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 짚어본 ‘유성기업 사태 중점 상황’
5월18일 직장폐쇄가 강제진압, 노동자·용역·경찰 폭력으로 이어져
‘잠 좀 자자’로 시작된 유성기업 사태
유성기업 사태의 핵심쟁점은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생산직 월급제다.
유성기업 노사는 2009년 말,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해 24시간 가동체제에서 0시에서 부터 오전 8시까지의 야간근무를 없애고 오전 8시부터 0시까지의 2교대 주간근무만을 하기로 합의안을 이끌어낸 바 있다. 단 생산능력과 생산량, 임금 등 세 가지 핵심사안은 특별교섭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노조는 이에 따라 5월3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해 13일 ‘조정정지 결정’을 받았으며 17일부터 이틀간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해 78.2%의 가결을 얻어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 18일 오전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한편 사측은 18일 오후 아산공장 직장패쇄를 결정했으며 용역경비를 동원해 야간 출근자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용역경비원 대포차 돌진으로 인해 노조원 13명이 다치는 사태가 발생했다.
파업 일주일째 공권력 투입해 강제해산
유성기업 파업 일주일째인 5월24일에는 아산경찰서가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농성 중이던 노조원 533명 모두를 연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성기업 노조는 5월18부터 7일간 공장을 불법점거한 채 관리직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조업중단으로 인한 완성차 생산차질을 초래해 국가경제에 막대한 악영향이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공권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노사는 5월23일 오후 직장폐쇄 이후 첫 대면을 했지만 해결점을 찾지 못했으며 24일 두 번째 교섭도 20여 분만에 결렬됐다. 교섭에서 노조 측은 공장을 재개하면 작업장에 복귀해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전환 등에 대한 논의를 하겠다고 요구했으며 사측은 주간 2교대제와 월급제 도입에 대해선 추후에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경찰은 노사 교섭이 결렬된 직후인 오후 3시부터 노조원들의 자진 해산을 권유하는 방송과 유인물을 배포했으며 오후 4시부터 본격적으로 공장 정문으로 향하는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헬기 및 물대포를 동원해 31개 중대 3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용역경비·노동자·경찰 폭력 충돌
6월22일, 유성기업에서 생산된 자동차 부품을 반출하는 과정에서 용역경비와 노동자가 충돌 했다.
이날 충돌은 오전 8시경 유성기업 정문에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노조원들의 공장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정문에 놓여 있던 컨테이너박스를 치우는 과정에서 노조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발생했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생산된 제품의 외부 반출을 위해 정문에 있던 컨테이너박스를 치우는 과정에서 노조원들이 달려들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조측은 “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정문 앞에 앉아 있던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당시 대부분 조합원들은 정문에서 수십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아침식사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충돌로 노조원 18명과 사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6명 등 24명이 다쳐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노사 양측은 6월15일 충돌하면서 용역직원 2명과 노조원 1명이 다쳐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한편 6월22일, 노사간의 충돌에 이어 노동자와 경찰 간의 폭력 충돌도 발생했다.
이날 충돌은 오후 9시경 공장에서 100여 m 떨어진 지하차도 부근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친 노동자들이 유성기업 인근에 마련된 집회장소인 대한은박지로 이동하는 중에 발생했으며 이동하던 노조원 1100여 명과 경찰이 물리적으로 충돌해 경찰 108명과 노조원 10여 명이 다쳐 평택과 아산, 천안 등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특히 노조원들은 경찰을 상대로 죽봉과 쇠파이프, 각목 등을 마구 휘둘렀고, 경찰도 노조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쏘아댔으며 경찰은 이날 이후 유성기업 앞에서 노조원들이 여는 집회는 원천 금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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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연속 2교대제와 생산직 월급제로 시작된 유성기업 사태는 직장폐쇄에 이어 공권력 투입 강제해산, 용역경비·노동자·경찰간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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