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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산은 이렇게 작아졌습니다

천안도심산 봉서산에 대한 30년간의 인간침략기

등록일 2024년08월1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여러분, 사탕(沙糖)을 아셔요? 설탕이나 엿을 끓여 여러 모양으로 만든, 맛이 달고 물에 잘 녹는 과자랍니다. 입 안에 넣으면 달달하니, 기분 좋아지는 녀석이죠.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사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죠. 입 속에서 다 녹았기 때문이어요. 눈물이 나요. ‘아껴먹을 걸’ 하고. 천안도심산 봉서산, 입속의 사탕이 녹아버리듯 그렇게 작아지고 있어요.  


천안 도심에는 158미터의 봉서산(鳳棲山)이 있습니다.

70만명 가까이 살고 있는 천안에서 도심산이라고는 봉서산과 함께 일봉산(133m), 월봉산(133m), 노태산(141m) 정도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봉서산이 제일 높군요. 미터를 센티로 줄이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키와도 엇비슷합니다.

우리나라 남녀 평균키가 부쩍부쩍 크고 있으니 곧 자라지 않는 봉서산이 작아지겠지만요. 

북쪽 노태산에서 봉서산으로 연결된 도심산은 월봉산을 거쳐 일봉산으로 이어집니다. 도심산 중에서 봉서산은 키도 크지만 덩치도 제일 큽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이로움을 안겨다 준 도심산. 하지만 때마다 개발로 인해 산과 산이 가닥가닥 끊기고 시나브로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삶이 풍족해질수록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산들은 안타깝게도 수난의 역사입니다. 봉서산을 보고 자란 분들은 살이 쪽 빠진 모습에 애처로워합니다. 예전과는 너무 달라졌으니까요. 적어도 그들 기억속의 봉서산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롭고 넉넉했습니다. 

봉서산의 변화는 멀리 되돌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1990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되짚어봐도 원인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30년쯤 됐을까요. 봉서산 한 켠에서 아파트단지가 산 위까지 기다랗게 들어섰습니다.

1000세대쯤 되는 아파트가 자리잡으면서 한적했던 봉서산이 갑자기 시끄러워졌습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그곳 주민들의 산 나들이가 시작된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산을 다 깎아서 아파트를 지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미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쾌적한 환경에 신이 났습니다. 

아, 봉서산이 조금 작아졌네요. 
 

봉서산에는 다람쥐도 있고, 운이 좋으면 고라니도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일 겁니다. 라이프아파트 쪽에서 찌뿌둥한 몸으로 봉서산을 오르는데 ‘푸드득’ 하며 큰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헉헉거리며 한발한발 오르고 있는데 말입니다.

깜짝 놀라 새가슴이 되어버렸습니다. ‘뭐야, 무슨 소리야.’ 다람쥐나 꿩이 내달리는 소리 아닐까 싶은데, 그보다는 훨씬 번잡스러운 소리였습니다. 

얼른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오른쪽 저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고라니가 보였습니다. 아니, 노루일지도 모릅니다. 봉서산이 큰 산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산으로 이어진 곳도 아닙니다. 고라니같이 큰 동물을 본 것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봉서산(鳳棲山)이 봉황이 깃들어 살았던 산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풍수지리상으로도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봉이 제 둥지로 날아드는 형상)의 명당입니다.

인근 봉명동(鳳鳴洞)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또한 ‘봉이 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죠. 봉명동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가끔 봉이 우는 소리를 들었을까요. 
 
봉황은 동아시아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용과 학 사이에서 태어난 새라고도 합니다. 봉황은 5라는 숫자를 좋아하나 봅니다.

다섯가지로 빛나는 몸에 다섯가지의 울음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오동나무에 거주하며, 몸의 각 부분은 또한 다섯가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상징하고 있다 합니다. 

봉황은 암수를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가부장적 우리사회로 보면 봉황은 일찌감치 남녀평등을 이룬 것입니다. 봉(鳳)은 수컷을, 황(凰)은 암컷을 뜻하는데, 암수가 한쌍으로 만나면 금슬이 매우 좋다나요. 그런데 이상하죠. 봉서산을 타는 사람들은 많은데 부부가 함께 다니는 걸 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비율적으론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한번은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봉황서산이 아니잖아.’ 무릎을 탁 하고 쳤습니다. ‘봉(鳳)’이 서식하는 것이지 ‘황(凰)’이 서식한다는 말이 없는 거였어요. 음양으로 따진다면, 남자의 산이니 자석처럼 여자들이 꼬이는 것 아니겠어요. ‘아님 말고식’의 가벼운 말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봉서산의 수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봉서산을 끼고 있는 백석동이 아파트단지 등으로 일대를 덮었습니다. 불당동 개발에 발맞춘 백석동 개발로 수많은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섰습니다. 

게다가 2005년 ‘천안시청’까지 이전하면서 봉서산의 덩치는 확 쪼그라져 버렸습니다. 봉서산과 천안시청 사이를 지나는 왕복4차로 ‘시청로’까지 생기면서 말입니다. 

이후에도 불행은 계속 번져갔습니다. 
 

2007년에는 시청로 반대편에 도로가 생기고, 도로로 인해 산의 자투리가 잘라져 버렸습니다. ‘서부대로’가 왕복6차선의 넓은 길을 뚫은 것이고, 도로 때문에 끊긴 산의 끝자락을 ‘쌍용공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도로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터널로 뚫어 끝자락을 살려달라 했고, 시행정은 지금처럼 개활지로 만들되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시민단체들과 일부 시민들이 “봉서산을 살려주세요” 하며 거세게 싸웠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쌍용공원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사랑받는 공원이 되었습니다. 인근 주민들이 산책도 하고 꽃이나 나무들을 보며 힐링하기도 합니다. 때론 공연이나 다양한 이벤트 행사도 갖습니다. 하지만 그곳 쌍용공원은 봉서산이 자신의 몸 한쪽을 떼어주어 만든 것임을 알까요. 

봉서산과 인접한 땅은 2010년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며 계속 봉서산을 야금야금 깎아먹었습니다. 어쩌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다고 할까요. 도로나 아파트로 봉서산의 사지가 잘리고, 등산로와 편의시설은 계속 설치돼 사람들의 봉서산행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지요. 
 

봉서산은 언제부턴가 주인과 손님이 바뀐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의 출입을 넉넉히 받아준 고마운 봉서산이었는데 말이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지가 잘린 봉서산이지만 불시에 가슴을 찔린 일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보따리를 빼앗긴 거야 그렇다 쳐도 이젠 강도로 돌변한 사람들이 칼을 들이댄 것입니다. 바로 아파트단지 하나가 봉서산의 심장까지 쳐올라왔던 것이죠. 시민단체들이 강력히 문제를 삼았지만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법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도 어느 공무원이 한 말은 걸작입니다. “하, 어쩜 모양이 엄지손가락처럼 생겼을까요.”손바닥이 봉서산이라면 구부린 엄지손가락처럼 생긴 지형을 차지하며 아파트가 들어서게 됐다는 말입니다. 사전에 봉서산을 보호할 수 있는 조례 등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후회해봐야 이미 버스는 지나갔는 걸요. 

봉서산은 또다시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봉서산을 오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사람 머리카락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지척에 있지만 게을러서 아주 가끔 타는 산. “자주 타면 산이 좋아한대?” 하며 자연을 알뜰히도 보호하는 자연주의자처럼 핑계를 댑니다. 

젊을때의 머리숱은 대부분 풍성합니다. “머리좀 쳐라. 지저분하게스리. 머리카락 때문에 앞은 보이겠냐” 하며 부모에게 핀잔도 듣고 살았지요. 이제 나이를 먹어가며 머리숱이 하나둘 빠지고 가늘어지다 보니 다시는 듣지 못할 추억의 말이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봉서산이 딱 그렇습니다. 봉서산을 오르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나무 사이로 아파트도 보이고 도로도 보입니다. “예전엔 그래도 꽤 큰 숲처럼 생각되었는데”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왠지 나무들도 더 이상 굵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착각이겠지요. 
 

그런 봉서산은 2015년 또다시 봉변을 당했습니다. 쌍용공원에서 컨벤션센터 사이 봉서산 기슭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천안시의회는 봉서산 일대에 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개정안을 발의했고, 시민단체가 또다시 강경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섰지요. 한쪽은 경제활성화를, 또다른 쪽은 봉서산(도심녹지)을 망치는 일이라며 마주섰습니다.

결국 호텔은 물건너갔지만, 그래도 개발은 진행됐습니다. 컨벤션센터에서 백석사거리에 이르는 산기슭에 많은 건물이 새롭게 지어졌습니다. 
봉서산은 더욱 홀쭉해졌습니다. 

지금의 봉서산을 두고 누구는 말합니다. “깎이고 깎여 몽돌이 되어버린 데다 가슴엔 창까지 하나 박혀있는 것이 봉서산이죠.”

이제는 다행입니다. 더 이상 깎일 데가 없어 보이니까요. 여름(6월)이 되니 봉서산 등산로에는 야자매트를 새로 깔려는 작업이 분주합니다. ‘봉서실크로드’길입니다. 
 

봉서산과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봉서산은 30여년을 지내오면서 어느새 반쪽이 되어버렸습니다. 찻길을 만들고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귀중한 도심자연이 훼손되고 있어요. 봉서산이 사람의 소모품이라면, 그래서 더욱 아끼고 아껴 오래 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체불가한 것이기 때문이죠.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봉서산에 선물 하나 던져준 것이 있었는지요.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앞으로 30년 후에는 봉서산이 산의 기능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건 다음 세대에 절망을 던져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봉서산이 이름답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비록 봉황은 아니어도 온갖 산짐승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심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끔 도심산으로 쓰레기를 주우러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조차도 산을 위한다기보다 애초 사람들이 훼손한 찌꺼기들입니다. 
 

봉서산 주변에 살면서, 이렇듯 30년간의 봉서산을 기억해봅니다.

굵직한 변화만 꺼내놓은 거니, 사소한 변화는 또한 얼마나 많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이란 커지기는 쉬워도 작아지기는 몹시 힘들다 합니다. 봉서산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사람의 욕심으로 작아지기는 쉬운데, 다시 커진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지요. 그러니 이제 더 작아지기 전에 이쯤에서 잘 보존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평화협정’이라도 맺었으면 합니다. 

2021년 6월23일 오전 5시 18분경 고라니 한 마리가 라이프아파트와 쌍용중학교 사이 도로를 뛰고 있는 것이 목격됐습니다. 봉서산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고라니는 왜 그 시각, 도심을 뛰고 있는 걸까요.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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