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어였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슬픔이 전해졌다. 지난 10월14일,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당티OOO씨(여·26·도고면)는 세 살바기 아들을 끌어안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울먹이던 그녀는 “평소 술을 좋아하던 남편은 집도 잘 찾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남편이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저에게 손찌검을 하는 일도 없었지요. 그저 술을 좋아하는 선하고 착한 사람이었어요”라며 “그날도 남편은 술에 많이 취해 있었는데, 제 생각으로는 남편이 술에 취해 농약병을 소주병으로 착각하고, 소주가 아닌 농약을 마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난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녀는 수술할 돈이 없어서 남편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 하루를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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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티OOO씨는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난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술 할 돈이 없어서 남편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 하루를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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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앞에는 북어포 한 마리만이···
그녀에 따르면 농약을 마신 남편은 곧바로 119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자살’이라는 이유로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남편은 피를 토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함께 살고 있던 시어머니와 앞집의 아주버니는 ‘돈이 한 푼도 없다’며,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왔고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나버렸다.
“남편이 수술도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돌아왔지만, 계속해서 피를 토해 냈어요. 보다 못한 이웃주민들의 권유로 다시 병원을 찾아 갔으나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저희를 돌려보냈어요. 수술할 돈이 있었더라면 남편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초라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른 영정들 앞에는 떡과 과일, 화환이 놓여 있던 것에 비해 그녀의 남편 영정 앞에는 덩그러니 북어포 한 마리만 놓여 있었다.
특히 보통 3일장의 장례를 치르지만 가난한 살림에 그마저도 할 수 없어 저녁 7시에 장례식장을 들어가 다음날 아침 8시에 나와야 했다.
“시어머니께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라고 얘기했지만, 시어머니는 ‘돈이 없어서 장례를 이렇게 밖에 지낼 수 없다’라고 하셨어요. 장례식 비용도 400여 만원이 필요했으나 시어머니와 아주버니는 여기, 저기에서 빌린 돈 300여 만원으로 장례식장에 사정을 했고, 그들의 배려로 장례식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한편, 그녀는 “장례식 비용으로 쓰인 300여 만원이 남편을 살리는 수술비로 쓰였더라면, 남편은 불쌍하게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며 오열했다.
시어머니 모시며 아들 키우겠어요
“시어머니는 제가 아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갈까 봐, 어머니를 홀로 두고 도심지로 떠나갈까 봐 노심초사 걱정을 하고 있어요. 저는 어디 안가요. 아들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키울 거에요. 또 한글도 모르는 시어머니는 마을을 오가는 버스도 탈 줄 몰라요. 그런 시어머니를 두고 어떻게 이곳을 떠날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녀도 한글을 모르기는 마찬가지.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드라마에서 본 한국 사회의 화려한 모습에 반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7년 결혼업체를 통해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왔다고.
남편은 비록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무능력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고 한다. 그녀 또한 자신이 생활능력을 키워 시어머니와 남편을 모실 생각으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으나 갑작스럽게 남편이 떠나버린 것.
그녀는 “곧 있으면 추운 겨울인데 보일러에 기름조차 넣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 앞서요. 또한 남편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여서 매달 80여 만원의 지원금으로 생활했지만 이젠 그보다 적은 50여 만원으로 세 식구가 한 달을 살아야 해요”라며 “제가 돈을 벌 거에요. 제가 돈을 벌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들을 키울 생각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말을 빨리 익혀야 하지만 이곳은 너무나 외진 산골이어서 한국어를 배우러 외부로 나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컴퓨터라도 있으면 한국어를 빨리 배울 수 있을 텐데···.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들을 키워야 하는데 앞길이 막막하기만 해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편, 이날 인터뷰는 아산경찰서 외사계의 제보와 아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오안희(여·41) 통·번역 지원사에 의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