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훈진(43·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위원회 천안본부 사무처장)
전훈진 씨.
천안 명동 골목의 한 호프집에서 전훈진 씨를 만났다.
우직한 인상의 전씨는 현재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위원회 천안본부(6·15천안본부)’의 사무처장 직을 맡고 있다. 6·15천안본부는 이달 초부터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한 통일쌀 보내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몇몇 사람에게만 전화했을 뿐, 특별히 열심히 활동한 것도 아닌데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고 계세요. 1차 분으로 7일까지만 500명 이상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연초부터 통일쌀보내기를 위해 농민회와 함께 풍세 보성리에서 모내기도 하고 생태체험도 했죠.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 시점에서 6·15공동선언과 10·4 남북 공동선언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6·15천안본부는 10월 말까지 1004명을 목표로 모금해 나갈 예정이다. 시민들은 다음카페 천안1004(http://cafe.daum.net/1004ca)를 이용해 통일쌀 보내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나쁜 일은 아닐 텐데…
6·15천안본부는 얼마 전까지 매년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3000여 명이 넘게 참석했던 6·15 마라톤 대회도 4~5차례 진행한 적이 있고 지역통일한마당 등 작은 행사도 여러 번 치러 냈다. 금강산 통일 여행사업도 전씨가 연 500명 정도를 가이드하며 10번 정도를 다녀와 금강산을 속속들이 알 정도 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MB정권 출범 후에는 사실상 활동에 많은 위축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해마다 기념식이나 행사를 가졌었는데 작년과 재작년에는 이마저도 못했어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중앙단위에서 활동하던 분들은 감옥행에 처하기도 하고 공안탄압을 많이 받았죠. 저희 사무실도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적이 있습니다. 집행은 안됐지만요.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텐데…, 좀 많이 안타깝죠.(웃음)”
43세인 지금까지 통일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에게 통일 운동을 시작한 계기를 물어보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선배를 잘못 만나서”라는 농담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80년대에는 국토순례단이라고 전국을 돌며 통일의 열망을 전하는 대학생들이 있었어요. 선배동기들과 그런 활동도 하고 당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품었던 통일에 대한 열망을 뜨겁게 갖고 있었죠.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전 여전히 자본주의가 좋아요. 정말로. 하지만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지금하고 있는 일들도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최소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업을 위해 그는 기계금형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유회사 분유 및 치즈, 커피 대리점도 운영 중. 그래도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끊긴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힘들 때도, 환경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할 때가 더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돈만 벌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제 신념을 실천하는 것 뿐이고요.”
잡혀갈 때 까지 열심히 하라고요?
전훈진 사무처장은 통일운동 뿐만아니라 이 사회의 진보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건 이후부터 언론소비자주권운동, 광우병, 노대통령 서거, 최근의 등록금 문제까지 자신의 신념과 이어져 있는 일이라면 늘 촛불을 들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매 주말마다 천안역 동부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천안아산촛불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전씨의 뒤를 이어주는 후배들이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 한 적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지금도 단국대 민주동문회 같은 모임에 가면 막내에요(웃음). 무슨 단체에서든 회장·의장 한 번 한적 없이 늘 사무국장, 사무처장으로만 10번 넘게 실무만 담당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붙잡혀 갔는데 저만 잡혀가지 았았던 이점은 있더라고요. 주변에서는 잡혀갈 때까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개인사업을 하고 한 가정을 지탱하면서도 청년의 마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는 전훈진 씨.
그에게 있어 이 사회의 진보와 통일은 늘 가까이 있는 희망이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