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더위가 채 가셔지지 않는 오후5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무실 입구의 낡은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띄었다.
해묵어 보이는 이 짐 자건거에는 한 신문사의 옛 로고가 눈에 띈다. 신문배달용으로 썼음직한 이 자전거는 여기저기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을 달고 있었다.
노란 주머니가 짐받이에 사방으로 달려있는가 하면 낡은 통을 잘라 거꾸로 매단 통에는 물과 함께 작은 배수호스가 달려있다. 통에는 ‘칼·가위 갈아요’라는 멘트와 함께 전화번호가 눈에 띈다. 그 통 끝에는 숫돌하나가 달려 있다. 짐받이 사이의 작은 공간에는 각종 조그만 공구들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인근 통닭집에서 나오는 이 자전거의 주인을 만났다.
하나하나 직접 붙들어 매달고 붙이고 끼어놓았을 각종 장비들. 적잖은 세월을 이 자전거와 함께 하셨을 법한데 무슨 특별한 사연은 없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땀을 흘리는 어르신께 음료수를 하나 권하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함경도 갑산이 고향이라는 김일송 어르신.
원래는 함경도 갑산. 천안은 제2의 고향
“내 나이? 나 여든넷이여. 고향은 함경도 갑산. 그렇지. 삼수갑산 골짜기 할 때 그 갑산이 내 고향이야. 스물둘 먹어 홀몸으로 1·4후퇴때 월남했지. 일가친척 없이 굶기도 많이 굶었어.”
어르신의 고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산골지역으로 이름난 함경도 갑산이라고 한다. 양주 25사단 미KC부대 등에서 복무했던 어르신은 27세때 천안에 내려왔고 31세때 가정을 꾸린 뒤 3남매를 두고 온전한 천안사람으로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신부동 살지만 옛날은 하릿벌(성정동 인근) 근처 살았었지. 결혼하기 전엔 거기서 나랑 동갑으로 함경도 고향친구인 최경국이랑 같이 자취했었어. 고향도 북이고 하다보니 그 친구랑 함께 간첩으로 오인받고 경찰에 잡혀 간 적도 있고 이런 저런 일도 참 많았었지…”
홀홀단신 월남해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키우는 삶은 늘 고단한 편이었다. 지금처럼 칼을 갈아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약 20년 전 쯤 부터라고 한다.
“그 전에는 도마장사를 했었지. 한 30개는 들고 다녀야 했는데 부피도 많고 굉장히 무거웠었어. 하루는 공주 장날을 찾아갔는데 한 일식집 사장이 칼을 같이 팔라는 거야. 그이 부탁도 들어줄 겸 서울에 가서 칼을 사갖고 팔아보니 도마보다 장사도 쉽고 이문도 낫더란 말이지. 그때부터 칼 장사와 함께 칼 갈이를 시작했어요. 한참 잘 될 때는 안흥항, 신진도 같은 곳 횟집들 정육점들에 장사도 참 잘했었는데 말야. 허허”
자체 제작한 자전거는 어르신과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칼은 물로 숫돌에 갈아야 제대로지!’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유통환경이 달라지면서 어르신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이제 삶의 터전은 온전히 천안시내 안쪽 뿐이다.
“천안 만해도 단골이 많다오. 두정동, 쌍용동에 횟집이나 식당에서 종종 날 불러주지. 단골집에 가고 영업도 하고 하루에 10집은 칼 갈러 다니는 것 같아. 칼 한번 가는데 3000원, 가위를 가는데는 5000원이니 뭐 내 일당은 하는 편이지. 쉬는 날? 식당들이 문 닫는 일요일이 내가 쉬는 날이라네.”
어르신의 일상은 점심때부터 시작해 밤 10시가 넘어 끝난다. 자전거에 노란 주머니들을 달고 노란모자, 노란조끼를 입은 것은 늦은 밤 조금이라도 눈에 잘 띄기 위해서란다.
더운 여름, 햇빛보기 어려운 장마 등 힘든 시기도 많지만 가장 힘든 것은 한겨울이다. 길이 미끄럽기도 하지만 숫돌에 얼음 같은 물로 차디찬 칼을 갈다보니 겨울에는 손이 터지고 아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다.
“그래도 칼은 물로 숫돌에 갈아야 제대로 가는 거지. 편하다고 잡아 댕기는 칼갈이 그냥 쭉쭉 잡아당기면 쇠를 다 깎아 먹는거나 마찬가지야. 언제까지 할 거냐고? 글쎄 한 4~5년은 더하지 않겠어? 아픈데도 없으니 90까지는 너끈할 것 같아. 아 어쩔 때는 한 70먹었나며 70대 동생들이 함부로 대할 때도 있다니까?(웃음)”
짧은 시간 많은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던 어르신은 자전거에 오르기 전 긴히 청할 게 있다며 마지막 부탁을 남기셨다.
“아 아까 말한 함경도 고향친구 최경국이. 떠나기 전에 그 친구 꼭 다시 한번 만 만나고 싶어. 이거 신문 나가면 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자 양반 잘 좀 부탁해, 그 친구한테 내가 찾고 있다고 꼭 전해 달라고 알았지, 응?”
노란 모자 노란 옷의 어르신은 이 말을 남기고 가뿐히 예의 낡은 자전거에 올라 유유히 다시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가셨다.
친구를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손주같은 기자에게 허물없이 많은 얘기를 털어놓으셨기 때문일까? 어르신의 뒷모습이 조금은 가뿐해 보였다.
<이진희 기자>
어르신은 고향 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남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