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전시관에서 가장 예쁜 포즈로 찰칵.
위풍당당 그녀의 세상 사는 법경기침체와 장기불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든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성이 있다. 삼성르노자동차 천안 두정지점 김동숙(45) 차장의 별난 이력은 복잡한 세상도 의외로 단순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려준다.그녀는 지난 97년말 서른여덟의 나이로 삼성자동차 영업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IMF 한파와 함께 찾아온 소비불안심리와 내수시장 위축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듬해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삼성자동차. 그녀는 쟁쟁한 경쟁사의 다양한 차종과 달리 이름조차 생소한 단일차종으로 힘겹게 경쟁하며 천안에서 손꼽히는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전시관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카다로그 한 장 달랑 들고 자동차시장에 뛰어들어 천안 최초로 삼성자동차 계약을 성사시켰다. 현재는 천안지역에서 활동하는 삼성자동차 영업사원 중 최고의 판매고를 자랑하고 있다. 그녀는 모든 삶이 요행으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움츠리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라고 충고한다.30대 후반에 시작한 자동차 세일즈. 불과 5년만에 4백대의 자동차 판매실적을 올렸으며, 매년 1백대 이상을 팔아 10년후 1천5백대를 팔겠노라고 호언하고 있다.더구나 그녀는 8년째 중풍으로 몸져누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마다않고 억척스럽고 위풍당당하게 살고 있다.“삶이나 영업이나 요행은 없더라구요”학창시절 그녀는 매우 소극적이고 수줍음 많던 평범한 소녀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개인회사에서 10년가량 경리업무를 보았다. 그러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독립기념관이 개관할 무렵인 87년, 목천읍 신계리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남편과 함께 전답농사와 작은 수퍼마켓을 운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지에게 연대보증을 서준 일이 잘못돼 대대로 농사짓던 전답은 물론 삶의 터전까지 잃었다.몇 년 후 시어머니는 중풍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점점 악화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IMF가 시작되던 97년 김동숙씨는 서른여덟의 나이로 삼성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생산조차 되지 않는 삼성자동차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그녀는 기억했다. 98년 본격 출시와 함께 시판에 들어가자 막막하기만 했다. 전시관조차 없이 카다로그 한 장 달랑 들고 ‘고객모시기’란 그리 녹녹치 않았다. 특히 당시에는 중형차량조차 소형이나 경차로 바꾸는 추세였다. 타 사의 경우 승용차뿐만 아니라 화물, 승합, 경차 등 다양한 차종으로 고객의 수요에 따라 얼마든지 판매 전략을 바꿔가며 상담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배기량 2000CC급 중형차 단일차종으로 고객을 찾아 나서야 했다.10∼20층 아파트 계단을 수없이 오르고 내렸다. 천안시내 오피스빌딩과 상가를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며 차량을 홍보했다. 간혹 관심을 보이는 고객도 있었지만 당시 19.8%라는 무거운 할부금리(현재 8.5∼8.9%)를 감수하며 선뜻 구입할 의사를 밝히는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했다.그러다 98년3월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김동숙씨는 이것이 아마 천안은 물론 충남지역에서도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날은 김씨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업직원들의 자신감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첫 차량을 고객에게 넘기며, 기념촬영과 함께 전 직원(소장포함 8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고식까지 가지며 감격을 만끽했다.이때부터 김씨는 자신감이 생겼다. 고층빌딩을 넘나들면서 그 곳 어딘가에 예비고객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힘든 줄을 몰랐다. “우연히 만난 고객, 우연히 찾은 행운은 언제나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다음에도 똑같은 우연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결국 실망하기 쉽죠. 그러나 자신의 노력으로 힘겹게 고객을 찾아냈을때 그들은 또 다른 고객을 만나게 해줍니다. 그리고 성취감은 말할 수 없이 크죠.”아픈 기억은 훌훌 털고“고객과 모든 협의가 끝난 상황이었어요. 계약서에 도장 찍는 일만 남았는데 다음날 느닷없이 제 동료와 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그때 남은 것은 마음의 상처입니다. 한 가지 교훈을 얻었죠. 의연해지자.”영업직원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자신의 함정을 스스로 파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구에게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영업전선은 치열하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특히 1000∼2000만원 이상 목돈을 지출하게 만드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눈속임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남의 고객을 가로챈 영업맨이 고객관리를 제대로 할 리가 없다. 또한 지난 일에 집착하지 않고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빨리 털어 버려야 오늘과 내일이 편하다. 정도를 지키다보면 누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동료나 고객에게 신뢰가 쌓이고 그들은 반드시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고 말한다. 어렵게 자리를 잡아갈 무렵 삼성자동차는 부도, 합병설 등 갖은 구설수에 올랐다. 그러다 98년 후반기부터 2년 가량 개점휴업 상태에 직면했다. 힘겨운 날들이었지만 결국 2000년 3월 르노삼성의 이름으로 다시 출고되기 시작했다.그녀는 휴업 중에도 고객관리는 잊지 않았다. 자신이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한 번 맺었던 고객과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다시 영업일선에 나오자 자신과 신뢰를 쌓았던 고객들이 그들의 동료 친지들을 알선해 주며 더 큰 고객이 되어 돌아왔다.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요즘도 그녀는 큰 기복이 없이 언제나 일정한 수준의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차량홍보를 위한 거리행사에도 신입사원 못지않게 가장 앞장서 참석하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노력들이 두정지점을 고객만족도 1위, 판매량 1위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는 원동력이었다.하루하루가 새롭고 설렙니다“하루하루가 새롭고, 설레고, 기대됩니다. 오늘은 누굴 만나서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또 나에게 무슨 일들이 생길까.”김동숙 차장은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삼성자동차 두정지점 전시관에 도착해 있다. 목천읍 신계리에서 두정동 사무실까지 그 시간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7시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그 전에 일어나 씻고, 가족들 식사까지 챙기려면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일이 조금도 짜증나거나 힘겹지 않다. 오히려 어제와 다른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얼마 전 목천읍 신계리에 그렇게도 소망했던 넓은 마당에 텃밭 딸린 새집을 지었다. 그동안 시어머니를 씻겨드리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이제 넓은 욕실에서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모실 수 있어 한시름 놓았다.“더 큰 욕심은 없습니다. 시부모님 모시고 지금처럼 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집에 돌아와도 얼굴한번 마주하기 힘든 자식보다 병든 몸이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주시는 시어머니가 더 포근하고 좋아요.”마을 주민들은 그녀를 효부라며 칭찬이 자자하다. 어른 공경은 그녀의 남편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까지 마을 이장을 보던 남편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쉼터를 마련해 드렸고, 지역의 각종 대소사에 앞장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이제 텃밭에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로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 초대해 대접 한 번 해야죠.”르노삼성자동차 천안지역 판매실적 1위. 전국에서도 상위 30%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예금 잔고와 신용카드는 새집마련과 오지랖 넓은 성격 덕분에 초과한도에 걸려 여전히 자유롭지 못해 보였다.“저라고 왜 어렵지 않겠습니까. 지난해보다 30% 이상 실적이 감소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오늘은 ○○아파트 입구에서 명함 좀 돌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