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결정하는 천안시예산’. 지난 3일 열린 천안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에는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분야의 200여 시민들이 모여 정책을 제안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주민참여예산제 모의 체험 '가능성 확인'
“그동안 ‘시민들이 참여할 것이다’ 당위적으로 주장만 했었지만 오늘 원탁회의를 해본 결과 그 가능성을 넘어 확신을 갖게 됐다. 시민들이 본인의 이해에만 매달려 이기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시민들은 지혜로왔다.”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이상희 간사는 ‘천안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가 끝나고 이런 평가를 내렸다.
지난 3일(목) 오후2시 천안시청 대회의실에서는 타운홀 미팅 방식의 ‘천안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10대 소녀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 지역, 종사자들 200여 명이 참석했다.
‘시민이 시장이다’는 관점에서 시정의사 결정 체험을 목적으로 열린 이 자리는 천안시의회 주민참여연구회,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천안YMCA, 천안녹색소비자연대,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공동 주최로 준비됐다.
참가자들은 쉬는 시간도 없이 4시간 동안 정책결정 및 우선순위를 선정하며 참여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실시간으로 결정하고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도 확인할 수 있게 한 ARS시스템은 의사결정의 편의성을 높였다.
가능성 확인한 천안시 주민참여예산제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니 이렇게 재밌고 신나는 것을!”
참가자들 스스로 시 정책순위 결정, 대규모·전시성 사업엔 차가운 반응
이날 원탁회의는 지역주민을 초대해 정책 또는 주요 이슈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토론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천안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모의과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축사에 나선 김동욱 천안시의회 의장은 “주민참여예산제가 시민들이 살기좋은 천안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완주 천안을 국회의원 당선자는 “지방자치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될 주민참여예산제 원탁회의가 우리 지역에서 이렇게 구현되는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 향후 국회에서도 주민참여예산제와 관련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순서에서 천안시 기획예산과 박재현 팀장은 2012 천안시 예산현황에 대한 브리핑에 나섰다.
박 팀장은 “천안시 재정은 민생중심의 ‘생활예산’이 될 수 있도록 주민 실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는 사업을 우선 계상하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잡고 있다. 또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합리적인 재원배분에 중점을 두고, 미래 100만도시를 위한 도시성장 기반 확충 사업도 선택과 집중에 의한 투자효율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아울러 건전재정을 위한 고통분담과 불요불급한 경비를 절감할 것”이라며 2012년 시 재정운영의 기조를 설명했다.
천안시의 재정규모는 당초예산 기준 2012년 1조1650억원으로 전국 기초지자체 중, 총규모로는 7위, 일반회계로는 11위 수준이며 재정자립도는 46.6%다.
시민이 만든 8개분야 35개 정책
DEMOS 정완숙 대표의 진행으로 이어진 원탁회의에서 200여 시민들은 현장응답시스템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공유했다.
그동안 천안시에서 사전의견수렴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 방식이 아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책에 대해 시민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모의과정으로 기획되서인지 참가자들은 무척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이었다.
1부에서 참가자들은 지방자치, 보건복지, 문화체육, 환경, 지역경제, 농업축산, 도로교통, 도시계획 개발 등 8개 분과에 19개의 테이블로 나뉘어 총 35개의 시민이 제안하는 천안시 정책을 만들었다.
내용을 보면 ▶지방자치 분야에서는 근거리 생활복시시설 확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처우개선 ▶문화체육 분야에서는 고교평준화, 문화복지시설 확충 ▶환경 분야에서는 통학·출퇴근용 안전한 도로 및 도보도로 확충, 쓰레기 분리함 주택가 배치 ▶지역경제 분야 사회적 기업을 통한 지역순환경제 활성화, 서민경제생활 지원 및 보호 ▶농업축산 분야 친환경 농업 활성화, 농업예산확대로 농가소득 안정화 ▶도로교통 자전거도로 정비 연결 확대, 대중교통체계의 정비 ▶도시계획, 개발 분야 학교주변 방범취약지 CCTV설치 확대 등이다.
다른 사람과 내 의견과 어떻게 다를까 서로의 주장을 나누며 우선순위를 협의하는 분과 테이블.
대규모사업, 전시성사업 ‘중요하지 않아’
2부는 천안시 정책 우선순위를 선정하기에 앞서 정책의 효율성, 정책이 미치는 혜택의 범위, 정책의 효과성을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여기서는 2012 천안시 주요업무실천계획 중 약속사업 및 중점사업을 중심으로 분과별 10개의 정책, 총 80개 정책과 1부에서 시민이 만든 35개 정책을 합쳐 115개 사업의 우선순위가 결정됐다. 우선순위는 현장응답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됐다. 참가자들은 우선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시민이 선택한 좋은 정책으로는 ▷주민참여예산제 확대 및 재정 공개 ▷국공립 및 야간 어린이집 확충 ▷고교평준화 ▷통학 출퇴근용 안전한 자전거도로 및 도보도로 확충 ▷사회적 기업을 통한 지역순환경제활성화 ▷친환경 농업 활성화 ▷대중교통 노선다양화, 시간 연장 등 체계정비 ▷학교주변 및 방범취약지 CCTV설치 확대 등 8개가 선택됐다.
반면 시민이 선택한 중요하지 않은 천안시 정책으로는 ▷시승격 50주년 기념사업 추진 ▷금연아파트 지정 운영 ▷국제민속춤 대회 ▷호두웰빙특구 지정 ▷제5일반산업단지 ▷2013 천안국제웰빙식품엑스포 준비 ▷천안~청주공항전철 직선노선 유치 ▷복합테마파크타운 조성, 국제안전도시 재공인 추진 등 9가지가 선정됐다.
‘천안시의 열린 자세를 기대한다’
복지세상 이상희 간사는 “시민들은 지혜로왔다”며 “생활속에서 체감하며 변화를 바랬던 살아있는 정책이었다. 또 다수의 이익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결정하는 집단지성을 보여주었다. 일반시민들의 제안이 권위있는 전문가가 만든 정책에 견주어도 결코 부족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주민참여예산제와 관련 예산교육이나 주민교육 등의 예산조차 시는 세워놓고 있지 않다. 이런 지혜로운 시민들과 함께하는 천안시의 열린 자세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앞으로 읍면동 한두곳을 선정해 ‘시민예산학교’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 이를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를 알릴 강사까지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진희 기자>
냉담한 천안시
‘인기투표식 예산 결정’ 우려된다
이같은 천안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 참가시민들, 시민단체의 열띤 반응과는 달리 천안시는 다소 냉담한 분위기다.
천안시 기획예산팀 박재현 팀장은 “시민들이 이런 다양한 의견을 내고 결정했구나. 이런 의견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수준으로 평가할 뿐 어떤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제 5산업단지가 ‘시민이 선택한’ 천안시 중요하지 않은 정책에 포함됐다. 이게 말이 되나”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예산실무담당의 입장에서 정책자체의 중요성과 파급력을 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 결정이라는 설명.
박 팀장은 “시 행정이란 때로는 주민들이 싫어도 해야 할 것이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나름의 분석에 의거해 판단 추진한다. 이번 주민참여예산 원탁회의 참석자들이 어떤 정보를 갖고 어떤 과정으로 결정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이런 인기투표식 의사결정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팀장은 이날 원탁회의 참가자들이 갖는 대표성도 문제 삼았다.
“참가시민 200여 명이 전체시민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나? 정당한 자격과 기능, 권한이 포함돼 대표성이 인정된 모임의 결정도 아닌데 마치 시민전체의 의견이나 여론인 것처럼 주최측이 호도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본보를 통해 보도(713호·4월10일자)된 주민참여예산지원단에 관련해서는 “이미 시장님 결재가 끝난 상황인데 모임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현재 구성원 변경을 요청하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알고 있다. 시의회 참여의원의 구성을 놓고는 물밑작업을 진행중이다. 5월말까지는 결정을 끝내고 주민참여예산지원단 1차 모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 |
‘지금 천안시에는 서민임대주택이 중요하지.’ 본인이 생각하는 정책 우선 순위를 정한 한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