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詩)’를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래도 시인, 아니면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시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닐까. 다 틀렸다. 천안에 있다.
천안 동면 화계3길의 작은 시골마을. 옛날모습의 허름한 집에 떡하니 『화산시문학관』간판이 걸려있다.
‘똑똑똑’. 현관을 두드리니 빼꼼 고개를 내미는 주인. 임채진(75)씨가 차분하게 손님을 맞는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시를 읽었을 거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작디작은 거실은 약간 어둡고 다소 을씨년스럽다.
최근 길을 가다 갑자기 쓰러지면서 ‘죽다 살았다’는 그. 병원에서 눈을 떠 보니 몸에는 커다란 수술자국이 생겨있더란다.
“배에서 정맥이 터졌다나 합디다. 집에 혼자 있다 쓰러졌으면 죽었을 거에요.”
눈도 잘 안보인다는 그는 고급 외국차라며 주섬주섬 손님대접을 했다.
4만3000권쯤 된다는 시집들. 다 읽어봤다는 시집이 집안 구석구석 빼곡하다. 같은 시집이 여러권씩 있기도 하지만 시집 한 권을 여러번씩 읽기도 했으니 실제는 10만권도 더 읽었을 테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시 읽는 것이 좋았으니깐, 평생 그것이 낙이었으니깐.”
66학번의 그. 수학과 출신인데 일본회사를 다닌 인연으로 결국 통역이나 번역일을 하게 됐다. 시가 좋다 보니 대학때 자연스레 문학써클에서 활동하게 됐다. 시인이 될까. 직접 시도 써보았다. 그런데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좋더란다.
언제부턴가 시집이 한권한권 쌓였다. 눈 앞에 좋아하는 시집들이 빼곡이 꽂혀있는 것을 보니 조금더 조금더 욕심이 났다. 이쪽부터 저쪽까지. 책꽂이에, 책상에, 바닥에 시집이 쌓여갔다.
그를 보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생각난다.
맹자 어머니의 자식교육. 묘지 근처로 이사가면 하루종일 묘지에서 놀고, 시장 근처로 가면 시장에서 노는 맹자를 보고는 학교 근처로 이사가서 맹자를 훌륭히 키워냈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주변환경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말인데,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이 수집가들이 많은 인사동(서울)이다 보니 헌 책도 사기 쉽고 해서 시집을 수집하는 취미가 붙은 거 같습니다” 한다.
만약 인사동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면 ‘시집 수집가’가 단연코 안되었을 거라고.
시집을 구하는데 재미가 붙다보니 은근히 중독성. 오래 전인데도 1000만원씩 두 번을 뭉텅이로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구입한 방식도 다양하지만, 구입한 시집도 원고지에 직접 쓴 시까지 다양하다. 어느덧 4만권이 넘어가면서 조금만 과장하면 ‘없는 것 없이 다 있다’는 수준이 됐다.
여기서 그의 말이 걸작이다.
“구입한 시집은 다 읽어봤어요. 읽고 또 읽으며 손때가 묻은 시집들도 더러 있지요. 자랑하려고, 가게라도 차리려고 모은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읽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미쳐야 미친다’는 그의 말대로, 시집에 미치지 않고서는 모으기도, 다 읽기도, 게다가 몇 번씩 읽고 또읽기도 심히 어려운 일.
2007년쯤 서울에서 31평 공간으로는 더 이상 책을 보관할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러, 그리고 서울도 지겨워질 때가 되어서, 동생 친구의 소개로 여기 동면에 내려왔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전혀 없었기에 동면의 이곳 또한 공간이 비좁기는 마찬가지. 시집을 이중삼중으로 꽂아놓고 그래도 부족해 한줄높이로 쌓아놓기도 했다. 작은 골방마다 시집들로 그득.
▲ 분류해 묶어놓은 책들도 가득하다.
보관창고같은 문학관이니 호기심을 가진 문인들이 간간이 화산시문학관을 찾아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아, 천안도심 한가운데 널찍한 단독건물을 사들여 ‘시 문학관’을 두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천안의 명소에 그치지 않고 충남도의 명소, 아니 전국의 명소로 사랑받는 곳이 될 터인데. 아직 그같은 인연은 남겨 둔 채다.
임채진씨는 ‘내가 언제까지 살까 몰라’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얼마 전 큰 일(죽을고비)을 겪고서는 더욱 생각이 많다. “시집이 잘 시집가면 좋겠는데”, “내가 사라진다고 이 시집들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잖아, 아까워서”. 그는 어디에 어떤 시집이 있는지 4만여권의 시집을 다 꿰찬다.
웬만한 도서관 사서보다 뛰어나다. 애정이 있는 만큼 시집이 안쓰럽다.
시집을 이야기하며 그의 눈이 무척 맑고 명료하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요. 한편으론 별 욕심이 없어요. 시집을 모아놓는 걸로 내 역할은 끝이에요. 누군가 이 시집들을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소통시켜주면 좋겠어요.”
한 권씩 모으면서 읽고 또 읽어보았다는 그. 유명하지 않은 무명시집은 그것대로 작가의 심혈이 깃들어 있으니 귀하기는 매한가지라는 그.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읽어주고 귀하게 대했다는 그다.
“그러니 나와의 인연은 수집가로서가 아니라 지금껏 시집과 맞대면한 것으로 충분해요. 나도, 시집도 언젠가 사라져도 크게 아쉬울 건 없지만, 그럼에도 시집은 시집을 잘 갔으면 좋겠어요” 한다. 그의 아주 작은 욕심이다.
과연 천안이라는 곳과 임채진씨, 그리고 그의 시집 4만3000권은 앞으로 어떻게 엮어질까.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천안 시행정과 천안시민도 함께 관심갖고 응원해주길. 그런 마음이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한 켠으로 기대하며 시 문학관을 나선다.
차갑던 바람이 다소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