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지 가진 실직 노숙인들 보호하며 숙식지원
부족한 예산도 문제지만 입소자 위한 일자리와 의료지원 절실
새벽 4시30분.
3~4명씩 자는, 아직 어두운 작은 방에서 한명 두명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간단히 세면장을 찾아 씻고, 미리 준비되어있는 음식으로 아침을 대충 챙겨먹는다. 정해진 아침식사 시간은 아침 6시부터 7시까지 한 시간. 하지만 그전에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도 많다.
이 집에는 2층까지 해서 총 7개의 방이 있다. 사는 사람은 현재 총 26명. 곧 한 명이 추가될 예정이다.
들어오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입소의사를 밝히면 대기자로 분류돼 일주일간 적응 과정을 심사 받는다. 이 기간동안 생활적응이나 규칙준수 여부를 평가받다가 이후 소장, 상담원, 야간지도원, 팀장이 만장일치로 찬성할 때 입소가 결정된다.
규칙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기상은 5시이고, 외출시 별도연락이 없다면 입소시간은 9시까지다. 취침 소등은 저녁 10시부터고 무단으로 2일 이상 연락 없을시 퇴소 조치된다. 음주 및 알콜 취입시에도 즉각 퇴소되고 입소자간 다툼이 있어도 이유불문 쌍방 모두 즉각 나가야 한다. 시설내는 당연히 금연이다.
군부대, 스파르타 학원, 운동부 합숙소 등을 연상했다면 답은 ‘아니다’이다.
여기는 바로 세상 끝까지 몰린 이들이 칼날같은 현실과 싸워가며 애틋하고 소중한 희망의 싹을 틔우는 곳. ‘천안희망쉼터’다.
재활을 준비하는 보금자리 ‘천안희망쉼터’
천안시의 유일한 노숙인 쉼터 ‘천안희망쉼터’
천안희망쉼터가 지금의 모습으로 문을 연 것은 지난 2005년 1월이다.
IMF이후 실직, 경제적 파탄, 가정의 해체 등이 대규모로 확산되면서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됐던 실직 노숙자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가 됐다.
천안에서는 지난 98년부터 대한성공회 유지재단 ‘성노의 집’이 시의 위탁을 받아 노숙자들을 위한 봉사를 담당해 오다 2005년 당시 총 사업비 1억9900만원을 투입해 사무실1, 방5, 주방1, 욕실2, 거실 겸 식당1개를 갖춘 시설로 문을 열었다. 2009년 12월에는 한 층을 더 올려 방 2개가 추가됐다. 이제껏 쉼터를 거쳐 간 사람은 1000명을 훌쩍 넘는다.
사업은 노숙인을 위한 쉼터의 의미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실직자, 노숙인 중 스스로 강인한 자활의지를 가진 이들이 일정기간 이용하는 재활시설의 성격으로 자리를 잡았다.
“월 평균 10~15명은 입소를 상담하러 와요. 지난 겨울에는 28명인가까지 상담한 적도 있어요. 규율은 조금 엄한 편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리가 되지 않아요.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이틀에 한번꼴로 싸움이 나고 유리창이 성할 날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입소하신 분들 대부분이 잘 협조해 주시고 도와주세요. 요즘에는 트러블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천안희망쉼터’의 일반현황을 설명해 준 훤칠한 키의 이정화 팀장은 이 곳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쉼터에서 일해온 지는 이제 26개월 정도가 됐다고 한다.
상근직원은 관리원인 이 팀장과 지도원, 상담원, 취사원의 4명이다. 직함은 다르지만 청소나 빨래 같은 일은 다같이 구별없이 나눠 하고 있다.
입소자 모두 일하며 저축하는 중
이 팀장은 벽에 붙여놓은 규정이외에도 입소자들이 지켜야 할 것이 좀 더 있다고 말한다.
가장 엄하게 금하는 것은 술을 먹고 귀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편안한 잠을 방해하고 갈등이 야기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사무실에는 음주측정기까지 비치돼 있다.
다른 중요 규칙으로는 일(자활)을 해야 한다는 것, 또 수입의 30%이상은 저축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그는 서랍 속에서 입소자 인원만큼의 통장들을 보여주었다.
요즘은 각방별로 당번을 정해 복도, 화장실, 방 청소 정도는 스스로 하도록 했다.
서로를 최대한 배려해야만 가능한 공동생활. 각자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힘들다. 하지만 현재 쉼터에 들어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활의지가 강한 만큼 많은 협조를 해주는 편이라고 한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는 천안역에서 노숙하는 15명 정도가 자의 반, 타의 반 추위를 견디다 못해 입소의사를 비춰오기도 했다.
하지만 방탕한 생활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데다 규칙을 지켜낼 의사도 없고 자활의지가 부족하다보니 금새 쉼터를 뛰쳐나가고 말았다.
이 팀장은 “보호실에 가보면 그렇게 두고 간 보따리가 아직도 수십 개입니다. 지금은 노숙인들을 데려오기 보다는 구청이나 동사무소, 파출소 등 기관을 통해서나 인터넷으로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 대부분입니다”라고 말한다.
쉼터 생활인들은 의무적으로 자활을 위해 노력하고 저축해야 한다. 쉼터 생활인들의 통장.
“희망쉼터가 은인이죠…”
“희망쉼터가 은인이죠. 여기가 아니면 벌써 죽었을 거에요.”
천안역에서 1년이나 노숙을 하던 배모씨(56)는 2010년 3월 이정화 팀장이 데려온 사람이다. 당시 그는 척추를 다쳐 일어서지도 못하고 용변을 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 팀장은 사회복지사를 통해 그를 천안의료원에 입원시켰고 두달간 무료로 치료받게 했다. 지금도 큰일은 못하지만 결국 배씨는 조금씩 일하며 스스로 삶을 헤쳐갈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지역사회가 조금씩 관심과 자원을 보태 한 사람을 정상적인 궤도로 올려 놓은 케이스다.
가장 잘 자활한 모범사례로는 최모씨(60)를 들 수 있다.
그는 쉼터에서 3000만원 이상의 돈을 모아 작년에 독립한 뒤 지금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직생활중 사업을 실패해 노숙생활까지 해야했던 그는 시련을 딛고 일어나 작년에는 자녀를 결혼까지 시켰다. 그는 쉼터에서 생활하며 한달내내 일용직에 나가 월 250만원 가까이를 벌었고 집에 생활비를 조금씩 보낼 정도로 치열하게 생활했다.
사채빚이 7000만원이 넘던 김모씨도 쉼터에서 생활하며 빚을 갚아 나가 결국 신용회복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규정상 쉼터에 있을 수 있는 기간은 1년이다. 하지만 저축을 많이 하거나 열심히 자활의지를 보여준 사람들에게는 3개월 단위로 연장을 시켜주어 2년까지 쉼터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현재 쉼터 생활인중 가장 많은 저축을 한 이는 1300여 만원을 모아 놓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규칙 잘 지켜주고 열심히 생활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나가는 모습을 보면 쉼터 상근자들도 괜히 뿌듯하고 보람도 느낀다.
쉼터지원 뺀 노숙인 관련 예산은 단 700만원
노숙인, 실직자들이 다시 일어나도록 하는 ‘재활’의 가장 기초는 먹고 자는 문제의 해결이다.
인간의 기본권으로써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실직 노숙인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숙제이기도 하다. 자고 먹을 곳이 없으면 아무리 재활의지가 있어도 공염불이 되기 때문이다.
쉼터는 그런 가장 기본적인 디딤돌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
쉼터에서는 한달에 한번 알콜클리닉과 심리클리닉이 열린다.
매월 셋째주 화요일에는 신부님이나 목사·전도사님을 초청해 설교·토론회를 갖기도 한다. 분기마다 저축왕에게는 조촐한 선물도 주어지고 분기마다 생일을 맞은 이들을 모아 케이크와 떡으로 작은 잔치를 펼쳐주기도 한다.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천안희망쉼터의 1년 운영예산은 도비포함 1억7800만원 정도다.
이 돈은 하루 두끼 입소자들을 위한 식사와 상근직원 4명과 비상근인 소장의 인건비로 대부분 사용된다. 대충 어림셈만 해봐도 쉼터에서 입소자들을 돕는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가 어느 정도일지 쉽게 예상이 된다.
천안시 동남구 주민복지과 장 준 사회복지팀장에 따르면 천안시의 노숙인과 관련한 예산은 1억7000만원이 채 안 된다. 이 중 1억6000여 만원은 위탁운영하고 있는 천안희망쉼터의 운영비로 지원하고 순수하게 노숙인들에게 쓰는 비용은 700여 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장 팀장은 “노숙인이 귀향을 원할 경우 보통 2~3만원씩의 귀향여비를 제공한다. 또 노숙인이나 행려인이 사망한 경우 장례비 등 사후처리비 등까지 포함해 쓰는 예산이 700여 만원 정도”라고 말한다.
생필품이나 부식은 천안자활센터, 푸드마켓에서 조금씩 지원을 받고 있다지만 지역의 역량있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 이상 쉼터의 살림은 늘 빡빡할 수 밖에 없다.
일자리와 의료지원이 무엇보다 절실
노숙인과 실직자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천안희망쉼터’의 이정화 팀장.
하지만 예산문제보다 이정화 팀장이 말하는 가장 큰 애로는 두가지다.
쉼터 입소자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너무 없다는 것과 이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지원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쉼터에 있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보니 쉬이 일자리를 주려 하지 않는다. 이 팀장조차 입소자들에게 ‘희망쉼터에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지도할 정도다.
기관이나 고용주들이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받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의료지원이다. 하다못해 입소자들이 분기 중 한번만, 피라도 한번 뽑아 검진 받게 했으면 한다고. 예전에는 희망쉼터에서 발행하는 건강검진요청서만 있으면 진료가 가능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것조차 막힌 상황이라고 한다.
얼마 전 천안역 노숙인들의 생활 실태를 현장조사했던 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 윤택영 총무이사는 천안역의 노숙인들을 60명 정도로 어림잡고 있다.
천안역의 한 관계자는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노숙인 중 정확히 인상착의를 기억하는 이만 38명”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기거가 일정하지 않고 이동하는 노숙인들의 특성상 정확한 실태파악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전같이 막무가내 대책없는 모습들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이 가까이서 이들을 보아 온 사람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지금껏 보아 온 희망쉼터의 아쉬움 점은 ‘자활의지를 뚜렷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만’ 적응하고 일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자활의지가 부족하고 거의 없는 이들에게도 상담?지원을 통해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주고 자극할 수 있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진다.
최근 (사)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의 주도로 지역국회의원이 사회를 보고 관련 공무원, 교수, 시민단체 등이 토론자로 나서 ‘천안시 노숙인 종합자활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를 가진 바 있다. 현재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법안도 발의 중이다.
관련한 새로운 거버넌스의 출현도 기대되고 있다. 노숙인과 실직자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논의야 말로 삶의 질 100대도시, 지속가능한 발전을 논하기에 앞서 천안시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아닐까.
<이진희 기자>
천안희망센터(☎553-9154) 해피로그 http://happylog.naver.com/cahop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