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히 해결되는 듯 보이던 독립기념관 노동자 문제가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독립기념관은 얼마 전, 지난 10여 년간 수의계약으로 운영돼 왔던 고용관계를 공개입찰로 전환했다.
당시 이로 인해 절반이상이 50대였던 직원들이 심각한 고용불안에 내몰렸던 상황. 하지만 노동조합이 천막농성까지 펼쳐가면서 독립기념관사업단과 협상을 벌여 어렵게어렵게 고용안정협약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 협상을 이끌던 노조위원장이 최근 불확실한 이유로 고용승계에서 제외되면서 갈등의 불씨를 남겼고 기존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갈등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용승계에서 제외되면서 사실상 해고를 당한 독립기념관사내하청 노동조합 강정형 위원장.
2월말, 독립기념관과 노동조합이 어렵게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의 내용은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하되, 독립기념관이 매년 입찰 참여업체에게 기존 근로자들의 고용승계를 입찰조건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천막농성은 이를 통해 2월28일 마무리 됐다.
그동안 수의계약으로 운영돼 왔던 시설, 미화, 안내의 세 분야는 이제 공개입찰을 통해 각각 한국보안시설(주), (합)나라산업, 독립기념관사업단이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립기념관사업단 노동조합 역시 독립기념관 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아우르는 ‘독립기념관사내하청 노동조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고용승계를 보장한다는 약속에서 노동조합 위원장은 고용승계에서 제외됐을 뿐더러 직원들에게는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노조, “뒷통수 치기에 당했다”
한국노총 천안지역지부는 지난 12일(화), ‘노동조합 말살을 위한 독립기념관의 노동조합 뒷통수 치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부는 이를 통해 ‘독립기념관으로부터 4월 1일자로 시설관리용역을 위탁받은 한국보안시설㈜는 기존 시설부서 근로자들을 전원 재고용하면서 노동조합 탈퇴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재고용 할 수 없다며 심지어 노동조합 탈퇴서와 근로계약서를 같이 쓰게 했다. 거기다 회사는 한술 더 떠서 독립기념관 측에서 건네준 인원배치 명단에 노동조합 위원장이 없다며 노동조합 위원장의 재고용을 거부하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독립기념관 측 역시 “고용승계에는 합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고용은 해당업체와 알아서 할 일”이라며 모른 척 하고 있다는 게 노조측의 주장이다.
어쨌든 독립기념관 내에서 일하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권익보호를 위해 힘써왔던 위원장은 한순간에 일자리를 빼앗겨 버린 상황이다.
그동안 독립기념관사업단 노조를 대표해 오던 강정형 위원장은 “한마디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협의과정에서 여러 가지 요구사항들을 제시하고 주장하면서 말하자면 ‘미운 털’이 박힌 듯 하다. 12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상태다. 한국노총 천안지역지부에서 고용자 측 팀장과 13일 이야기를 나누고 요구사항을 전달했는데 아직 확답은 오지 않았다”며 “독립기념관의 처사에 강력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근로조건은 더 악화될 분위기
문제가 되는 것은 강정형 노조위원장의 해고 뿐만아니라 노동조합의 해체 시도다.
독립기념관사업단 노조를 이어받은 ‘독립기념관사내하청 노동조합’에서 탈퇴를 해야만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수 있다는 새 업체들의 주장은 노조에 호의적이던 직원들을 갈등하게 하고 있다.
한국노총 천안지역지부 육길수 기획부장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한 이유로 해고를 하거나, 노동조합 탈퇴를 고용조건으로 하는 행위는 모두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엄연한 범법행위”라며 적극적인 연대투쟁의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만들어졌던 노조는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상)을 통해 기존에는 전무했던 설·추석 상여금 20만원, 하계휴가비 20만원, 또 야간당직비의 경우 일 1만3000원에서 2만원으로의 인상을 이끌어 낸 바 있다.
하지만 공개입찰을 통해 운영사업자가 선정되면서 이 같은 조건들을 계속 유지·관철 시키려던 노조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10여 년간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청소, 경비, 안내 등 독립기념관의 궂은 일을 담당해 왔던 80여 직원들에게 설·추석 상여금과 하계휴가비 20만원은 지난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상황.
최저생계비를 오가던 그들의 근로조건은 오히려 퇴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