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가명. 51. 성정2동)
“부족한 저를 원망해도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해 줄 수가 없어요. 아내의 투병이 길어지고 아이들이 예민한 시기를 겪으면서 가정이 많이 흔들려요. 51세의 나이에 일반 생산라인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라도 잘 자리잡으면 좋겠는데…”
강한 눈발과 함께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주. 천안시청에서 회사에 반차를 내고 왔다는 초로의 이대영(가명)씨를 만났다. 원래 취재원의 집에서 만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정상 시청에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이씨의 아내는 외부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대인기피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아내의 입원치료가 시급하다고 귀띔한다.
꿈을 주던 직장은 행복을 앗아가고
고향이 경기도 포천인 이씨는 손톱깎기 케이스를 만드는 공장의 직원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천안에 자리를 잡은 공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보통의 가정처럼 소박한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대표가 사업확장을 빌미로 중국에 진출한다면서 20년 다니던 직장은 한순간에 문을 닫고 말았다. 아내가 뇌수막염으로 쓰러져 전세보증금까지 빼서 근근히 간병하던 그에게 이때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복사기와 제습기 등을 만드는 공장에 다시 취업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도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6개월치나 월급을 받지 못했다. 공장을 인수한 새 대표는 남은 직원들에게 대부계약서를 쓰게 하고 기본적인 생활비를 빌려주었다. 하지만 그도 불과 인수 8개월 만에 폐업신고를 해 버렸고 대부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빌려준 도로 내놓으라는 소송을 걸었다. 직원 30여 명이 이 사건에 연루됐었는데 지난 주 나온 판결에 따르면 이들은 보통 300만~400만원 정도, 많게는 900만원 까지를 토해내야 한다고 한다. 이씨도 380만원 정도를 폐업한 사업주에게 갚아야 하는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폐업 직전 회사를 나온 이씨는 그동안 핸드폰 CPU를 테스트 하는 업체에 취업해 납품, 배달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18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아내의 간병에다 중3·고3 아들의 뒷바라지까지 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다.
병원비로만 1억원 이상 소요
큰 아이가 10살, 둘째가 5살 때 쓰러진 아내는 지금도 정신과 약물을 복용중이지만 주기적인 경기를 일으킨다. 3~4년 전만해도 한 번 발작하면 30분씩 간질처럼 몸을 떨고 온 몸에 마비증상이 일곤 했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아져 5분정도씩 발작한다고 한다. 대학병원의 말로는 뇌손상이기에 약으로 완치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관리하며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일단 발작이 일어 병원에 가면 병의 특성상 중환자실을 가야하는데 여기서는 하루에만 70만원이 청구된다.
아내는 밥을 먹을 때도 남편·아들들과 따로 밥상을 차려 먹고, 빨래도 본인의 속옷, 양말만 빨아 입는다. 심리적으로 극도로 위축돼 혼자만 생각하다보니 가족들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 가끔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평불만이 폭발하면 집안의 물건들을 파손하기도 일쑤다. 추가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는 있지만 지금 형편을 생각하면 꿈또 꿀 수 없다.
어려운 가정에서 민감한 시절을 보내다보니 아이들도 위기에 내몰렸다. 큰 아이는 수차례 가출을 하고 나쁜 친구와 어울리다 보호관찰까지 받았지만, 현재는 다행히 마음을 다잡고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둘째는 초등학교때 건물에서 떨어져 한 쪽 눈을 실명한 상처를 갖고 있다. 둘째는 평소에는 순하기 그지없지만 감정이 한 번 폭발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어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경계선에 있는 가정, 홀로 져야 하는 가장의 짐
금방 이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금 사는 원룸은 월세가 40만원인데 최근 두달이나 밀려있고 올려달라는 독촉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아내의 치료에 들어간 비용은 1억원이 넘는다.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가 된 이씨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중재로 매달 20만원씩 8년간을 갚아야 한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경계선에 있기에 위기의 가정을 온전히 떠받쳐야 하는 부담은 오롯이 아버지 혼자만의 몫이다.
“우선 아내와 둘째가 좀 더 나은 치료를 받고 호전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렵더라도 저만 꾸준히 아프지 않고 일하면 언젠가 좋은 날도 오지 않겠어요?”
용기를 내어 말하는 이씨의 어깨는 눈발과 추위 탓인지 더욱 작고 안쓰러워 보였다.
<이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