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곳곳에서 열매를 맺기 위한 인공수분 작업이 한창이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봄날 따가운 햇살을 반사하는 흰 꽃잎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평평한 밭고랑에서부터 산비탈 계곡까지 줄지어선 수천, 수만 그루의 배나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뿜어내는 흰 빛이 마을 굽이굽이 넘실거리고 있다. 예년보다 2∼3일 일찍 찾아온 개화기는 이번 주말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나주, 울산과 함께 전국 3대 배 주산지 중의 한 곳으로 꼽히는 성환지역은 요즘 싱그런 들판 위에 새하얀 배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봄의 전령사로 흔히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을 떠올리겠지만 성환지역 만큼은 봄에 연상되는 대표적인 풍광이 배꽃 만개한 과수원이다.성환지역 농민들이 야산과 밭고랑 사이로 한그루, 두그루 늘려가던 배 과수원이 점차 규모화 되면서 지금은 1천4백㏊(420만평)나 된다. 또한 매년 3백여 농가에서 3만7000여톤의 배를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율금리와 왕림리로 접어들면 길과 마을을 제외하고 온통 새하얗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싱그런 배꽃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들풀, 냉이꽃과 함께 어울려 온통 세상을 뒤덮고 있다. 올해는 이상고온의 영향으로 개화기가 예년에 비해 2∼3일 일찍 찾아왔다. 4월 초부터 낮기온이 20℃를 웃돌자 꽃망울을 일찍 터뜨린 것이다.배꽃은 농촌지역 어디를 가건 흔히 볼 수 있지만 성환처럼 굽이굽이 온 들녘이 배밭을 이룰 정도로 지천에 깔린 곳은 드물다. 꽃가루 채취 한창“오죽하면 그 어렵다는 사돈어른까지 배밭에 나와 도와 달라고 부탁까지 하겠어.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을 구할 수가 있어야지.”배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농촌 일손은 더욱 바빠졌다. 숨돌릴 겨를이 없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정도로 이곳 농민들은 하루 종일 배꽃과 씨름하고 있다. 개화기는 일년 농사중 가장 중요한 시기다. 개화기에 수분이 제대로 돼야 틈실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요즘 성환지역 과수단지를 돌면 새하얀 배밭 곳곳을 누비며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일손을 거들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환영한다.그러다 보니 가장 만만한 사람이 군인과 학생, 공무원. 성환지역 인근 군부대에 병력지원을 요청하고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 자원봉사활동을 농촌현장으로, 또는 현장학습차 나와달라고.천안시는 이미 단계별 인력지원계획을 세워 부서별로 가능한 많은 인력이 배밭으로 차출될 수 있도록 근무표를 작성했다.인근 성환고와 천안농고 학생들도 기꺼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성환 농민들은 요즘처럼 바쁜 때에 도와주는 학생들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심지어 도시에서 직장생활하는 가족 친지들까지 임시휴가를 얻어 배밭으로 동원되고 있다. 인공수분 적기를 놓쳐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3D업종 기피현상, 특히 농촌 일손을 찾기가 그리 녹록치만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은 그만큼 애가 탄다.힘들어도 보람있어요천안농업고등학교는 매년 농촌현장에서 학생들의 현장학습을 겸한 일손지원을 실시하고 있다.배꽃가루 채취현장에서 만난 이소영(식물자원과 3년)양은 힘들지 않냐고 묻자 “왜 안 힘들겠어요.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저 봄마다 찾아오는 하나의 자연현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안에서는 농민들이 엄청난 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이미 작년에도 배꽃 수분 현장학습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양은 올해도 기꺼이 지원했다고 말한다. “꽃구경도 맘껏 하고, 봄바람도 쐬며, 현장학습도 할 수 있어 좋아요.” 이양은 거기다 바쁜 농촌 일손도 도울 수 있어 보람도 크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부모님이 입장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는 진동혁(식물자원과 3년)군도 이 양의 말에 동의했다.“매일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왔다. 과일 하나가 생산돼 시장에 나올 때까지 일년 내내 농민들은 땀을 흘려야 한다”며 지금 자신들이 쏟는 땀방울이 가을철 풍성한 결실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요즘같은 날씨에 무방비로 한두 시간 정도만 햇볕에 노출되면 금방 살갖이 타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인력지원에 땀방울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봄기운보다 싱그럽다.배꽃 만발한 성환에서 주말을성환읍 배꽃은 오늘과 내일(20일)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천안배원예농협은 빠른 곳은 이미 지난 16일(수)부터 인공수분을 시작, 늦어도 24일(목)까지는 모두 끝날 계획이다.심훈기 지도과장은 “개화가 먼저 진행된 곳부터 두 세차례 지속적으로 인공수분을 해야 한다”며 “연중 가장 중요하고 바쁜 시기인 만큼 인력지원과 현장지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현재 시는 농촌인력지원 창구를 운영중이다. 농촌봉사를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성환읍사무소(550-2601)로 문의하면 된다.주말을 이용 가족나들이겸 자녀들의 자연 학습장으로 성환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꽃씨가 어떻게 옮겨지고 열매가 맺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