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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능가하는 여성 파워 과시 그들만의 ‘성공전략’

그들만의 ‘성공전략’

등록일 2004년08월2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옥상에서 기념촬영 (좌로부터 원용하, 오춘석, 강진순, 이순자) 최근 어딜가도 경기침체와 장기불황으로 어렵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온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망을 주곤 한다. 그 중에서도 당당하게 사회에 나와 남성들을 능가하는 여성들이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던 이순자(51)·원용하(51)·오춘석(44)·강진순(44) 네 명의 여성이 보험설계사로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이들 네 명은 현재 삼성화재 천안지역 5백여명의 설계사 중 최상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고객은 왕이 아니라 내 가족이다” 고객을 필요에 의해 왕처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가족으로 생각하며 희로애락을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다.동갑내기 두 명의 큰 언니와 6살 아래의 동갑내기 두 동생이 키워나가는 우정은 남성들의 그것 이상으로 진하다. 매일 같은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하기 때문에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가늠할 정도다.그들의 생활을 잠시 들여다보고 그들의 영업 전략과 시간관리에 대해 한수 지도를 부탁했다. 원용하씨는 본인의 요청으로 인터뷰가 생략돼 아쉬움을 남겼다. 필요한 보험상품 찾다가 설계사로 변신 ┃ 오춘석(44)“자기 자신에게 칭찬받으면 성공”“남이 나에게 해주는 칭찬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오춘석(44)씨는 남편이 첫 만남에서 결혼을 결심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 프로포즈를 할 정도로 흡인력 강한 매력을 가졌다.그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밝은 사고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평한다. 올해로 11년차, 그녀의 보험설계사 지원 동기는 그녀가 보험설계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손해보험 전문인자격취득, 삼성화재 제3회 연도상 전국금상수상, 삼성화재 친절서비스 최우수 사원, 삼성화재 천안인상 수상, 96∼2003 8년연속 삼성화재 멤버쉽 골드회원 등 그녀의 이력은 보험인 그 자체다.남편이 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할 때 휴가를 떠났는데, 모든 것이 인화성 물질이라 화재가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 휴가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휴가에서 돌아오는 대로 보험회사에 문의해 적당한 상품을 고르다 보니 보험의 중요성과 많은 사람들을 불안감에서 해방시켜야 겠다는 사명감까지 생기더라고 말했다.그길로 그녀는 보험설계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자신이 그 필요성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고객설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험의 필요성을 모르는 고객에게는 그 필요성을 설명했고, 적당한 상품을 추천해주며 사업체나 개인들도 불안감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시작했다.지인들이 괜한 걱정을 하게 될까봐 처음 2∼3년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확실한 신념이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보험상품을 홍보하며 고객을 개척해 나갔다. ‘첫 대면고객과 어떻게 말문을 터야 합니까’라는 새내기들의 질문에 그녀는 주저않고 대답한다. “첫 대면은 단순, 무식, 과감하게 접근해라. 그리고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확신과 신념을 갖고 논리적으로 설득시켜라. 보험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최근 그녀는 1천2백여명의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간관리는 더욱 철저하다. 그녀의 일상은 새벽 4시에 시작해 12시에 잠자리에 들며 끝난다. 일상 중 잠자는 시간이 가장 아깝다며 수면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기상하자마자 자신의 서재에서 오디오를 켠 채 두 시간 가량 책을 읽는다. 이어 공원을 산책하며 하루 일과를 구상한다.출근 후의 일상은 일반 보험설계사들과 똑같지만 출근 전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는 것이 그녀를 최고의 보험설계사로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된다.끝으로 그녀는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고 전제한 후 자신을 도와준 고객들을 모두 부자로 만들어줄 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말만 남기고 말을 줄였다.친구따라 강남간 ┃ 강진순(44)“먼저 사주고, 내 것도 팔았죠”“수퍼, 빵집, 속옷가게, 비디오점, 세탁소, 미용실 등 동네 골목골목 다니며 물건 먼저 팔아 주었어요. 그리고 제 보험상품을 팔았죠. 윈-윈 전략이라고 하나요? 우리 동네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는 사명감도 컸어요.”올해로 10년차 보험설계사 강진순(44)씨는 친구의 권유로 보험업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보험교육을 받으니 일반인들이 살면서 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턴 오히려 친구보다 더 열성적으로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에 매료됐다. 첫 계약자는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자신의 남편과 남편의 직장 동료였다.그러고 나서 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첫 고객층을 이루던 골목상인들 입을 통해 골목상가를 이용하던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고, 또다시 그들의 주변사람들에게 번져 어느새 마을 전체로 확장돼 갔다. 당시 임대아파트와 그 주변에 살던 주민들이 해가 바뀔 때마다 이사 나가고 또 다른 이웃이 들어오며 해를 거듭할수록 고객층은 마을을 벗어나 천안시 전역으로 번졌다. 그렇게 늘어난 고객이 지금은 7∼8백명의 개미군단이 되었다.“최소한 내가 아는 사람들만큼은 그 어떤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결심이 지난 10년을 살게 한 것 같아요”그녀의 작은 출발은 거대한 피라미드 조직이 돼서 돌아왔다.그녀는 자신의 고객에게 어떤 사고라도 발생하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고객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고객에게 돌아갈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직접 찾아 챙겨주는 일을 더 중요시한다. 이러한 고객감동이 또 다른 고객을 만들고 그 영역의 확장은 이제 그녀를 출퇴근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그녀의 스탠드는 오늘도 밤10시를 넘긴 시간에도 환하게 빛나고 있다.보험설계사로 인생역전 ┃ 이순자(52)“이제부터 엄마가 돈벌어야 돼”10년 전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든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은 이순자(52)씨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이순자씨는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에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당시 중3, 중1에 재학중인 두 자식과 앞으로 살아갈 일어 더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안 살림과 두 자녀 교육문제에 힘쓰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그러나 이제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험설계사를 생각했다. “엄마가 이제부터 돈벌어야 해. 엄마 없어도 동생이랑 밥 먹고, 공부 잘 할 수 있지? 앞으로 힘들어도 견뎌보자. 착하지 내 딸들아.” 자식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러나 자신 이름이 새겨진 첫 명함을 받았지만 집안일만 하던 그녀로서는 명함 한 장 건넬 사람조차 없었다.고민 끝에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골목 이발소를 찾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명함을 건네며 한탄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때 옆에 있던 고객이 그녀의 딱한 처지를 다 듣고 첫 계약을 체결해 주었다. “그날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다. 시작부터 출발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주변 분들을 소개시켜 줬고, 지금까지 최장수 고객으로 모시고 있다.”그러나 이런 행운이 언제나 함께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전박대, 안면몰수, 억지주장 심지어 폭언까지 상식이하의 고객들을 수없이 겪었다. 그것을 못 참고 선배, 동기, 후배들이 절반도 넘게 중도하차하는 것을 보았다.그럴 때마다 그녀는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까지 두들겨가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처음엔 영문도 모르는 동료들이 뭔가 큰 건 하나 했냐며 한턱내라고 난리였다. 그들은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이슬을 보지 못했다. 영업직원에게 필수라 할 수 있는 자동차 한대 없이 버스와 급할 땐 택시를 이용하며 고객을 만나러 다녔다. 삐삐라 불리던 호출기 하나 들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 다니며 보험사에 발을 들여 놓인지 어느새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기억 때문인지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던 그녀가 얼마 전 차를 한 대 구입했다. 보험설계사로 첫 발을 내딛던 해 중학교 다니던 두 딸 중 한 명은 초등학교 교사로 또 다른 한 명은 경희대에서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다. 6∼7백명의 고객을 관리하며 업계 선두주자로 나선 지금도 그녀는 가끔 사무실 책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이제부터 펼쳐질 그녀의 인생은 더 안락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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