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지역 대형마트는 모두 7곳. 대형마트가 전국 평균 15만명에 1개소가 있다면 천안은 8만명 당 1개소가 있는 셈으로 이미 포화상태에 있다. 올해 초 신부동 신세계백화점에 이마트가 입점한다는 소식에 신부동 중소상가들이 반발한바 있다. 대형마트가 이 일대 중소상가를 흡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까지 잠식, 지역경제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중소상인의 폐업에 따른 실업 등 문제가 심각하다. 이처럼 대형마트에 치이고 여기에 골목상점까지 잠식하는 기업형슈퍼(SSM) 확장으로 중소상가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중소상가가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전통, 차별화, 경영노하우 등 경쟁력을 갖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 재래시장, 특화거리에 있는 이들 중소상가를 소개해 본다.
43년 전통 자랑하는 ‘쪽문만두집’
남산중앙시장에 자리잡은 쪽문만두집은 43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30년간 쪽문만두집을 지켜온 할머니로부터 13년 전 가게를 인수하고 만두비법을 전수받은 윤미옥(53)씨. 현재 올케와 쪽문만두집을 운영하고 있다.
20여년 전 천안으로 시집온 그녀는 쪽문만두집의 단골손님이었다. 어느 날 주인할머니가 연로해 더 이상 만두집을 경영하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운영하겠다고 졸랐다.
“오랜 전통을 가진 쪽문만두집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할머니가 힘든 일이라 애기엄마는 하지 못한다고 만류했는데 가끔 한 번씩 찾아오셔서 아직도 하고 있냐며 안부를 물으시곤 해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쪽문만두집’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다른 만두집은 만두속 재료로 무말랭이를 사용하지만 이곳은 생무로 채쳐, 소금에 절여 짠 것을 재료로 쓴다. 소비층도 다양한데 어린아이들부터 80세 어르신들까지 소비층도 다양하다.
1인분에 8개 2500원. 메뉴는 달랑 찐만두, 군만두 두 개다. 쪽문만두집의 인기는 지역뿐이 아니다. 짜고 맵지 않아 외국인들도 좋아하는데 여행사에서 가이드가 일부러 관광객들을 데리고 올 정도다.
하루 약 2000개를 판매한다. 새벽 5시부터 준비하지만 모두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에 더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한다.
사람들이 쪽문만두집을 즐겨 찾는 이유는 맛도 있지만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43년 전 만두맛과 5평 남짓 허름한 가게는 변치 않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싶었는데 손님들이 하지 말래요. 추억의 장소가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죠. 타지나 외국에 갔다가 몇 년 만에 찾은 손님, 학창시절 즐겨 찾았다는 손님, 임신해서 쪽문만두가 먹고 싶어 찾아왔다는 손님, 그분들이 있어 예전 그대로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만두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속상하다는 윤미옥씨는 자신이 그랬듯 때가 되면 다른 이에게 이곳을 물려줄 생각이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물려줘야죠.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에요. 마진도 많지 않고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한 이곳이 앞으로도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성정가구거리 가구형제
천안특화거리 중에 하나가 성정가구거리다.
성장가구거리에서 가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양훈(46·인아트 대표), 장승훈(44·우드피아 대표)형제.
나무와 인연이 깊은 장 형제는 2대째 가구점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제재소를 운영하다 78년 중앙남산시장에서 가구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가구점에서 일한 이들 형제는 학교를 졸업하고 자연스레 가구점을 운영하게 됐고 동생이 먼저 90년대 말 성정가구거리에서 시작, 장양훈씨는 2000년에 합류했다.
천안지역에 하나 둘 가구거리가 들어서면서 차별화를 고민한 장양훈씨는 3년 전 원목가구로 방향을 선회했다. 다행히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원목가구로 이어졌고 가게매출에도 영향을 줬다.
“가격부담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어요. 새가구 증후군, 폐자재로 가구를 만들고 있다는 언론의 고발 등 인식이 전환되면서 MDF, PB 등 인조목보다 가격이 훨씬 고가임에도 원목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손님들에게 우스게 소리로 5년을 더 사시려면 원목으로 바꾸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장양훈씨는 원목의 좋은 점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손님들에게 권한다. 비염이 있던 그는 원목가구를 취급하기 전 가게에 들어서면 재채기부터 나왔는데 비염이 호전됐다고. 또한 아토피로 고생하다 집 가구를 원목으로 바꾼 후 아이들이 아토피 증세가 나아지고 있는 것을 예로 들었다.
장 형제의 경쟁력은 가격과 품질의 정직함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무와 함께한 전문성이다.
“좋은 나무로 가구는 수 십년을 사용해요.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가구점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좋지 않지만(웃음) 취향에 앞서 재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사실 손님 대부분이 재질을 정확히 모르른 경우가 많죠. 스프러스나무, 자작나무, 편백나무 등 원목 종류와 특징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있어요.”
장양훈씨는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이 경쟁이 가열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세일행사가 이어져 피해가 막심하다”며 “지역중소상가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시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줄서서 기다리는 족발집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굴 때, 남산중앙 시장의 ‘장터즉석 왕족발’ 앞에는 족발을 사려는 사람들의 열기가 월드컵열기에 못지않았다. 길게 늘어선 줄에 합류해 보지만 이미 재료는 다 떨어졌단다.
장을 보기 위해 재래시장을 찾을 때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풍부한 먹거리. 그 중에서도 특히 이곳 ‘장터즉석 왕족발’은 평소에도 준비된 재료가 다 떨어지는 불상사(?)가 빈번하게 벌어질 정도로 입소문이 나 있다.
13년 전 전라도 광주에서 비법을 전수받아 남산중앙시장에서 족발가게를 시작한 정균옥(45)씨.
‘장터즉석 왕족발’ 맛의 비결은 냉동 족발을 사용하지 않고 한약과 갖가지 재료를 넣어 매일 삶아, 달지 않으면서도 달콤하고 고기가 쫄깃쫄깃 하다.
“족발특유의 고기냄새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가 필수에요. 족발집마다 사용하는 한약재가 조금씩 다르죠. 남산중앙시장에서 구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주문이 들어 올 때마다 즉석에서 족발을 썰다보면 잔손이 많이 가지만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산중앙시장에 맛있는 족발집이 생겼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경쟁 족발집이 하나 둘 생기기까지 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매출은 절대 밝힐 수 없다던 000씨. 하루 족발 100~200개는 기본, 많이 판매할 때는 300개를 훌쩍 넘긴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정균옥씨가 가게를 운영하면서 곤란한 것은 재료가 모두 떨어졌을 때다. 이를 잘 아는 단골손님들은 미리 전화로 주문 해 놓는 센스를 발휘한다.
딱 10년만 장사하고 그만두려했다는 정균옥씨. 인기 때문일까 앞으로 몇 년은 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다보니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래시장을 찾아와 이용해 주었으면 하죠. 아쉬움이 있다면 재래시장상인들이 손님편의를 위해 조금 일찍 문을 열고 조금 늦게 문을 닫았으면 해요. 그래야 재래시장 상가들 모두가 장사가 잘 되지 않겠어요?”
<공훈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