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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재래시장의 봄스케치-이동식 백화점 천안 5일장을 찾아서

재래시장의 봄스케치

등록일 2003년04월1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나른한 봄날 오후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시골장터를 찾으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풍부하다.정기시장은 계절마다 독특한 정취가 있다. 성환과 병천은 끝자리가 1일과 6일, 입장은 끝자리가 4일과 9일에 각각 큰 시장이 열린다. 성환과 입장은 천안 북부와 평택, 안성 등 경기 남부지역과 충북 진천 등과 접경을 이뤄 상권이 크게 형성됐다. 병천은 천안 동부와 충북 오창, 진천, 청주 등에서 찾아와 장의 활력을 더하며, 규모는 물론 시장의 형태가 커지고 있다. 씨 좋은 강아지“아줌마 일루 와.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힘 못 쓰는 남편, 아들, 사위, 수험생 자녀를 위해 흑염소 한마리 키워봐.”“그놈 참 틈실허니 잘생겼다. 여름이면 송아지 만하게 크겠네.”재래시장을 방문했다면 지나치지 말고 동물거래시장을 들를 것을 추천한다. 혼자보기 아까운 장면과 대화들이 오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노약자는 절대 혼자가지 말 것. 다소 투박하고 거친 말솜씨를 가진 상인들도 있기 때문. 그렇지만 대개는 순박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넉넉한 모습이다. 다소 농이 야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은 가지 않는 것이 좋을 듯.이곳엔 생후 한 달을 넘지 않은 혈통이 불분명한 강아지들이 가장 많다. 이들 강아지에 대한 품평에서 가장 높은 점수는 어미개의 크기와 잔병 없이 잘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새끼도 많이 낳는 것이 좋다. 아주 드물게 순수혈통에 권위 있는 견종이 나올 때도 있지만 대개는 잡종이 많다.그리고 검붉게 빛나는 털과 날카로운 눈매, 멋진 꼬리와 벼슬을 가진 토종닭 암수를 묶어놓고 그들에게서 태어났다는 병아리를 상자에 담아 판매하는 모습도 진풍경을 연출한다.상인들은 갖가지 구실을 붙여가며 구매욕구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 구수한 말장난을 듣는 것도 재래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너무 깎지는 마세요봄철이면 재래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경은 바구니를 들고 나온 정겨운 할머니들의 모습. 마을 뒷산에서 캐왔다는 달래, 냉이, 씀바귀와 갓 돋아난 새싹을 잘라온 듯 솜털이 보송보송한 쑥을 들고 나와 바구니를 펼쳐놓은 모습이 정겹다.한보따리 다 팔아야 3∼4만원 어치도 안될 것이라는 할머니는 이번 장날을 위해 지난 4일을 산과 들에서 지내야 했다고.할머니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보따리를 푼다. 직거래 나온 할머니들과의 흥정은 오전에도 좋고 오후에도 좋다.오전에 만나면 싱싱한 최상질의 봄나물을 살 수 있어 좋고, 오후에 만나도 다소 손이 타긴 했지만 나무랄데 없는 무공해 봄나물을 오전보다 저렴하게 떨이로 구입할 수 있다. 단 주의할 것이 있다. 너무 지나치게 깎으면 안 된다. 이 할머니들은 알아서 싸게 주기 때문에 지나친 흥정은 금물. 다만 직거래하는 할머니와 전문상인들과는 다르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풋풋한 시골 할머니의 미소가 장안을 환하게 밝힌다. 진귀한 옛날식 물건“파리 잡는 진드기, 바퀴약 있어요. 쥐본드도 있어요”재래시장 입구는 항상 만물 잡화상이 진을 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 지면서 파리, 바퀴벌레 등 유해 곤충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년 내내 사용할 파리와 모기약, 바퀴약, 진드기 앞에 시골 아낙들이 모여든다.마치 병원에서 환자가 의사에게 증상을 말하고 처방문을 받듯이 집구조와 해충의 서식 정도를 설명하면 즉석에서 물건을 내준다.고무줄도 종류별로 찰고무줄, 뚝고무줄, 기저귀줄, 무시 등 다양하다.한때 범국민적으로 애용받던 이를 잡는데 쓰던 댓살로 촘촘이 엮어 만든 참빗, 아저씨 안주머니 속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작된 ‘접는 빗’ 멋쟁이용 ‘브러쉬’ 파마머리 빗는 ‘엉긴빗’ 등 그 명칭조차 생소한 제품들이 구비돼 있다. 항아리망, 세탁망을 비롯해 옛날식 수세미, 빨래집게, 가죽벨트, 요강, 목침 등 진기한 물건들이 많다.이러한 물건들이 아직도 요긴하게 쓰이는 듯 만물상 앞에는 고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뻥 합니다. 아줌마! 애기 놀랍니다. 귀막아요.”재래시장 풍물 중 놓칠 수 없는 풍경이 쌀이나 콩, 강냉이 등을 불에 달궈 튀겨내는 모습. 사카린이라 불리는 당분 섞인 조미료를 강냉이와 적당량 섞어 가스불 위에 설치된 기계 속에 털어 넣고 회전시키며 가열하다 튀겨내는 모습이 언제나 정겹게 느껴진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연막속 긴 망태 속에서 강냉이를 긁어내는 아저씨의 모습이 아련한 어릴적 향수를 자극한다. 뻥튀기를 하는 주변은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봄철을 맞아 각종 농업용 연장들도 선보이고 있다. 요즘은 기계화 영농으로 사람의 손이 덜간다지만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연장은 호미, 괭이, 낫, 삽 등 전통 농기구.요즘도 있을까 싶은 대장간에서 두들겨 펴서 만든 듯한 호미와 낫, 괭이 등 연장을 찾아 손에 맞는지 재보는 농부의 모습은 어느덧 풍요로운 들녘을 보는 듯 하다. 천안시 시장 변천사천안은 언제부터 어떤 형태로 상권이 발달돼 왔는지 일제시대 이전엔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서울에는 육의전이 있었고 지방에는 개성상단 등 보부상에 의해 상업활동이 이뤄졌으며 당시 상업을 천시하던 사회풍토가 상업발달을 억제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독점자본과 상술에 지배당했다.천안은 사직로의 장옥시장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한반도 중심부에 입지한 천안은 교통의 요충지라는 유리한 위치로 유통기지로서 충남북부의 상업권역을 형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장옥시장은 장날이면 천안시의 인근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사방 백리(약 4㎞)에서 모여드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1970년대 들어서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각 지방도로의 확장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넓어짐에 따라 상권이 변화를 가져왔다.정기적으로 열렸던 사직로 장옥시장은 1970년대 초 개정된 시장법에 의해 철시되고 법인체로 중앙시장, 천일시장, 자유시장 등이 생겨났다.천안시의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확대로 1990년대 대룡동, 문성동, 남산동, 문성동, 직산, 성정2동, 쌍용동, 신안동 등에 일반시장이 생겨났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도 5일마다 열리는 정기시장은 성환읍, 병천면, 입장면에서 유지되고 있다. 저렴한 가격의 첨단 패션운동화, 구두, 점퍼, 티셔츠, 스타킹, 양말, 팬티, 런닝 등은 강남패션 부럽지 않다.재래시장 한켠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패션코너. 재래시장에도 유명 패션몰 못지 않게 값싸고 질좋은 물건이 많다. 굳이 고급브랜드 제품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부담없이 입을 수 있는 외출복, 정신없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에게 잠깐 입히거나 신길 운동화나 구두, 의류는 같은 가격에 여러 벌 장만하는 것도 고단수 전략이다.고정관념과 달리 백화점 제품과 별반 차이가 없는 질좋은 제품이 시장 한켠에서 판매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원단과 디자인 수준이 높아져 백화점이나 유명 의류전문점 못지 않은 상품이 중소기업에서 얼마든지 생산되고 있다. 재래시장 예찬 상처나니까 만지작 거리지 말라고 타박하면서도 껍질까서 맛보라 건네는 과일전 상인의 손이 아름답다. 시장 상인들과 흥정을 벌이며 장바구니 들고 서있는 젊은 새댁의 모습이 아름답다. 새벽부터 나물보따리 머리이고 노점상 차리던 할머니가 저녁 무렵 움켜쥔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한 뭉치가 아름답다.순대, 번데기, 어묵 냄새 풍기며 하루종일 시끌벅적한 재래시장 풍경이 아름답다. 최근 이라크 전쟁 발발 이후 대형유통매장에 내몰려 상권을 잃고 있는 재래시장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5일장이 옛날 형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성환, 병천, 입장 재래시장을 찾았다. 그곳엔 늘 아름다운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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