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최초의 좌식배구실업팀 ‘천안시청 좌식배구단’. 올해 남은 대회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다.
‘팡!’, ‘팡!’, ‘어이!’, ‘나이스!’, ‘파이팅!’…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던 지난 주 어느 날 오후 4시.
유량동 천안시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는 선수들의 기합소리와 강력한 스파이크 소리가 거친 장맛비를 뚫고 들려온다.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같은 시간 주중이면 체육관을 울리는 운동소리는 활기를 더한다.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의 강도 높은 훈련 시간이다.
‘천안시청 좌식배구단’(단장 박노철)은 현재 단장 1명, 감독 1명, 선수 7명이 정식으로 등록돼 있고, 경기때만 출전하는 번외 선수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선수단의 엔트리는 12명으로 구성돼야 하지만 전국 20여 개 팀 대부분이 8~10명 정도의 선수단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선수발굴이 어렵기 때문이다. 천안시청 소속의 실업팀 선수들이다보니 운동일정은 무척 빡빡한 편이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오전 운동은 오후 1시까지 계속된다. 2시간의 점심 및 휴식시간이 지나면 다시 3시부터 6시까지 오후 훈련이 이어진다.
좌식배구는 배구와 모든 규칙이 유사하다. 엉덩이를 땅에서 떼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서브를 블로킹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다를 뿐이다. 좌식배구 선수들의 장애특성상 모든 체중을 양팔에 실어야 하기에 운동의 강도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선수들의 얼굴과 머리, 운동복은 늘 땀에 홍건이 젖어있다.
하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도 집중력을 흩트리지도 않는다. 선수들에게서는 최근의 전국대회 우승팀 이라는 ‘포스’가 묻어나온다.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된 ‘천안시청 좌식배구단’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이 창단된 것은 지난 4월19일.
전국 최초로 배구단의 전 운영비를 후원받는 실업팀으로 탄생한 이후, 3번의 전국대회에서 번번이 우승을 놓쳤다.
고양, 김해 등에서 열린 대회에서 2위 2번, 3위 1번을 차지하면서 감독과 선수들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부담과 초조함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은 오래지않아 말끔히 해소됐다. 지난달 25일과 26일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된 제17회 전국좌식배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고대하던 ‘첫’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번 우승은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팀이 됐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 선수들의 사기와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수년간 많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 오랜 산고 끝에 탄생하게 된 이 실업팀은 선수들에게 있어 말 그대로 ‘꿈의 무대’다.
전국에는 총 16개의 좌식배구팀이 있다. 유일한 실업팀인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은 모든 좌식배구선수단과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선수 하나하나 나름의 장단점과 장애특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지만 팀으로써 뭉치게 되는 순간 이런 것들은 하나로 없어져 버린다. 팀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 한 번 맛 본 승리의 달콤함은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을 더욱 승리에 목마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희 기자>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
7인7색, ‘나는 배구선수다’
이력도 특색도 가지가지
7명 선수들은 다 나름대로의 특징과 이력을 갖고 있다.
우선 대구대회 우승의 주역이자 MVP를 차지한 임창수 선수(44)는 손가락이 절단된 6급 장애인이다. 장애6급은 좌식배구팀에 단 1명만 합류할 수 있는 최소장애다. 그렇다보니 늘 궂은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실질적인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좌식배구는 5년 전에 시작했지만 우승은 이번이 생전 처음이었어요.(웃음) 그 기분은 말로 할 수가 없었죠. 역시 운동선수에게 눈 앞 승부에서의 승리와 우승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절감했어요. 그동안 장애인 선수들은 누구나 생계 때문에 맘껏 운동을 할 수 없었는데 천안시청 실업팀이 생기면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됐어요. 선수들 모두 열심히만 하면 앞으로 모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답니다.”
임창수 선수의 꿈은 많은 좌식배구 후배들을 양성하고 가르치는 지도자로써 우승을 해보는 것이다.
선수단의 나이는 평균 40대다. 30대는 단 한명에 불과한데 바로 유일하게 타 지역에서 ‘스카웃’을 통해 입단한 남 건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남 건 선수는 최고의 실력으로 팀의 기둥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징이라면 식사량이 굉장히 많다는 것. 한 번 마음먹고 먹으면 10인분도 가능하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이옥철 선수는 가장 극적인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배구단의 자랑이다. 성남면 대정리 산속에서 홀어머니와 외로이 살던 그는 중복장애로 난청과 척추후만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 처음에는 척추가 앞뒤로 휜데다 다리가 가늘고 짧아 과연 운동을 잘 할 수 있을까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옥철 선수는 좌식배구에서 수비전문 선수로 세계선수권대회,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갖고 있다.
송영주 선수는 98년부터 한빛배구단에서 활약해 온 원년멤버다. 심한 척수장애를 갖고 있어 사실 허리 아래로는 바늘로 찔러도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세계적으로도 척수장애를 가진 좌식배구 선수는 거의 없지만 송 선수는 게임중 두뇌플레이에 가장 능한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손기석 선수는 ‘움직이는 종합병원’으로 불린다.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붙여진 별명이란다. 고지방, 고혈압에, 복부비만까지 빠지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승부욕 만큼은 다른 선수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이태석 선수는 과묵하고 말수가 적지만 묵묵히 제 역할을 해 내는 스타일. 박노철 단장은 그를 두고 우직하다며 ‘곰돌이’라 부른다. 정우종 선수는 30대 초반이라도 믿을 동안이지만 실제 나이는 40대 후반이다. 누구보다 성실하지만 마음이 좀 여린 편이라고. 다른 선수들은 그가 독기를 품는 순간이 팀의 잠재력이 극대화 될 때라고 기대하고 있다.
<희>
천안시청 좌식배구단 선수들. 좌로부터 임창수, 이옥철, 송영주, 이태석, 정우종, 남 건, 손기석 선수.
인터뷰- 정연화 감독(53)
“올해 남은 대회 싹쓸이 우승이 목표!”
정연화 감독.
“‘최고의 자리는 역시 빛나고 달콤하다’는 것을 우리 선수들 모두가 느꼈을 거에요. 처음에는 우려도 많았어요. 기본기, 자신감 등 모든 면에서 모자랐거든요. 앞으로 남은 대회 전승이 목표입니다. 많이 지켜봐 주세요.”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의 초대감독으로 전국최초의 실업 좌식배구단 감독인 정연화 감독.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그녀는 현대건설 배구단의 창단멤버로 시작해 79년 은퇴할 때까지 40여 년간을 코트에서 살아왔다.
은퇴 후에도 입시체육 지도자로 활동하던 그녀는 생활체육으로 배구를 지도하다가 좌식배구를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면서 07년부터 좌식배구 코치로 활약하게 됐다. 09년에는 좌식배구 국가대표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다. 직전에는 군포시 좌식배구단의 감독으로 활약하면서 연 5회 우승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좌식배구는 입식배구에 비해 박진감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정말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어요. 그만큼 두뇌플레이가 중요하죠. 특히 강팀들이 뚜렷하다보니 타 팀 주요 선수들을 파악하고 약점을 공략해야죠.”
좌식배구의 지도자는 장애유형, 정도에 따라 선수 개개인 마다 세부적인 지도를 해야 한다. 선수들이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정말 힘들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감독의 역할.
“선수들에게 제일 고마운 부분이에요. 선수들 모두가 착하고 성실했거든요. ‘수비가 되는 팀이 우승한다’ 이것이 제가 가진 철칙이다 보니 혹독한 훈련이 필요했고 악과 근성을 키워주기 위해 좀 심하게 한 부분도 있었어요. 우승 후에는 사과했는데 다 이해해 줄까요?(웃음)”
코치, 트레이너, 의료담당 등도 없이 일인다역을 맡는 감독이지만 어려움을 이겨낸 성과의 보람은 늘 달콤하다. 첫 우승을 하던 날은 쏟아지는 기쁨의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제 현역시절의 경험을 보더라도 실력은 70이라면 팀웍이 30이상이에요. 팀웍이 가장 중요합니다. 타 시군들도 천안시청 처럼 실업팀을 만들어 좌식배구 실업리그가 운영됐으면 좋겠어요. 우선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은 최고의 팀웍으로 올해 남은 대회 전승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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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노철(45·천안시청좌식배구단 단장)
“전국 최초”를 넘어 “전국 최고”로!
박노철 단장.
“이제 시작입니다. 장애 당사자가 실업팀의 운동선수로 마음껏 운동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천안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애정속에 전국 최고의 좌식배구단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에게는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 한다. 지자체나 기업에서 장애인스포츠를 운영하는 경우는 사실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단체종목 전체를 통틀어서도 ‘서울시 휠체어 농구단’에 이은 두 번째 실업팀이고 좌식배구에서는 전국 최초의 실업팀이다.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은 그래서 다른 장애인스포츠 팀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다.
천안에서 좌식배구 실업팀이 만들어 지는 데는 (사)한빛회의 공동대표,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박노철 대표의 노력이 누구보다 두드러졌다.
“우선 가장 큰 원동력은 우리 좌식배구 선수들의 열망이었어요. 또 지난 98년부터 한빛회가 6개의 스포츠클럽을 운영하면서 도민체전, 전국체전 등에 꾸준히 출전해 왔던 노력을 강조했던 게 조금 더 설득력을 발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구나 좌식배구 실업팀은 직접적인 장애인고용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잖아요.”
하지만 이런 노력의 성과들도 천안시의 의지가 없었다면 다른 지자체들처럼 실현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천안시장과 지역 시·도 의원들이 적극 힘을 실어주면서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은 ‘전국 최초’라는 자랑스런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올해 4월19일 창단된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은 창단 3개월도 안 돼 지난달 전국대회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아직 어려운 점은 많지만 선수들과 박 단장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김종문 도의원과 시장님의 도움으로 배구단 전용버스도 생기고, 유병국 도의원이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주어 올해는 선수들의 월급 걱정도 덜었어요. 7월 천안시청 월례조회 때는 시장님의 배려로 천안시청 전 공무원 앞에서 다시 트로피 전달식을 가졌죠. 이런 작은 배려들이 많은 동기부여가 되고 있어요.”
박 단장은 천안시청 좌식배구단이 실업 장애인 스포츠단의 모범적인 선례로 남아 제2, 제3의 실업팀이 만들어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길 소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실력은 물론이고 매너를 겸비한 팀이 되자고 늘 강조해요. 말 한마디 손짓하나 신경쓰라고 주문하는 중이죠. ‘전국 최초’의 의미를 넘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전구 최고’의 팀이 되고 싶습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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