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露宿人).
사전적 의미로는 비바람 등을 가릴 수 없는 집밖의 장소에서 잠을 자는 사람. 길이나 공원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차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쉽게 보았을 이들.
이들을 지나치는 보통 시민들은 시선조차 오래 주기 싫어한다. 더럽고 냄새나고 무섭기까지하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경쟁사회 가장 밑바닥의 낙오자, 일할 의지도 꿈도 없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하나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얼마 전부터 정부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복지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종합자활 지원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에서도 혐오나 기피 이전에 인권의 차원에서 해결안을 찾아보자는 움직임들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지난 15일(화) 오후 2시 천안박물관에서는 (사)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시민네트워크)와 양승조 국회의원의 주최로 ‘천안시 노숙인 종합자활 지원 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가장 어려운 첫 단추 ‘실태파악’
지난 15일, 천안박물관 2층 강당에서는 ‘천안시 노숙인 종합자활지원 방안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강종건 박사(본지 논설위원·충남장애인고용개발원 원장)가 발제자로 나선 이날 토론회에는 양승조 의원이 사회를 맡았고, 중앙·지방 행정담당자, 시민사회단체 봉사자, 대학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객석은 관련단체 종사자들과 관심있는 시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날 토론회는 특히, 사실상 최초인 천안지역 노숙인 60여 명에 대한 면접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문제해결의 시작은 실태파악이다. 하지만 노숙인 문제에 있어 실태파악은 가장 채우기 힘든 첫 단추다.
나이, 노숙기간, 결혼여부, 목욕이나 세탁 횟수, 가장 필요한 서비스 등 50여 질문에 대한 천안역 노숙인들의 답을 분석해 정리한 이번 자료는 그런 뜻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면접조사를 주도한 시민네트워크 윤택영 총무이사는 각 시청, 경찰서, 보건소 등 기관별 요구되는 역할까지 제언해 토론의 완성도를 높였다.
천안지역 노숙인들에 대한 실태조사 자료가 나오고 공론의 장에서 토론이 시작된 만큼 관련 기관들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픈 것이 제일 불편해도 절실한 건 ‘잠잘 공간’
노숙자는 사회구조적 문제, 기관별 역할 나눠 함께 나서야
굶어죽어도
얻어먹는 한술 밥은
결코 사양하겠노라
이를 깨물던 그 오기도
일곱 끼니의 굶주림 앞에
무너지고
무료급식소 대열에 서서……
행여 아는 이 조우할까 조바심하며
날짜 지난 신문지로 얼굴 숨기며
아려오는 가슴을 안고 숟가락 들고
목이 메는 아픔으로 한 끼니를 만난다.
-2009년 4월29일 세상을 떠난
노숙 시인 장금 씨의 시 ‘집시의 기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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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특성상 정확한 실태파악이 힘들지만 관련 기관 종사자들이나 자원봉사단체들에 따르면 보통 천안역 주변에는 60여 명의 노숙인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15일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는 천안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50여 명의 답변을 토대로 분석됐다.
이에 따르면 천안역주변 노숙인들의 연령은 34세부터 88세까지로 평균 49세였다. 40대와 50대가 각각 17명과 15명으로 64% 정도를 보였다.
노숙기간은 3년 미만이라는 사람들이 22%로 가장 많았지만 12년 이상이라는 이도 16%에 달해 평균노숙기간은 9.1년 이었다.
응답한 노숙자 50인중 미혼자가 22%, 기혼자가 20% 였으며 별거, 이혼, 사별 등의 사유가 56%를 보였다. 결혼생활의 경험이 있는 38명중 자녀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0명 정도 였다.
천안역 노숙자들, 어떤 사람들인가?
천안역 노숙자들 중 노숙 직전의 주거현황을 살펴보면 자택이나 전세는 각각 14%, 16%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월세, 여관 등의 비율은 56%를 기록했다.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된 가장 직접적이고 주된 배경이 경제난이라는 반증이다.
이들이 현재 주로 잠을 자는 곳은 쪽방과 쉼터가 각각 14%와 10%였고 나머지는 노숙과 기타로 조사됐다.
최종학력은 무학이 22%, 초졸이 30%, 중졸과 고졸이 각각 16%, 30%를 기록했으며 초급대학 졸업 이상은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50여 노숙자들중 수입이 보장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경우는 9명에 불과했다. 이들중 일주일에 1회 이상 일한다는 사람은 7명이었다. 소득의 주된 사용처는 술이나 먹을 것이 100%로, 모아두거나 입을 것을 사는데 사용하는 경우는 전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일자리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25%로 가장 많았다. 일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대답은 7.1%에 불과했다.
위생상태를 묻는 질문은 특성상 결측값이 상당히 많아 정확한 파악의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씻는 횟수의 경우 월 평균 8.67회로 조사됐고 월 세탁횟수를 묻는 질문에는 62%가 대답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 번 옷을 갈아입느냐는 질문에도 46%가 답을 하지 않았다.
반면 양치의 경우 44명(88%)의 응답자중 1일 1회 이상 한다는 사람이 60%에 달했고 1일 3회씩 규칙적으로 양치한다는 사람도 2명이나 있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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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중 흡연 48%, 음주 58%
최근 1개월간의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그저 그렇다’와 ‘좋지 않았다’는 대답이 각각 22%와 48% 였다.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는 14%에 불과했다.
1일 평균 식사횟수는 2회가 54%로 가장 많았고, 3회란 응답도 26%를 기록했다.
가장 흔히 발견되는 질병은 치과질환이 22%, 관절염이 20% 였고 외상(열상, 골절)과 빈혈, 당뇨병, 위염, 감기, 고혈압, 간질환 등이 있었다.
질환군별로 보면 고혈압과 심장질환 등의 심혈관계 질환이 32%로 가장 높았고 호흡기계 질환이 30%, 근골격계 질환과 소화기계 질환이 28%, 24%로 고루 분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담배를 피운다는 사람은 전체의 48%였고 끊었다는 사람은 12%로 조사됐다. 술을 마신다는 사람은 58%였고 끊었다는 사람은 4%로 파악됐다. 음주자 중, 아예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75.9%였다.
천안역노숙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아플 때 적적하게 진료받을 곳이 없다는 것으로 전체 응답의 32%를 차지했다. 이외에 잠잘 곳이 없다는 점이 16%,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14%, 일거리가 없다는 것이 10%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가장 부족하고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안정적으로 잠잘 수 있는 잠자리가 30%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 다음이 무료급식과 무료 진료로 각 10%와 6%였다.
가장 불편한 것은 몸이 아픈 것이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잠자리라는 대답이다.
천안시 ‘노숙자 자활지원 지역협의체’ 추진은 언제?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 발표한 강종건 박사는 “지금이라도 노숙자 문제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명확한 중장기적 목표아래 종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일자리나 주거지원 이라는 차원에서 반응적이고 대증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강 박사는 사안별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천안시의 분발을 촉구했다.
특히 “주거 정책에 있어 잠잘 곳이 없다는 불편이 상당히 높은데 4년의 계획기간내에 주거환경 파악을 위한 주거복지실태조사 계획만 언급하고 있다. 노숙자 문제 해결과정에서 주거의 비중과 의미는 상당하다. 1~2년내에 실태조사를 종결짓고 주거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09년 천안시는, 코레일과 민간종교단체 등과 함께 노숙자 자활지원 지역협의체를 구성해 쉼터 입소를 꺼리는 노숙자들에게 상담과 계도, 자활지원에 나설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조속히 이를 구체화 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토론에 나선 보건복지부 민생안정과 양종수 과장은 “지역단위에서 이런 토론회가 열리게 된 것에 대해 일단 놀랍고 감사하다”며 입을 뗐다.
양 과장은 노숙인 복지지원은 기존에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보니 조금씩 시혜성 예산만 편성돼 왔다며 노숙인들도 국민으로써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인 인권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 이낙연 의원 등이 홈리스 복지법안을 발의 중이고 한나라, 민주노동당 등도 큰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복지부는 금년 회계내에 법안을 통과시킬 다양한 방안을 강구중이다. 우선 목표는 현재 산발돼 있는 지원 자원들을 연계·통합시켜 줄 수 있는 종합지원센터체계를 구축하는 걸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시청 김수열 주민생활지원과장은 “최근 중앙정부차원에서 다양한 노숙인 지원서비스의 실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책의 변화에 지속적인 사업수행을 위한 안정적인 예산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며 “노숙인 특성이 주거의 불안정에서 나타난 것인만큼 이를 토대로 의료나 자활을 비롯한 기타 사회복지서비스와의 연계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석대학교 최윤영 교수는 “세계 100대도시를 꿈꾸는 천안시는 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와 같이 민간영역에서 연결될 수 있는 자원들을 적극 활용해 천안시의 노숙인 복지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충남자원시민봉사네트워크 윤택영 총무이사
“노숙인들에게서도 희망이 보여요”
6년째 노숙인 위한 봉사, ‘노숙인 지원위한 협의회 빨리 만들어졌으면‘
윤택영 씨.
“많은 단체들이 너무 빨리 포기를 하세요. 제 경험상 그들도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여러 기관들이 나름의 역할만 해준다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의 윤택영 총무이사는 토론회에서도 열변을 토했다.
지난 15일 열린 ‘노숙인 종합자활지원 방안을 위한 토론회’는 그간 전국적으로 사례가 거의 없던 노숙자들을 위한 지역사회의 관심을 보여준 자리였다.
이 자리를 만드는 데는 충남장애인고용개발원 강종건 원장, 양승조 국회의원을 비롯해 여러 참가자들의 관심과 의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일선에서 가장 어렵게 직접 실무조사를 벌여 토론회를 준비하고 이끈 이는 바로 충남자원봉사시민네트워크 윤택영 총무이사다.
윤 이사는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천안역 노숙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역앞에 천막을 치기도 힘들었어요. 술냄새 풍기며 다가와 시끄럽다며 부수려고 시비를 붙는 게 다반사였죠. ‘천안역 사랑&나눔 희망콘서트’도 두달 정도하니까 포기하자는 의견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노숙인 2명이 당시 종합운동장에 있던 저희 사무실까지 걸어오셔서,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뜻을 직접 밝혀주시더라고요. 이후로 용기를 갖고 이어 온 봉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답니다.”
노숙인 대부분이 낮이나 밤이나 술에 취해 아무데서나 자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지만 일부는 술을 먹지도 않고 불가피한 노숙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물론 누구나 기본적인 의식주는 인권차원에서 지역사회가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 윤택영씨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노숙인들에 대한 관심이 사실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아니 많은 시민단체, 봉사단체, 교회 등 종교단체들이 수년간 무료급식 등의 따뜻한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봉사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뜻하지 않은 시비나 문제에 휘말리게 되고 개입의 정도에도 한계가 있다보니 간헐적이고 제한적인 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윤택영 총무이사는 봉사와 후원을 계속 이어 오면서 노숙자들의 실태와 정서를 알음알음 알게 되고 이들을 일으켜줘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가지게 된 듯 하다.
2006년 11월부터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 오후에는 천안역에서 클린천안운동의 일환으로 쓰레기를 주워 오고 있다. ‘천안역 사랑&나눔 희망콘서트’역시 정기적인 행사다. 2007년에는 자활을 희망하는 노숙인 리더에게 사글세방과 생필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천안역노숙인 자활프로젝트’를 운영한 적도 있다. 이외에도 코레일 충남지사의 후원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지속적인 봉사와 후원을 펼치다 이날 토론회까지 추진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말 2주간 진행한 천안역 노숙인 실태조사는 설문에 응해주는 노숙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새 양말 한 켤레 씩을 주고 깨끗한 중고 의류나 신발도 준비해 나누어 주면서 하나하나 받아냈다.
“지난번 실태조사도, 이번 토론회도 이미 천안역 노숙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쫘악 퍼졌습니다. 기대도 많이들 하고 있어요. 더 많은 시민들과 기관 단체가 관심을 갖고 해법을 함께 찾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윤택영 총무이사는 노숙인들의 지원을 위해 여러 가지 기관들이 나름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
다며 이를 가능하게 할 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어려운 첫걸음을 떼고 드디어 공론의 장으로 나온 노숙자 문제. 조만간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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