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학관(관장 이정우)이 제정한 ‘제2회 천안문학상’은 중견여류작가인 김용순 수필가의 ‘봄으로 오시는 당신’ 외 1편에 돌아갔다.
심사는 권선옥 시인(논산문화원장), 강상대 평론가(단국대 교수), 전성태 소설가(순천대 교수)가 맡았으며, 천안 등단작가의 '2023 천안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심사를 맡은 권선옥 시인은 “섬세한 표현, 그것을 얽어가는 단단한 문장, 전체적인 구성 등이 수준급으로 보인다” 했고, 강상대 평론가는 “글의 구성과 문체들이 단단하다”고 했다.
김용순 작가는 “1년 전 우울감과 상실의 고통으로 마음을 다잡느라 힘들었는데, 그때 썼던 작품이 선정돼 더욱 의미있고 기쁘다”며 “영광을 먼저 누리는 되어 염치없음에도 박수 주시는 여러 선·후배 문인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김용순 수필가는 1997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래 수필집 ‘내 안에 피는 꽃들’, ‘유리인형’ 등과 수필선집 ‘몽돌의 노래’가 있고, 천안문인협회와 충남문인협회, 수필문우회, 천안수필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충남문학상, 수필과비평 문학상, 전영택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정우 천안문학관 관장은 “새로움과 협력이 만들어내는 문학의 가치에 주목하며 문학다움을 향한 용기있는 발걸음으로 전한(진나라에 이어 두번째로 통일해 장기집권)의 시대를 걷겠다는 의지에서 올해 두번째 시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천안문학상은 천안문인협회에서 1년에 두 번 발간하는 ‘천안문학’에 실린 작품을 심사하며, 외부심사위원을 통해 작가들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심사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2월16일 오후 3시 천안문학관 강당에서 ‘천안문학상’을 수상하는 김용순 수필가에게는 상패와 상금 300만원이 수여되며, 천안문학 77호에 특집으로 조명될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천안문학상의 첫 수상자는 7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낸 박미라 시인이 선정된 바 있다. ‘거침없는 주제선정과 활달한 시어를 활용한다’는 심사평을 받은 박 시인은 그간 대전일보문학상, 충남시협문학상, 서귀포문학상 등을 받았다.
수상작 <봄으로 오시는 당신>
납작 엎드려 눈보라를 견딘 벌씀바귀가 이파리 끝을 살포시 올리네요. 색깔마저 겨울 밭을 닮아 눈에 띄지도 않더니, 이제는 푸른빛마저 돌기 시작합니다. 봄이 온다는 기별이지요.
봄으로 오시던 어머니, 문득 그립습니다. 지난겨울은 너무나 추웠기에 당신의 온기가 간절합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채비를 합니다. 비가 오고 기온이 다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가 있습니다만 괘념치 않습니다.
어머니는 봄이 되셨지요? 제가 존경하는 어느 수필가는 “새까맣게 잘 여문 분꽃 씨앗이 어느 날 ‘똑’하고 땅에 떨어질 때, 그 생명 속으로 들어가 분꽃으로 다시 태어난대도 무방하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노오란 봄이 좋으셨어요? 이렇게 봄바람이 훈훈하면 당신의 숨결을 느낍니다.
아직 소소리바람이 매섭던 이른 봄날, 삼거리 이랑 긴 밭에서 괭이질하시던 모습으로 다가오시네요. 그 긴 밭을 종일 일구자니 얼마나 진력나셨어요. 촌부자 일부자라지요. 사기장고개를 넘고 보랫개울을 건너 학교에 다녀온 저는 책보를 끄를 새도 없이 달려가 안겼습니다. 봄볕에 그을렸지만, 어머니에게서는 활짝 핀 목련향이 났었습니다.
어머니! 새농골 우리 선산에서의 가슴 저미던 날도 기억나요. 아버지가 관으로 내려지자 기꺼이 한 삽의 흙이 되려고 하셨지요. 얼떨결에 겨우 붙잡았습니다만, 어떡하라고, 나 혼자 어떡하라고 혼자 가냐고 주저앉던 어머니를 저도 어떡해야 하는지 몰라서 혼란스럽기만 했었습니다. 백일기도 끝에 얻은 당신의 어린 외아들은 옆에서 커다란 눈만 끄먹거렸지요.
며칠 전 그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궁금할 뿐이지만, 당신은 애가 타지요.
다 컸으니 걱정하지 마시어요. 제짝 만나 알콩달콩 사는 모습 보여 드리지 못하는 동생도 편치는 않을 겁니다. 어머니 품 안에서는 입엣것도 나눠 먹던 식구였는데 세월 따라 자꾸 멀어집니다. 당신의 바람대로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머니, 준비 없이 맞이한 사별 여정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아침에 잠이 깨어도 눈 뜰 수 없는 날을 어떡하나요. 눈을 감아도 머릿속은 혼돈의 상태입니다. 온갖 생각이 뒤섞여 아무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란합니다.
모든 슬픔에는 끝이 있다는 로버타 템즈의 책을 붙잡고 있지만, 책장을 넘길 수 없이 자꾸만 가라앉아요. 낮이 없는 날들이 이어져 며칠간이나 이불에 파묻혀 지내기도 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차창으로 흐르는 빗물을 와이퍼로 닦아내며 남으로 달립니다.
지리산 자락 어디쯤 차를 세웠습니다. 산수유 가지마다 꽃물이 터져 나왔네요. 저 멀리 노란 산모롱이가 꿈결인 듯 아스라합니다. 몸이 훈훈해지는 걸 느낍니다. 아래로만 가라앉던 몸이 노란 능선을 타고 오릅니다. 산수유 노란 꽃으로 오신 당신, 심장이 고동치고 이내 매운맛이 코끝으로 올라옵니다.
꽃잎마다 눈물방울이 맺혔네요. 어머니, 저 괜찮습니다. 벌써 일 년이나 지났는걸요.
기제사는 간소하게 지냈어요. 당신의 외손자가 제상을 차렸습니다. 제 아비의 위패 앞에 무릎을 꿇고 엄숙한 어조로 축문을 읽더라고요. 넓은 등을 혼자 보았네요. 같이 낳아 함께 고생하며 키웠는데 혼자서만 누리는가 싶어서 또 미안했습니다. 가야 할 길이라지만, 그리도 아끼던 아들마저 두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요. 서둘러 떠나간 정서방을 원망하다가는 가장 거친 물살의 강을 건너던 모습이 떠올라 불평을 거두었습니다.
그나마 자식이 위안이 됩니다. 그런데 철없던 저는 청상이던 어머니에게 아무 도움도 드리지 못했었네요.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이 당신은 멀리 계십니다.
시샘 바람에 발갛게 언 채 새순 내미는 벌씀바귀로 기별하시더니 기어이 먼 길을 돌아 산수유 노란 꽃물로 활짝 피셨네요. 지난겨울이 너무나 추워서 아주 가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봄으로 오신 어머니, 저도 다 살고 난 후에는 그렇게 환생하고 싶습니다. 꽃다지로 노랗게 물들거나 새봄을 기별하는 봄까치꽃이어도 좋겠네요. 그리하여 상실의 고통으로 휘청거리는 누군가에게 온기 어린 지팡이로 다가서렵니다.
훈훈한 바람이 붑니다. 은실비 시나브로 잦아드네요.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눅눅한 회색 하늘일랑 말갛게 말려 놓으실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