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선생.
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김종진(金宗鎭) 선생을 2011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2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에는 선생의 초상화 사진 등 관련자료 11점이 전시되며, 온라인을 통해서도 관람할 수 있다.
선생은 1901년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됐으나,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6월 석방됐다. 이후 상경해 서울중동학교 중학속성과를 다니며 비밀출판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가 강화돼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되자 1920년 4월 중국 선양으로 탈출했다.
선양에서 국내로 무기를 반입해 독립운동을 하려다 실패한 선생은 베이징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이회영을 만나 상해의 신규식을 소개받았다. 신규식의 주선으로 운남군관학교 교도대에 편입한 선생은 1921~23년간의 과정을 마쳤고, 이어서 다시 운남군관학교로 입학해 1923~25년까지 정식사관교육을 받고 졸업했다.
1926년 4월경 상해를 거쳐 북경으로 간 선생은 이회영을 만나 수일간 대화하면서 무정부주의에 심취하게 됐다. 1927년 10월말 만주의 무단강역에서 족형인 김좌진을 만난 선생은 신민부에 가담했다. 이후 1928년 1월부터 8개월간 만주 전역을 조사한 선생은 신민부의 향후활동계획을 보고했고, 이는 1929년 7월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의 주도로 신민부는 1929년 7월 21일 한족총연합회로 개편됐다. 이 단체에서 선생은 농무 및 조직선전을 담당해 활약했으나, 단체는 공산주의자와의 대립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한족총연맹회의 결성을 주도한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게 1930년 1월 20일 암살됐고, 선생 역시 1931년 7월 11일 해림역 근처에서 납치돼 행방불명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90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정리/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