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기관장 등이 취임사에서 직원들에게 ‘치원공니(致遠恐泥)’의 자세를 주문합니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말한 것에서 연유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풀어놓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저자 신정근의 『마흔, 논어를 읽어야할 시간』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
해석: 자하가 들려주었다. “비록 자잘한 것일지라도 반드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멀고 큰 꿈을 이루는데 진흙처럼 발목을 잡을까봐 염려한다. 이 때문에 자율적 인간은 자잘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이 무한하고 지식의 한계가 없으며 시간과 기회가 무진장하다면 ‘치원공니(致遠恐泥)’는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없을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같은 시간에 두 곳에 있을 수 없고 지금 하려는 일이 뒤에 어떻게 결말날지 모르며 지금 발휘하는 능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유혹에도 맞서야 한다. 다이어트하 때 길거리 음식점에서 풍기는 음식냄새는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시험공부할 때 소설책은 얼마나 읽고 싶은지, 비오는 날 출근할 때면 왜 갑자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지...
욕망이 들 때 한순간의 마음으로 남기고 해야 하는 일을 이어서 해야 한다. 이때 ‘치원공니’는 우리에게 단기적 관점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 설 것을 권한다. 지금 당장 하고싶은 것과 앞으로 하기를 꿈꾸는 것 사이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이 갈등은 어느 순간이나 시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늘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며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나를 핑계할 글을 찾았기 때문일까요. ‘치원공니’의 뜻을 이해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응용편>으로 적용시켜 봅니다.
평소 꼼꼼하고 세심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묻혀다닐 때는 정신줄을 놓고 다니는 사람이 됩니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길을 다녔는지 등등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이죠. 그런 나를 주변사람들은 ‘으이구’ 하며 핀잔합니다. “생각좀 하고 다녀라”라든가 “아니 어제 같이 먹었던 음식도 기억 못해!” 그들의 눈엔 한순간 ‘바보’가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난 다시 생각합니다. 나를 포장해서 말이죠.
아마 책임감이 강한 사람의 유형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책임감이 주어졌을 때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신경쓰는 사람이라면, 책임감이 없는 때에 그만큼 머리를 쉬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율적 인간은 그 자율을 누리는 만큼 스스로 부여한 책임감을 무겁게 진다. 그러니 사소한 때에는 그 무게감에서 가벼이 할 일이다.
자기에게 어떤 식으로 응용되든 ‘치원공니(致遠恐泥)’는 살아가면서 가끔 꺼내어 되뇌어볼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