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안이 통과됐다. 당초 천안시와 천안시의회는 각각의 조례안을 발의하며 불협화음을 냈지만, 긴 논의 끝에 양측이 절충안에 합의하며 결국 의회안에 천안시의 요청대로 약간의 수정을 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사진은 시의회 조례안에 대해 설명하는 전종한 의원.
천안, 시vs의회 힘겨루기 끝 갈등 ‘봉합’
아산, 민주vs비민주 표 싸움으로 ‘상처’
진정한 주민자치의 시금석이 될 ‘주민참여예산제’가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조례안을 만드는 과정서부터 천안·아산 모두 갈등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 시작부터 이렇다 보니 향후 제도의 원활한 운영이 가능할지조차 우려되는 형편이다.
천안시는 시 공무원과 시의회 의원,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한 ‘주민참여예산제 추진단’을 구성해 상당기간 소통과 합의를 진행해 왔지만 세부적 운영방법에서 이견을 보이며 시와 의회가 각각 조례안을 발의하는 유례없는 사례를 만들었다.
아산시도 민주당 의원과 비민주당 의원들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채 결국 민주당 의원과 자유선진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같은 이름의 조례안이 제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기 까지 했다. 지난 4월에는 아산시가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을 발의해 상임위를 통과하기 까지 했지만 본회의에서 이의제기로 표결에 부쳐져 부결된 바 있다.
결국 천안에서는 조항의 일부 문장을 수정한 의회의 조례안이 통과되고 아산시의 경우는 찬성7, 반대6, 기권1 명으로 부결처리됐다.
각각 작지 않은상처를 안고 태어난 주민참여예산제가 향후 어떻게 운영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 긴 산통 끝에 통과
향후 운영과정에서 소통과 협의 더 필요할 듯
지난 31일 천안시의회 제150회 임시회가 폐회했다. 이번 임시회에선 총 16건이 부의안건에 대해 위원회별로 심의가 실시됐다.
이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안건은 바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안’.
지방재정법 제39조(시행령 46조)개정에 따라 전국 자치단체는 오는 9일까지 지방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자치단체는 재정적·행정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동안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안은, 천안시와 천안시의회가 하나의 사안에 미묘하게 성격이 다른 각각의 조례안을 발의하는 보기힘든 사례를 연출하며 팽팽한 줄다리기 양상을 보여 왔다.
‘개최→구성’, ‘평가→모니터링’
지난 30일 오전부터 시작된 시와 의회의 긴 공방은 오후 늦게서야 마무리됐다. 치열했던 논의에 비해 양측이 절충한 결과물의 변화는 사실 크지 않았다.
양측은 시의회 조례안 중 20조5항 지역회의 부분에서 ‘지역회의 개최가 어려운 경우 읍면동별 주민자치위원회 회의로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를 ‘시장은 지역회의 구성이 어려운 경우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가 그 기능을 대행하도록 할 수 있다’로 수정했다. 또 제25조 4호 지원추진단 기능과 관련,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평가’를 운영 ‘모니터링’으로 수정해 의결했다.
천안시 이성규 기획예산과장은 조례안 20조에서 지역회의의 기능과 관련한 대행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로 ‘시장’을 규정한 점과 여기에서 지역회의의 ‘개최’를 ‘구성’으로 바꾼 점에 의의를 뒀다.
천안시의회의 전종한 의원은 전체적으로 본질적인 내용변화가 아닌 형식상의 수정이라고 분석했다. 양측은 이런 수정안으로 절충을 마무리 했고 천안시가 제출한 조례안은 부의하지 않고 폐기시켰다.
“좋은 제도보다 좋은 운영이 더 중요하다”
천안시의회 전종한 의원은 의회안이 처리된 이후 “언론을 비롯해 외부에서는 힘겨루기 등 갈등적 요소만 부각했지만 사실 천안시는 주민참여예산제의 주요 주체중 하나이며 동반자적 관계다. 다소 진통은 있었지만 조례안이 커다란 파행 없이 통과되어서 다행”이라며 “앞으로 의견조율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향후에 계속될 주민참여예산제 추진단에서도 기존처럼 천안시의 동참을 바라고 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으니 소통과 조정을 좀 더 강화해 주민참여예산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안시 기획예산과 이성규 과장은 “주민참여예산제가 걸음마 단계인 만큼 행안부 표준안을 최대한 존중하려 했었다. 우선 세부적인 주민참여의 규정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동장 시절을 돌이켜보면 위원회 하나 만들고 운영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지역회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있어 반대의견을 냈던 것이다. 또 시 의회가 시민단체의 의견은 최대한 수용하면서 집행부인 시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을 해 주지 않아 조정과정에서 약간의 서운함도 있었다. 어쨌든 협의를 통해 조례안이 통과된 만큼 시도 주어진 역할에 맞게 원활한 운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참여예산제 추진단 소속으로 부의과정 전체를 지켜 본 천안아산경실련 정병인 간사는 “소통과 합의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사실 의회안도 추진단에서 만든 조례안의 수정안 이었기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추진단에 시 공무원과 시의원, 시민단체가 함께 하면서 전국적인 모범사례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조금 아쉽다”고 밝혔다.
정 간사는 “사실 좋은 조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주체들이 그 조례를 어떻게 실효화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세계적인 주민참여예산제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브라질의 뽀르뚜알레그리 시도, 정작 조례는 정립돼 있지 않다. 향후 운영과정에서 보다 의견 소통을 강화해 진정 내실있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운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그동안 지방정부가 독점하던 예산권을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으로 ‘지방자치 이념’과 ‘재정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제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작지 않은 상처와 미결감정을 남겼을지도 모를 이번 조례의 협의과정이 향후 운영과정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