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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학대 설움 노래한 목주가 설화

김성열 천안시역사문화연구실장

등록일 2014년04월2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사모곡. 일명 ‘목주가’는 신라말 고려 초기부터 목주(목천)지방에서 효녀 행실 전설로 유래한 노래이다.

목주가(木州歌)는 신라시대 민간에서 발생해 전해오는 음악형태를 닮았으므로 고려 초기에 이루어진 향부악(鄕部樂) 향악(鄕樂)인 우리고유의 민속음악이다.

고려사에는 노래의 제목, 목주가 이름만 전해오고 가사는 전하지 않고 목주효녀가 지은 목주가 노래라 서술하고 효녀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고대 향악보에 작가 연대 미상의 고려가요로 전해오는 사모곡의 가사내용이 목주녀의 사연과 부합되고 고려 시대성으로 보아 사모곡과 목주가는 같은 노래로 인정된다.

아버지와 계모를 정성을 다해 섬겨 효녀로 이름이 높았던 목주녀가 목주 어느 마을에 살았다. 계모의 간사하고 악독한 짓거리로 태어난 아버지 집을 수차 쫓겨나면서도 그래도 계모와 아버지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으나 급기야 미움을 받아 영 내쫓겨버리고 만다. 아버지 집을 쫓겨난 효녀 목주녀는 산속을 방황하다 혼절했다. 어느 석굴에 사는 노파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지고 노파의 정성으로 목주녀는 회복되었다. 목주녀는 노파를 친 어머니, 친 딸처럼 서로 사랑하였고 성숙하여 노파의 며느리가 되었다.

목주녀 부부는 화목하고 즐겁게 살면서 또한 재물을 모아 작은 부자가 되었다. 목주녀 생명의 은인, 시어머니는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뜨자 목주녀는 서러움이 극에 달하여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원래 하늘이 내린 지극한 효심을 가진 목주녀는 학대받다 못해 버림까지 당한 친정아버지와 계모가 자나 깨나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딸을 내쫓은 후 매사에 잘되는 일이라곤 한가지도 없으면서 계모의 쓰임새 또한 커서 가산을 탕진하고 이제는 조석 끼니조차 어렵게 지낸다는 소문이다. 목주녀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 하고 조석에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 듯 괴로웠다.

목주녀의 신랑도 품성이 착한지라 부부가 뜻을 모은 후 친정아버지와 계모를 모셔드려 같이 살았다. 두 노인은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는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해다 주는 음식을 먹고 해주는 옷을 입으며 별 말썽이 없었다.

한동안 지나면서 옛 성품이 되살아나는 듯 싶었다. 윤택하게 살면서 부모 봉양이 소홀하다는 계모의 꼬드김에 넘어간 아버지는 딸을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지성을 다해도 아버지와 계모의 불평은 날로 더해갔다.

목주녀는 출가외인으로 남편 눈치 보며 자기 먹을 것 안 먹으면서 극진하게 모시지만 아버지 내외의 심사를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목주녀는 집안 형편이 나아진 후에도 항상 밭에 나가 김을 맸다. 더군다나 아버지를 모셔온 후로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하루는 김을 매러 밭에 나갔다. 늦더위가 극성을 부려 해가 서산에 기울어져도 더위는 가실 줄 몰랐다. 땀을 씻으며 밭을 한이랑 두이랑 매어가니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산 아래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너무도 시원한 바람이어서 목주녀는 일손을 놓고 잠시 서쪽 하늘을 바라봤다. 서쪽 하늘이 붉게 노을 지면서 푸른 하늘에 수를 놓았다.

이때 어릴 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어린 목주녀를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그렇게도 사랑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와 계모의 학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난날의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두고 극진히 봉양하건만 딸의 정성을 조금도 몰라주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다름없는 부모이건만 어찌 어머니 사랑은 그렇게 두텁고 아버지 사랑은 그렇게도 얇은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목주녀는 석양 하늘에 사랑하는 어머니 영상을 그려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농촌 아낙이라 호미와 낫을 소재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해서 노래를 불렀다.

 

호미도 날이지 만은

낫같이 들리도 없습니다.

아버지도 어버이지만은

위 덩뎌 듕성 ※장구소리

어머님 같이 사랑하실 이가 없습니다.

아시오 임이시어

어머님 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습니다.

 

이 가사는 역사기록과 교과서에 사모곡(思母曲) 목주가(木州歌)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온다.

목천IC 독립기념관 입구 사거리에 목주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5월 가정의 달 어버이날 달에 자녀들과 같이 목주가공원에서 사모곡 목주가를 가족들과 같이 읊어봄직하다.

오늘날 우리시대 화두인 인성 효 교육 기본 교재로 더 이상 없는 효행실도(孝行實圖)로 우리고향 자랑 목천 목주가 사모곡이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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