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뼈아픈 기억은 일제 강점기가 아닐까. 그러나 아직도 일제의 망령이 일선 관청에서 버젓이 위엄을 떨쳐 충격을 주고 있다.민족 정기와 충절이 연상되는 독립기념관이 위치한 목천읍에는 일제 강점의 총본산인 조선총독부로부터 임명받은 5명의 면장 사진이 걸려있다. 일본제국주의의 행정을 책임지던 그들이 (구)목천면 1대∼5대 면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 그리고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임명한 면장이 그들의 뒤를 이어 6대, 7대로 이어져 2002년 9월1일 임기를 마친 제19대 오재근 읍장까지 연속성을 두고 있다.이에 대해 지역주민이 몇 차례 문제제기를 했으나 읍사무소 측은 관행적으로 내려오던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구)목천면의 최초 설립시기인 1914년이 (구)목천면 역사의 시작이며 당시 면장이 초대 면장이라고 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호서대학교 행정학과 남상화 교수는 행정체계가 같다고 일제시대를 대한민국 정부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를 1대로 지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또한 남 교수는 “생각할수록 발상 자체가 기막히고 놀라운 일”이라며 “대한민국 정부의 공직자들이 일제시대 행정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이어 해방 이전과 이후는 행정의 역할과 기능도 확연히 구분된다고 말했다.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를 주창하던 일제관리가 해방 반세기 넘도록 그대로 인정됐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향토학자인 백승명 직산위례문화연구소장은 “민족의식이 강했던 관리들은 1910년 한일 합방 당시 대부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후진 양성과 민족교육,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며 “일제 당시 관리들은 대부분 친일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관리들은 주민들을 감시통제하고 일본제국의 식민정책을 주민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아우내 장터와 유관순 열사 사우가 위치한 병천면사무소는 재임기간이 불분명한 1대부터 3대 면장 사진이 걸려있다. 4대 면장의 재임기간은 1950년. 따라서 1∼3대 면장에 대한 재임기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해방 이전의 행정관료였는지는 분명치 않다.이와 함께 천안시 전역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천안시 총무과에 문의했다. 그러자 천안시에서는 읍면동 자체적으로 역대읍면장 사진을 걸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제시대 읍면장을 현 정부와 연속선상에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읍면별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한 후 문제가 있는 곳은 곧 철거토록 할 방침이라고 답했다.본보에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이제라도 철거방침을 세운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한편으로는 그동안 왜 진작 철거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