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부터 천안시의사회를 이끌게 될 이종민 천안시의사회장(46·이화여성병원 원장).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2백70여명의 의사회 조직을 이끌게 된 이 회장을 그녀의 진료실에서 만났다.의료 서적들로 빼곡이 진열된 서재를 등지고 앉은 이 회장이 온기 잃은 원두커피 한 잔을 권했다.그녀의 하루 일상은 오전 8시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시작된다.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들이 밤새 병원 홈페이지에 올린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다.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다. 퇴근시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집에서 휴식을 취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그녀의 생활을 대변해 준다. 아산이 고향인 이 회장은 어릴적부터 흰 가운을 입고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꿈이었다고 말한다. 80년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졸업하며 그 꿈은 현실로 이뤄졌다.무엇이 그 자리를 20여년간 지키게 만들었냐고 묻자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건강한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나에게 희열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상 건강한 아이만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기와 산모 두 생명이 위기를 맞기도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아기와 산모를 돌보지만 사고로 이어진다면 의사로서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다. 그녀를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의사들이 갖는 공통적 비애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회장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의사들이 처한 환경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덧붙였다.“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해 줄 때 이 사회도 건강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부분이 혼란스럽다.”이 회장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무엇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사회가 자꾸 멀어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의사들이 소신껏 의술을 펼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더욱 심각하다고.“언제부터인지 의사들이 환자 비위 맞추기에 급급해 졌다”며 “미용실을 찾은 손님에게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라고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했다. 그만큼 의권 자체가 실추돼 있다며 허탈해 했다.이 회장은 어느 날 사고환자의 진단서를 작성해 주고 너무나도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병원을 찾아 위협을 가한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돌보던 환자나 보호자마저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고 본인 스스로 겪은 경험담을 털어놨다. 요즘도 대학입시 경쟁에서는 여전히 의과대학이 최고의 점수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대해 이 회장은 의대를 지원하는 어린 학생들을 볼 때 걱정이 앞선다고 말한다. 의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어느 직종과 비교할 수 없는 3D업종이라고 말하는 이 회장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의사의 길을 만류했다고 털어놨다.그것은 갈수록 의사들이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라고. 전문교육을 통해 배출된 유능한 인력을 사회 한편에서는 혹독하게 매질을 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한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사회적 지탄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개원의사들이 경영난에 쓰러지고 있는데도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의사들을 벼랑으로 몰아가는 사회가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임기 2년간 지역 의료봉사와 후배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