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천초 학교역사관에 전시된 학적부. 비교적 보관 상태가 양호해 일본식 창씨개명 기록이 뚜렷하다.
학적부-졸업대장 일본이름 방치, 본성명복구 국회청원“우리는 친일잔재와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다. 친일파들은 권력을 잡았고, 친일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일제강점기 한민족 고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로 바꾸게 한 치욕의 민족사인 창씨개명(創氏改名). 본성명으로 돌려졌어야 마땅하지만 광복 59주년을 맞은 지금도 일선학교에는 일본식 이름의 학적부와 졸업대장이 개정되지 않은채 방치돼 있다.창씨개명의 흔적은 1940∼45년도에 기록된 학적부와 졸업대장에 남아있다. 학적부는 본 성명 옆에 일본식 성명으로 고쳐놓은 채로 보관돼 있다. 천안초등학교는 붉은색으로 본성명을 지웠으나 목천초등학교는 병행표기된 점이 조금 다르다. 8?15 해방 이전에 설립된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천안지역만도 직산초, 목천초, 천안초, 풍세초, 광덕초, 도장초, 병천초, 병천초 봉성분교, 보산원초, 성거초, 성남초, 성환초, 수신초, 입장초, 천동초, 일봉초 등 16개교가 해당된다.1941∼45년 졸업대장은 모두 일본식 이름으로 표기돼 있다. 이것을 천안초등학교 동문들이 동문 명단과 주소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발견해 창씨개명 본성명회복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창씨개명본성명운동본부(본부장 김성열)’는 지난 5일(목)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국회차원의 진상조사와 본성명 환원을 촉구했다. 최근 친일청산문제와 맞물린 국회의 의지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창씨개명 본성명환원운동은 이미 지난 2001년부터 교육부 3회, 법제처 2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1회, 헌법재판소 1회, 대법원 1회, 대통령 1회, 국회의원 1회 등 수많은 질의와 청원, 범국민 운동 등을 통해 추진돼 왔다.이에대해 교육부는 ‘보존연한(50년)경과, 보관상태불량, 경비문제’등의 이유로 난색을 표했었다. 또한 ▲치욕의 역사도 교육적 가치가 있다 ▲임의 직권 복구조치는 개인의 정보유출과 인권보호 차원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인별로 신청해야 한다 ▲동일사안에 대해 3차 회신 이상 질의에 답변했으므로 더 이상 답변하지 않겠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본성명 복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그러나 김성열 본부장은 “창씨개명된 일본이름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므로 호적부와 같이 직권 복구됐어야 마땅하다”며 “국가가 힘이 없어 국민이 강제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창씨개명은 법을 우선하여 정부가 책임지고 직권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특히 예산문제, 개인정보유출, 보존상태불량 등의 이유를 들며 꺼리는 것은 교육부의 지나친 행정편의적 발상이며 역사의식조차 없는 반민족적 행위라고 비난했다.창씨개명의 실체얼마전 일본집권 자민당의 아소다로 회장이 도쿄대학 강연에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창씨개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자란 세대들에겐 이 끔찍한 망언의 실체조차 감지하기 힘들 것이다.창씨개명(創氏改名)은 일제강점기에 한민족 고유의 성명을 일본식 성명제도로 강제로 바꾸게 한 일이다.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을 개정하고 창씨개명에 관한 조문을 공포, 이듬해 2월에 시행했다. 한국 가족제도의 근간이었던 부계혈족을 나타내는 성(姓)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일본식 가계를 중심으로 한 ‘씨’제를 따르도록 강요했다. 창씨개명을 황민화(皇民化) 또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지표라 강변하면서, 창씨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자녀에 대한 학업제한, 징집, 노역 등 압력을 가하는 한편 취직 차별, 비국민 취급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제재와 압박을 가했다. 이에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천황제적 가족제도를 민족말살정책이라고 하여 항의자살을 하거나 야유적인 이름을 지어 저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