 일일입대했을 때인가 보다. (뒷줄 한가운데)
그는 대학 학보사 출신이다. ‘우쭐’ 하는 마음으로 대학을 활보했다. 교대를 희망했던 아버지의 소망을 들어드리지는 못했지만 식품공학에 철학, 국어국문학 등을 공부했다.
1992년에는 천안삼거리 주부백일장에서 ‘동행’이라는 주제로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동행의 주인공이 대부분 ‘남편’인데 그가 ‘아버지’를 등장시킨 것이 신선했나 보다. 소재의 신선함도 있겠거니와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고 대학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인 학보사 출신. 이미 탄탄하게 잡힌 그의 글쓰기가 뒷받침되지 않았을까 싶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그는 ‘아담한’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
“경영자로는 능력이 없었나 봐요.”
강의실 세 칸에서 60세가 되기까지 굴곡없는 세월을 보낸 것을 겸손히 이른다.
돈 벌자고 한때 입시학원을 마구 키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그리 모험가도 아니었고 부자를 꿈꾸지도 않았나 보다. 아버지가 서당 훈장을 하셨으니 그 딸이 어디 갈까.
글을 쓰면서 만족감이 크다는 그. 국정교과서에 그의 글이 실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오랫동안 분발하기도 했다. 목표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멋진’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열정 가득하다. 그리고 이번 천안문학관상을 받게 된 ‘봄으로 오시는 당신’은 한발 다가선 느낌을 받는단다.
“A학점은 주고 싶어요.” 배시시 웃는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짬짬이 남아도는 시간, 문인협회 일에 매달렸다.
60이 되어 학원을 폐원하면서는 온통 문단 일과 글쓰는 재미로 살아간다. 충남문협, 천안문협, 신안수필문학회 활동도 ‘바지런히’ 하고 천안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8년째 ‘수필반’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이든 문화원이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어요. 돈을 받고 안받고는 둘째 문제에요. 문학을 통해 내 삶이 풍요로워졌듯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으니까요.”
‘문학’을 만나서 참 감사하다는 그. 마음에 드는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는데, 그는 평생 문학이라는 ‘좋은 친구’를 사귀고 있으니 시샘이나 당하지 않을까 행여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