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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상교·최낙철·신기철’ 선생

각각 교내에서 학생 항일비밀결사 태극단, 연구회, 상록회를 조직해 독립운동하다 옥고 치른 인물들

등록일 2023년11월0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부, 광복회와 공동으로 서상교·최낙철·신기철 선생을 2023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1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이들 서상교·최낙철·신기철은 1930년에서 1940년대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각각 교내에서 학생 항일비밀결사 태극단, 연구회, 상록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가다가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인물들이다.
 

▲ 출옥 후 서상교의 모습(1945년, 서보혁·서보현 제공)


서상교(1923~2018)는 1923년 11월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상업학교에 재학 중 1942년 5월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했다. 결성 직후 1년 여간 비밀리에 단원모집 후 이듬해 4월 조직 재정비 과정에서 체육국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대부분 대구상업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태극단을 이끌며 5월9일 결단식을 개최하고 전국적인 조직망 수립을 모색했다. 그러나 밀고로 1943년 5월23일 단장이 붙잡히고 연이어 서상교를 포함한 단원 전원이 피체됐다. 

서상교는 학생 신분임에도 불구, 1944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단기 5년 이상 장기 7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최낙철(1921~2005)은 1921년 11월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고 대구사범학교 5학년 재학 중 1941년 1월 연구회(硏究會)를 조직했다. 사범학교의 교과목을 중심으로 14부를 편성한 연구회에서 최낙철은 지리부 책임을 맡았다. 최낙철은 졸업 후 함북 나진의 약초공립국민학교에 부임해 교사로 재직 중 대구사범학교의 항일비밀결사 활동이 적발되면서 일경에 붙잡혔다.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이들 서상교·최낙철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 신기철의 수형기록카드(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신기철(1922~2003)은 1922년 1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고등보통학교에 재학했다. 1937년 3월 상록회(常綠會)를 결성한 후 1938년 2월 새로운 임원진이 구성됐는데 신기철은 동료의 권유로 입회해 서적계 책임을 맡았다. 

이어서 신규회원 가입을 위해 활동하던 신기철은 같은 해 10월에는 회장직을 겸임했으며 학교에서 벌어지는 민족 차별대우를 논의하는 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8년, 상록회의 활동이 드러나면서 관련자 137명이 대대적으로 체포됐고 그 중 신기철을 포함한 36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신기철은 1939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신기철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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