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날만 기다리는 심정을 누가 알겠어요. 신부전증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아들을 병원비가 없어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상태로 퇴원을 시켜야 했던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겠어요. 아들이 혈액투석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요즘은 혈액투석도 받지 못해 먹지도 못하고 잠만 자고 있어요. 어미 잘못 만나 어려서부터 고생만 해온 아들이 생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한 많은 어미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광덕면 보산원2리에서 만난 김숙자(64)씨는 침대에 누워 잠만 자고 있는 아들을 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아들(신기호·42)이 10여 년 전부터 건강의 급속한 악화로 반복적인 입·통원 치료받았으며 그때부터 어머니 김씨에게도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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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신기호씨를 바라보고 있는 김숙자씨. 이들 사연을 제보한 보산원2리 홍승목(우) 이장이 안스러운 눈으로 이들 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
며느리는 손자를 낳자마자 집을 나가고
“기호는 사형제 중 큰아들이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만 졸업했어요.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주유소에서 소일거리를 도우며 자신의 용돈벌이를 하고 마음에 맞는 처자와 연애도 해서 결혼까지 했었지요.”
비록 몸은 좋지 않았지만 거동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던 아들이 손자만 낳고 집을 나간 며느리로 인해 마음의 병을 함께 얻어 거동조차 불편하게 됐다고 설명하던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끝내 말을 멈췄다.
“며느리가 갓 태어난 핏덩이를 맡기고 떠났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지만 그래도 핏줄인지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정성껏 키웠어요. 그리고 또래 아이들 보다 조금 모자란 손자였지만 혈연과 키워온 정이 있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했지요. 그렇게 예뻐하던 손자를 어느날 며느리가 찾아와 ‘천안에서 먹을 것을 사주겠다’며 데려가더니 지금껏 아무런 소식이 없어요. 이젠 중학생이 됐을 텐데···. 손자의 돌때와 초등학교 입학식, 그렇게 딱 두 번을 찾아왔던 며느리가 무슨 염치로 손자를 데려갔는지 모르겠지만 병마와 싸우고 있던 아들과 제게 아주 커다란 희망을 빼앗아가 야속하기만 하네요.”
한 번 병원에 들어가면 600~700만원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와 투석기로 생명을 이어가던 신기호씨가 두어달 전 인공호흡기를 단 채로 병원을 나서야 했던 이유는 바로 병원비 때문.
7년여 간의 병원비로 가정의 돈이 바닥이 난 것이다.
“신부전증에 걸리게 되면 신장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어서 노폐물이 소변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몸속에 쌓이게 되요. 그래서 혈액 투석을 해야 하는데 중환자실에서 하루 동안 있게 되면 그 비용이 40만원을 훌쩍 넘어가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지난번에도 아들이 퇴원할 때 병원비로 700여 만원이 들어갔으니까요. 이제는 병원비가 없어서 혈액 투석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들의 몸속에 요독이 쌓여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는 누룽지 국물이라도 먹었었는데 그마저도 먹지 못해요.”
현재 광덕양조장 소유의 집에서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는 김숙자씨는 아들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공장을 다니며 생활하고 있었지만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고 6년 전부터는 집에 발걸음을 끊고 있다는 설명이다. 병석에 누워있는 큰아들 외 세명의 아들도 사글세 방에 살면서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 주위에 병원비를 보탤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 주민들의 밭일과 논일을 도와주고 2~3만원의 일당을 받아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아들이 거동을 할 수 없어 화장실도 업고 가야 하는 형편이라 소일거리도 못하고 있어요. 못난 어미를 만나 한 평생 아파하던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아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최소한 혈액 투석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한편 이들 모자의 사연을 제보한 보산원2리 홍승목(65) 이장은 “신기호씨의 경우 형제가 있어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다. 장애등급이라도 받아보려고 했지만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로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며 “지금 마을에는 21가구가 거주하고 있지만 평균연령이 75세 이상이고 다들 생활이 넉넉지 않아 누구를 도울 수 있는 형편도 못된다. 마을에 기금이 있다면 회의를 통해 내어줄 수 있지만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작은 마을인지라 모아놓은 기금이 없어 아쉬울 뿐이며 이들 모자를 도울 수 있는 지역사회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