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 씨.
“지난 3월 이혼판결을 받았습니다. 아이 다섯을 키우는 게 보통일은 아니겠죠. 상황이 복잡해 생계형 수급자로 조차도 선정돼지 못한 상황이어서 더 힘들어요. 하지만 전 다시 꼭 일어설 거에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요.”
목천읍에 사는 오남매의 엄마 송씨는 조만간 이사를 앞두고 있다. 몇 년동안 살던 목천읍의 작은 아파트에서 천안시내로 나오게 된 것이다. 보증금도 다 까먹고 밀린 공과금도 정리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 진정한 새 시작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대초부터 지금까지 갖은 풍파에 시달려왔던 송씨. 그녀는 나이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온전히 그녀만의 인생을 살 준비를 마치고 새 출발선에 서게 됐다.
출산 3일전까지 파출부, 출산 3일후에 파출부
18살의 나이에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과 원치않은 관계를 맺은 그녀는 주변의 설득과 회유에 21살에 결국 그와 결혼의 연을 맺었다.
경상도가 고향이 남편은 한 마디로 ‘건들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늦게 들어온다고 한 마디할라치면 아예 집을 나가 며칠을 안 들어오는 식으로 ‘나를 건들면 난 더 큰 일을 저지른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 같았다. 아내에게도 이후 자녀들에게도 폭력행사는 다반사였다.
당시 기술은 있어 늘 일거리는 있었지만 남으로부터 싫은 소리는 전혀 못 듣는 성격이었던 그는 오래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 그는 받은 퇴직금을 받아 옷장사를 시작했다. 그후에도 방음벽 공사사업, 컨테이너 사업 등을 했는데 경험도 운도 없어서인지 큰 사기를 당해 온 가족이 어려운 상황에 허덕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음주와 폭력, 도박에까지 손을 댔던 남편은 본인을 망친 그 사기꾼을 잡겠다고 몇 년을 더 허송했다. 그 기간동안 아내 송씨는 출산 3일전까지 파출부를 나가고 출산 3일뒤에 아기를 업고 파출부를 나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 내몰려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생긴 5남매. 자녀들은 여느 집처럼 평범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 상처들은 엄마 송씨와 자녀들 스스로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남게 됐다.
5남매에게 남겨진 상처
2.8㎏의 작은 체구로 태어난 큰 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행에 노출되면서 정서불안을 겪었고 후천성 자폐진단을 받았다. 처음 입학한 초등학교에서는 비 상식적인 교사가 주도한 왕따의 희생양이 됐다.
중학교 때도 급우들이 신발을 화장실에 빠뜨려 맨발로 온 일이 있었고 머리 깎으라고 돈을 주었더니 반 아이들이 직접 머리를 깎고 돈을 빼앗아 간 일도 있었다. 중학교 때 교사는 엄마 송씨 앞에서 딸의 따귀를 때릴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이었다. 결국 중2때 학업을 중단시켰지만 집단괴롭힘은 20살이 넘어서도 계속됐고 송씨는 결국 큰 딸의 이름마저 바꿔버렸다.
후천성 자폐에 빠진 큰 딸은 남의 부탁이나 부당한 강요 등을 거절하지 못한다. 집에는 그녀명의의 휴대폰이 20대가 넘는다. 끈질긴 판촉을 거절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의 결과물이다.
둘째는 폭행에 의한 후유로 의심되는 척추측만증과 경도의 디스크를 앓고 있다. 셋째와 넷째, 다섯째는 각각 우울증, 강박증, 급성당뇨 등으로 고생하며 모두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섯 아이들 누구하나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이다보니 엄마 송씨는 일반적인 취업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다.
‘아이들 생각하면, 무슨 일이라도…’
말 못할 갈등과 아픔 속에 어렵게 남편을 설득한 그녀는 결국 지난 3월 이혼판결을 받아냈다.
자녀들과 관련한 의료기록을 그동안 충분히 남기지 못한 상황이다보니 생계형 수급자로도 선정되지 못한 상황. 올 2월부터 3개월은 한 대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지인의 도움으로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약간의 도움을 받게 된 그녀는 중장비 강좌를 신청해 5월말까지 지게차 자격증을 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막내가 6살이다보니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여자라 더 어려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뭐 못할 일이 있겠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 꼭 아이들과 함께 잘 살아보고 싶어요.”
아픔과 상처속에 이제야 작은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그녀. 송씨는 지금 어느 때보다 강한 삶의 의욕에 휩싸여 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