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4지방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지역별로 예비후보들의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선거판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각 후보진영마다 출판기념회나 포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름 알리기에 돌입했다. 아직까지 안철수 신당 창당 시점과 기초단체장·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에 따른 광역의원 정수 조정 및 선거구 획정, 교육감 선거방식 등이 확정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선거 일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여야가 국정원 대선 개입과 막말파동 등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혀 산적한 각종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또 예산 정국을 놓고 강경 대치하고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 시기나 참여인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내년 선거는 안개 속이고 입지자들은 혼란을 겪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 정치개혁특위(이하 정개특위)를 내년 1월31일까지 가동하기로 여야가 합의하면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만 50일이라는 시간은 촉박하다. 내년 2월4일이면 광역의원 및 단체장을 시작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받기 때문이다. 50일간의 논의를 거쳐 내년 2월 중 입법되지 않으면 지난 대선에서 여야 정치권이 공약한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가 사실상 공약(空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정개특위가 반드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민들과 약속한 일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스스로 그 특권을 내려 놓지 않겠다는 꼼수로 비춰질 것이다.
그동안 선거법은 전통적으로 여야가 100% 합의해 처리해왔다. 협상의 묘를 발휘해 주고받는 가운데 양당이 어떻게 타협하느냐가 문제다. 시간은 짧은데 비해 논의할 사항은 너무 많다. 기초선거 공천폐지에서부터 단체장 연임 제한, 교육감선거제도 개선, 선거구 조정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찬성과 반대로 격렬한 싸움을 벌이던 민주당은 지난 7월25일 전당원투표 결과 찬성 67.7%로 기초선거관련 공천폐지를 확정지었다. 이제 새누리당만 남았다. 새누리당이 공천폐지의 깃발을 들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새누리당은 아주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했으니 당연히 정당공천폐지로 가닥을 잡아야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대통령 취임 이후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결국 ‘기초선거 정당공천 유지’처럼 보이게 된다. 새누리당은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 반대 견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민주당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어서 공이 새누리당으로 넘어간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개혁안이 특정 정당의 당리당략에 휘몰려서는 안 된다. 18대 대선공약으로 모처럼 정치개혁을 이루나 싶었는데 10개월여를 낭비한 정치권이 다시 정개특위를 구성한 것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정치개혁을 바라는 여론의 질타를 의식해 정치권이 면피용으로 정개특위를 구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특위에선 반드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내야 한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의 폐단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중앙 정치권에서는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지역 토호가 발호하면서 최소한의 검증장치마저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국회의원들의 꼼수에 불과하다.
중앙정치가 지방행정을 예속화시켜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이 정당공천제이다. 여야 정치권이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해 지방자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선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