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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노모 병수발, 모진 세월 14년-아들 4형제 돌아가며 노모 모시자 자식들도 본받아

등록일 2001년05월1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제 부모를 구박하고 버리기까지 하는 삭막한 세상에 병든 노모를 14년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엄씨 4형제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엄씨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면 병든 노모의 똥과 오줌을 받아내고, 목욕시키고 밥을 먹이는 것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렇게 14년의 모진 세월을 묵묵히 받아들인 4형제와 그 가족들. 맏형에게 취재협조를 요청했으나, 오히려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엄씨 형제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서지만, 이웃들은 엄씨 형제 이야기를 꼭 소개해 달라고 취재기자에게 당부했다. 본인에게 직접 취재를 하지 못한 아쉬움과 이웃의 말을 정리했음을 밝힌다. <편집자 주> “말이 14년이지 요즘같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은 다시 없을 겨. 우리 마을 엄씨 형제들이야 말로 효자중에 효자지. 며느리와 애들은 또 어떻구…”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병석에 누운지 어느덧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엄씨 4형제의 14년이란 고통의 세월은 본인들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또 한 해가 가고 있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머니가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산다. 아니 어머니가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몸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매일 식사를 마치면 드러눕는 게 일이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먹고, 눕고 반복되는 시간들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영양섭취는 하고 있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이기에 몸이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아들과 며느리도 어머니 병수발 하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어머니의 부푼 몸과 함께 어느덧 자신들의 젊음도 세월 속에 묻혀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병수발을 위해서는 꼭 두명 이상의 손이 가야만 한다. 14년을 해 온 일이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다. 아들이 부축하면 며느리는 옷을 벗기고 몸을 씻어준다. 그리고 자리도 새로 봐야 하고, 옷을 갈아 입히는 것도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다. 아들이나 며느리가 집안을 비울 때면 그 일을 손자들이 대신한다. 손자들에게 할머니의 기억은 항상 병석에 누워있는 모습이 전부다. 다른 아이들처럼 할머니의 사랑을 느껴볼 겨를 조차 없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부모가 병든 할머니께 하던 일을 그대로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한 그들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할머니 몸에서 배설물과 함께 풍기는 냄새가 역겨울 만도 한데, 참 대견한 노릇여. 제자식 똥 기저귀도 처리하지 못하는 젊은 것들도 많다던데…” 어머니와 의사소통은 눈빛으로만 가능하다. 희로애락에 따른 모든 표현이 오로지 눈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말 한마디 못하는 어머니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을 언제부터인지 자식들은 알아듣고 있다. 어쩌면 어머니의 눈빛은 이제 그만 놓아 달라는 원망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자식들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불편을 호소하는 것인가. 어머니의 알 수 없는 눈빛에 자식들은 그저 말없이 따르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큰아들 엄영호(49·성환읍)씨와 둘째아들 영수(46·입장면)씨가 어머니 병수발을 도맡아 해왔다. 그러나 바쁜 영농철이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병든 노모 옆엔 항상 누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는 동생들이 몇 해 전부터 어머니를 함께 모시기로 결정했다. 도회지로 나간 셋째 영관(43)씨와 광용(40)씨가 영농철에 돌보기로 한 것이다. 1년에 3개월씩 4형제가 교대로 어머니를 모시며 서로 부담을 덜어주고 배려하는 모습이 이웃 사람들에겐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엄씨 형제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가 더욱 어려워졌다. 일년에 3개월씩이나 휴가를 내주는 직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때맞춰 일자리도 나타나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엄씨 집안 며느리들은 젊은 시절 대부분을 시어머니 병수발을 하며 보낸 것이다.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당신이 일어설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어머니 절대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사실 큰아들 영호씨는 친어머니가 아니다. 전처 소생으로 생모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이웃사람들이 “생모도 아닌데 대단하네”라는 말을 건넬 때 영호씨는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나를 길러준 분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죄가 더 큰데 제발 그런 말 마세요”라며 다음 이어질 말을 일축해 버린다. “나 같은 놈 사는 게 무슨 얘기거리가 된다고. 그런 말 계속 하면 그만 일어날 거여” 너무도 단호한 그의 행동에 말 건넨 사람들이 오히려 민망해졌다. 영호씨는 이러한 행동이 선한 일인지 자신도 모른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란다. 지금 어머니는 셋째 영관씨 집에 머물고 있다. 방송에서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는 단란한 가정이 소개되자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정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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