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마을 곳곳에 붉은 글씨로 ‘철거’라는 글이 써있다.
병천면 가전1리 용연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을 대부분을 둘러싼 펜스가 눈에 띈다. 조금 더 마을 안으로 진입하자 여름내 한 번도 깎지 않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으며 농가, 창고 등 여기저기에 큰 붉은 글씨의 ‘철거’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엽종수 이장 집에 모여 근심을 토로하는 용연마을 10가구 20명의 주민들은 100여년이 넘게 선대부터 이어진 생활터전에서 ‘전원주택단지’ 개발에 떠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이주보상 합의 믿었는데...
용연마을은 32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원주택조성사업부지에 14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14가구는 토지소유인 선대부터 회덕황씨종중에 매년 말 사용료(도지)를 내고 사용하고 있던 중 2007년 ㈜부경이 전원택지단지개발을 위해 이 일대 33만㎡를 매입했다.
주민들은 전원주택단지 조성을 막기 위해 적절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현수막 게시 등 반대농성을 시작했고 2008년 2월경 부경과 합의, 적절한 이주대책을 보상받는 조건으로 농성을 해제하고 단지조성사업에 대해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부경과 합의된 내용이 1만㎡ 규모 사업지내 집단택지를 공급받거나 가구당 일정금액의 이주보상비를 받기로 합의했으며 추후 협의해 1안과 2안을 정하기로 했다는 것.
문제가 발생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주민들은 부경이 2008년 합의한 이주대책보상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불법행위를 자행하며 일방적인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경과 ㈜K.B부동산신탁은 해당주민들을 상대로 건물철거 등 소송을 제기했고 10가구의 주민들은 이에 응소한 상태다. K.B부동산신탁과의 소송은 8월 중 선고가 있을 예정이며 부경과는 지난 21일 첫 공판이 진행됐다.
부경과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용연마을 엽종수 이장은 “천안지역사회에서 아파트단지조성사업을 필두로 발돋움한 부경의 기업이미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이주보상대책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리라 믿었다”며 “그런데 이주보상은커녕 주민들을 내몰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행위를 하고 불안감을 조성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사법·행정기관 믿을 수 없어
주민들은 부경이 건물철거 소송이 진행되기 전 마을내의 상여집, 관습상 도로 점유, 가로등 등 마을재산을 훼손하는가 하면 가옥 담장, 차고 등을 허물었으며 나무를 베거나 텃밭에 가꾸고 있던 농작물을 훼손시켰다고 밝혔다.
엽종수 이장도 가옥 옆 텃밭에 무와 배추를 심었지만 개인사유지라며 도로를 점유해 수확을 하지 못한 채 방치해야 했다.
현재 가로등이 훼손된 상태에서 밤이 되면 개별 농가 불빛을 제외하고 마을전체가 어둡기 때문에 해가 떨어지면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CCTV 8대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주민들은 지난 2월 건설사 측의 가로등 무단손괴행위 및 상여집 훼손 등 불법행위에 대해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주민은 경찰의 무혐의처분에 반발, 건설사측의 불법혐의에 대해 재고소했다.
주민들의 이 같은 민원에 대해 천안시는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동남구청은 가로등 파손에 대한 주민의 진정에 대해 지난 3월 ‘마을주민과 건설업체와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발생한 사항으로 수선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관습도로 폐쇄에 대해서도 개인사유지에 있는 도로를 폐쇄한 것에 대해서는 ‘강제적인 행정조치가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천안시는 건설사측의 민원에 대해서는 즉각 반응했다.
건설사측은 주민들이 사용하는 지하수가 신고 되지 않은 불법 시설이라며 천안시에 민원을 제기했고 시는 지난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마을주민에게 ‘사용하고 있는 지하수는 허가받지 않은 불법시설’이라며 ‘토지주의 토지사용승낙을 받아 이용신고하든지 아니면 폐쇄(원상회복)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또한 불법 지하수 사용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마을주민들은 수도사업소를 오가며 지하수 시설이 천안시의 지원과 허가를 받은 시설임을 입증하는 관련 서류를 찾아내 합법시설임을 입증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병천면사무소는 지난 1월 엽종섭 이장에게 농지에 불법으로 주택을 지어 사용하고 있다며 주택 철거명령을 내렸다. 살고 있는 주택을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농지불법 전용으로 고발조치,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엽 이장은 여러 관청을 돌며 관련 서류를 찾아 헤맨 끝에 자신의 주택이 행정기관의 허가를 받은 합법시설물임을 입증해야 했다.
주민들은 건설사 보다 천안시에 대한 서운함과 울분이 더 크다.
건설사 ‘높은 보상가 협상 어렵다’
용연마을 곳곳에 붉은 글씨로 ‘철거’라는 글이 써있다.
마을주민들의 주장에 대해 ㈜부경측과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소송중인 주민측 변호인은 “부경이 2008년 2월 구두로 한 이주보상합의는 주민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며 “이제 와서 높은 보상가 때문에 이주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부경측 주장은 터무니 없다”고 밝혔다.
이 변호인은 “전원주택 개발을 추진하면서 주민합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허가가 있어야 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천안시에도 행정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 중 일부는 지금살고 있는 주택토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다. 1997년 마을 사람들 중 5가구가 지금살고 있는 주택토지를 매입했지만 판매한 종중 사람이 불법증여임이 밝혀져 종중에서 처분금지가처분을 제기했고, 종중의 승소판결로 이전등기가 말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가구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10가구 20명의 용연마을 주민들 중에는 장애인, 독거노인 등 지금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잃으면 당장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있다.
엽종수 이장은 “수십년 동안 살아왔던 지역을 떠나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건설사측의 이주보상 합의만 믿고 있던 주민들은 행정기관을 비롯, 이제 기대야 할 어떤 곳도 찾을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납득할 만한 이주보상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공훈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