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어요. 기억나지 않아요…. 남편이 죽었다니 믿을 수 없어요…”
지난 12일(화) 오전 11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3호 법정에서는 몽골 이주여성 N씨(26)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2007년 국제결혼 후 한국에 들어온 N씨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날 공판에서는 당시의 CCTV화면이 공개 됐는데도 N씨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N씨는 지난달 8일 오전 11시 순천향대 천안병원 응급실에서 아이문제로 다투다 커터칼로 남편 이씨의 목을 찔렀다고 한다. 남편은 목 왼쪽 경동맥 절단으로 인한 과다출혈과 신경경색으로 11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날 열린 1차 공판에서 담당 변호사는 N씨의 정신병이 의심된다며 면밀한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분 남짓 진행된 짧은 공판 마지막, 담당 판사는 20일(수) 오후4시 천안지원 4호 법정에서 2차 공판을 속개한다고 밝혔다.
몽골이주여성 N씨를 보아 온 일부 외국인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몽골이주민들은 그녀가 예전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왔고 도움의 손길도 수차례 요구했었지만 지역사회에서 그녀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사건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람이었는데…
외국인 지원기관, 심적 안정과 여유를 주는 밀착소통, 멘토역할 해야
노란 머리로 염색을 하고 아기를 업고 다니던 자그마한 체구의 N씨.
산만한 정신상태에 남루한 외모로 구걸로 연명하던 그녀가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이는 결국 폐렴과 영양부족, 저혈당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서 만난 남편은 아이를 놔두고 혼자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럴 수 없다고 맞선 그녀와의 말다툼 끝에 주변의 특별한 제지없이 사건은 결국 안타까운 상황으로 치달았다.
“2009년 북면에서 처음 도움을 청하는 몽골이주여성 N씨를 만났었죠. 그때도 좀 불안해 보였었어요. 방황끼가 약간 있었다고 할까. 결혼한 지 1년밖에 안됐지만 부부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남편과의 접촉을 시도했었는데 당시 공주의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왔다갔다 일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애 때문에 살지, 사실 아내에게는 별 애정이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한민족 이주동포의 집 강범식 소장은 N씨를 처음 만났던 몇 년 전을 떠올렸다. 그에 따르면 분명한 학대나 폭력이 있었다면 남편에게 귀책사유를 물어 이혼이라도 하게 했을 텐데 딱히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N씨는 당시부터 정신이상의 증세가 다분했다고 한다. 단편적인 감정표현은 가능했지만 일관성이 없었다고.
남편은 강범식 소장에게 “아들만 나한테 주면 아내를 몽골로 다시 보내버리겠다”는 말을 했었다.
N씨는 이후 아기를 빼앗길까봐 늘 아이를 업고 다녔다. 하지만 스스로 불안한 상태나 보니 이유식도 제대로 먹이지 않았고 아이는 폐렴, 감기를 달고 산데다 늘 미열이 있었다.
다문화공생센터 김기수 센터장의 기억도 이와 큰 차이가 없다.
“N가 우울증이었다면 아예 노출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는 거의 ‘조증’에 가까운 상태였어요. 문성동 구 세무서 근처의 몽골인 식당에 드나들며 집에서 싸운 얘기, 시어머니와 다툰 얘기 등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습니다. 또 파출소, 출입국사무소, 각종 지원단체 등 안 다닌 곳이 없어요. 지역사회에 노출될대로 노출되고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람인데 결국 이런 사건으로 귀결되고 말다니 착잡하기만 합니다.”
불안한 상태의 그녀가 수많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입원치료나 보호안내 등 제대로 된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강범식 소장은 “정부와 일선 기관들의 다문화 정책은 대부분 눈에 보여지고 계량되는 프로그램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혹시 폭력으로 학대를 받았다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 정신적인 지원은 사실 거의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선 기관 종사자들이 이번 사건에 충분히 책임감을 느끼고 방문상담이나 멘토링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죠.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 개개인마다 심적인 안정과 여유를 줄 수 있는 스킨십,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