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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축제 주인공은 없었다

진정한 축제

등록일 2003년05월2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유관순체육관에 단체 방문한 유치원생들이 장애인체전을 관람하고 있다. 제2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지난 13일(화) 화려한 전야제를 시작으로 지난 14일(수) 개회식과 함께 열전에 돌입해 16일(금) 막을 내렸다.선수 1천5백47명, 임원 5백48명 등 총 2천1백여명이 참석해 장애를 넘어 하나되는 축제의 장을 열었다.충남은 경기면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금47, 은27, 동29개로 경기도(57, 43, 32)와 서울(51, 36, 29)에 이어 당초 목표했던 종합 3위를 무난히 달성했다.충남도와 천안시는 이번 체전을 역대 그 어느 체전보다 가장 성공한 체전이라고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쉬움에 씁쓸한 뒷여운이 더 커“아쉬움에 씁쓸한 뒷여운이 더 크게 남는 체전이었다.”체전기간 유관순체육관 화장실 청소를 맡았던 전국주부교실 천안시지회 이승자 부장의 말이다. 이 부장은 이번 대회가 성공적이었냐는 질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지난 2001년 제82회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이 부장은 “당시는 힘들지만 보람있었고, 이번은 힘든 일은 없었지만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아직도 주변에는 장애인체전이 치러졌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범시민적인 관심속에 제대로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한마음봉사단 장용옥 회장은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우다 돌아가는 사람들이 솔직히 눈에 거슬렸다”고 말했다. 또한 “혼자 움직이기 힘겨워 보이는 중증 장애인을 보고도 자기 담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외면하는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를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장 곳곳에서도 유사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며 비효율적인 인원배치와 불성실한 행사관계자들을 질타했다.이들은 경기장 시설확보와 좋은 성적을 위해 성실했는지는 모르지만 장애인 눈높이의 가장 기본적인 배려는 불성실했다고 말했다.무리한 경기일정에 선수단 녹초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익명을 요구한 어느 선수의 이야기를 정리했다.「경기를 앞두고 밤새 잠을 설쳤다. 새벽 6시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경기준비를 서둘렀다. 오전 8시 아침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단국대학교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절단, 소아마비 등 장애인들로 구성된 좌식배구팀의 경기가 열리는 곳이다. A조 첫 경기는 9시30분 전남팀과의 경기였다. 첫 경기가 끝나자 긴장감이 풀리며 온몸은 기진맥진 녹초가 돼 버렸다.그러나 잠시 쉴 틈도 없이 오후 12시50분 광주팀과 두 번째 경기가 이어졌다. 지친 몸을 이끌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두 번째 경기를 강행했다.두 경기를 정신없이 치르고 나니 경기결과에 관계없이 양팀 선수 모두 몸을 추스르기도 힘들 정도로 탈진해 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었다. 시간은 오후 3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이제 허기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연속 두 경기를 치른 지친 선수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끼 챙겨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래도 식사는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장면을 배달시켰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격렬한 운동을 마친 후라 불어터진 자장면이라도 꿀맛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왠지 서글픔이 밀려온다.오후 4시10분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방금 전 급히 먹었던 자장면이 쓴물로 변해 목 언저리를 자극했고 속이 거북했다. 우리는 3전 전패했다. 내일은 땀에 얼룩져 냄새나는 단 한 벌 뿐인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경기결과는 만족한다. 전국장애인체전에 첫 출전해 10년 이상 국내 좌식배구를 주름잡던 강팀들을 상대로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장애인 체전이 열리기 전 우리는 나름대로 사명감이 대단했다. 용기와 투지가 용솟음쳤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모든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당당히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행정기관에서도 장애인 전용시설 등 장애인체육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바랐다. 더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아무런 편견없이 생활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기를 바랐다. 어렵게 확보한 연습장에서 힘든줄 모르고 연습에 몰두했다. 그리고 운동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었다.」지난 14일(수)부터 16일(금)까지 2박3일간 천안에서 열린 제23회 장애인체육대회가 끝나고 참가 선수들에게 들은 내용은 충격이었다. 장애인이 주인되는 그들의 잔치에서 장애인 선수들은 횡포에 가까울 정도로 불합리한 경기일정을 강요받고 있었던 것이다. 좌식배구는 단 하루만에 예선 3경기를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반면 제8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비장애인들이 벌이는 배구경기는 하루 1경기를 초과하는 일은 없었다. 휠체어농구 역시 팀당 하루 2경기씩 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비장애인체전에서는 하루 1경기로 제한 돼 있다. 좌식배구나 휠체어농구 모두 비장애인 경기 이상으로 격렬하며 체력소모가 큰 점을 감안하면 도저히 정상적인 컨디션으로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다. 단체경기뿐만 아니라 개인종목도 사정은 마찬가지. 체력을 극도로 소진시키는 펜싱경기 일정은 15일(목) 단 하루뿐이었다. 중복 출전하는 선수들은 휴식도 없이 하루 종일 경기를 치러야 했다.개막식이 열리던 14일은 일부 종목을 제외하곤 경기가 없었다. 폐막식이 열리던 16일도 대부분 경기가 오전에 끝났다. 결국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각 종목의 특성과 여건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경기일정을 억지로 짜맞춘 것이다.이에 대해 개최지인 충남도는 주최 측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 측인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는 지금까지 내려오던 전례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장애인체육대회를 장애인의 시각에서 장애인의 기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주인공 홀대받는 축제충남대표팀만 놓고 볼 때도 이번 체전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몇몇 선수와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며 익명보도를 요청했다.충남 대표로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약간의 훈련비가 지급됐다. 문제는 충남도가 아닌 특정 장애인단체 이름으로 지급된 것이다. 선수들은 당당히 충남도에서 지급한 훈련비를 받고 싶어 했다.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충남대표로 출전하는 선수가 충남도가 아닌 특정 단체의 이름으로 훈련비를 지급받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뿐만 아니라 얼굴도 알지 못하는 특정 단체 임원들이 일부 경기종목의 감독이나 코치로 배정되기도 했다.반면 그동안 개인적으로 시간을 쪼개 무보수로 선수들을 지도하며 봉사했던 코치나 감독이 배척 당하기도 했다.등번호도 없는 단체종목 유니폼이 지급되기도 하고, 선수들이 신청한 유니폼 사이즈가 맞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타시도에 넘쳐나는 자원봉사자가 정작 충남선수단에게는 배정되지 않아 중증장애 선수들이 불편을 겪는 일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자원봉사자는 본보 전화인터뷰를 통해 중증 장애인이 3층에 숙소 배정을 받아 애로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한 자원봉사자 배치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해 한가한 시간을 보내거나 고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극명하게 대조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무 재배정 등 후속 조치는 없었다고 말했다.충남선수들에 대한 숙소배정도 엉망이었다. 배정받은 숙소에 수용 인원이 넘쳐 결국 천안거주 선수들은 일방적으로 내쫓기기도 했다. 숙소배정을 못받은 천안지역 이외의 선수 일부는 천안지역 선수 가정에 기거하며 체전기간을 보내기도 했다. 개막식 전날 ‘충남선수단결단식’에서 행사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한 선수들은 그늘 하나 없는 천안종합운동장 하키장 뙤약볕 아래서 행사가 끝날 때까지 마냥 대기해야 했다. ‘자원봉사자결단식’이 유관순체육관에서 인기연예인 초청공연 등을 포함해 성대히 치러진 것과는 큰 대조를 보였다.객석엔 그래도 희망이썰렁한 객석. 그러나 희망은 있었다.장애인 체육대회가 열리는 내내 휠체어 농구가 열리는 유관순체육관은 응원열기가 뜨거웠다.대회 관계자들도 당초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관중들은 넋을 잃고 경기에 집중했다.휠체어를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분인양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선수들의 묘기는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유관순 체육관 관중석 곳곳에는 단체로 관람온 유치원생들이 자리를 메우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많은 어린이들의 단체 관람은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비록 꽉찬 관중석과 현란한 플레이는 아니지만 가족이나 친지, 자원봉사자들의 열렬한 응원은 큰 힘이 되었다고.취재후기-장애인스포츠 이제 어디로 가나제2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스포츠를 즐기고 싶은 장애인들의 욕구마저 막을 내려선 안 된다. 이제부터 스포츠에 대한 욕구를 분출시킬 그들만의 공간을 제공해 줘야 한다.장애인체전을 앞두고 잠시나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연습할 공간이 있어서 좋았단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디서 운동을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한다.지금까지는 체전을 위한 한시적 전시행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장애인체육 활성화를 위해 중장기 계획을 세운 단계적 실천행정이 나와야 할 것이다.충남도와 천안시는 제23회 장애인체전에 대해 종합성적 3위, 편의시설, 중증장애인 1대1 자원봉사, 무료중식제공 등 장애인의 입장에서 펼쳐진 역대최고의 완벽한 대회였다고 평가했다.급조된 성적과 단발성 행사만으로 착각에 빠질까 우려가 앞선다. 진정한 스포츠도시의 면모를 갖추기엔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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