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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묏자리’ 해미, 세계의 성지가 되다

프란치스코 교황,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 주례

등록일 2014년10월2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프란치시코 교황 방문 이후 충남도 무엇을 해야하나? _ 서산시 편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한동안 ‘교황 신드롬’이 이어질 만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사회에 전한 메시지는 강렬했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특히 교황은 이번 방한 일정 중, 당진시 솔뫼성지와 서산시 해미읍성 등 충남 내포지역의 주요 천주교 성지를 방문하면서 천주교 신자들은 물론 타 종교인 또는 비종교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번 연합기획취재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계기로 충남지역에 미친 영향과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순례자의 길 조성 등 국제 관광지 조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기획됐다. ※이 취재는 충남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당진시대·내포시대·태안신문·충남시사신문·공주신문 연합기획취재팀>-편집자주

프란치스코 교황,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 주례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미성지를 찾아 아시아 주교회의를 열고 해미읍성에서 6만 명의 천주교 신자 및 관광객이 참여한 가운데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주례했다.

해미읍성이 생겨난 건 1407년의 일이다. 당시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쳐 해미현이 됐다. 해미는 내포로 이어지는 중심도시였기에 11년 뒤인 1418년에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됐고, 1491년에는 돌로 성을 쌓았다. 그 읍성이 524년의 풍상을 견뎌왔다. 1651년 청주로 병마절도사영이 옮겨가기까지 160년간 해미는 내포의 중심지였으며, 그 이후에도 토포사를 겸하는 종3품 겸영장을 둠으로써 군사요충지로 남았다. 그러했기에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면서 70여 년간 해미는 피의 박해 현장이 됐다.

1989년 서울세계성체대회 이후 25년 만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진 솔뫼를 거쳐 해미성지로 향했다. 16일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주례한 김진후(비오, 1739~1814) 순교자가 나고 자란 솔뫼를 거쳐 해미의 첫 순교자 인언민(마르티노, 1737∼1800), 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 등 3위가 피를 흘린 해미에서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주례함으로써 그 역사적 의미를 더 했다.

해미성지 시복자 3인의 기념비 : 해미성지에 솔뫼성지에서 나고 자란 김진후(비오, 1739~1814) 순교자와 해미의 첫 순교자 인언민(마르티노, 1737∼1800), 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 등 3위의 시복 기념비가 세워졌다.

‘박해의 현장’ 해미 순교지는 사적지 1곳과 순교성지 3곳으로 이뤄져 있다. 해미는 특히 솔뫼와 합덕, 신리, 여사울, 홍성 등 상부 내포 여러 고을 중 유일하게 진영이 설치돼 있어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덕산과 예산, 삽교, 신창, 고덕, 신리 등지에서 붙잡힌 신자들이 포승에 묶인 채 끌려갔던 한티고개 압송로를 아시아 청년들은 걸었다. 덕산면과 해미면을 가르는 해발 678m의 가야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티고개는 교우촌인 면천 황무실과 덕산 용머리, 배나드리 마을 등지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압송되던 ‘죽음의 길’이었다.

한티고개를 따라 걷는 아시아 청년들 : 천주교 신자들의 압송로였던 한티고개를 따라 순교의 뜻을 기리며 아시아청년들은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가 진행될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한티고개를 내려오면 사적 116호 해미읍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사의 현장’ 해미읍성은 길이 1800m, 높이 5m, 성내면적 20만 3592㎡(6만 1587평)의 타원형 성곽이다. 밖은 돌로, 안쪽은 잡석과 흙으로 채운 읍성 안에는 동헌과 내아, 객사 등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해미읍성 전경

이들 시설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해미옥(獄)과 그 앞에 있는 호야나무다. 인언민ㆍ이보현 순교자는 해미옥에서 갖은 문초와 형벌을 다 받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다가 1800년 1월 9일 매를 맞다 순교했고, 김진후 순교자 또한 해미옥에서 10년간 옥고 끝에 1814년 12월 1일 옥사했다. 이후로도 해미옥에서 태형이나 자리개질, 생매장으로 순교한 신자들은 어림잡아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교회 측 기록에 67위, 관변 측 기록에 65위 등 132위나 된다. 수령 300년 호야나무는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매달아 처형하는 교수형이 집행됐던 나무로, 2008년 4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로 보호받고 있다.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 서산 사투리로 ‘호야나무’로 불리는 수령300년의 회화나무는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맨 철사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오늘 날에도 보는 이들에게 신앙의 참뜻을 전하고 있다.

읍성에서 해미순교성지까지는 금방이다. 읍성 서문인 지성루 밖 순교지는 군문효수와 백지사형, 교수형, 동사형, 자리개질 등 온갖 혹형과 처형이 이뤄진 곳이다. 1866년부터 1873년까지 진행된 병인박해기에 이르기까지 읍성 동구 밖 서쪽 숲정이에서 많은 순교자가 생매장됐는데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생매장터로 가는 길에 있는 개울에서는 두 팔을 뒤로 묶인 채 끌려온 신자들을 물에 밀어 넣어 죽였는데, 이를 일러 ‘죄인 둠벙’이라고 불렀고, 훗날엔 이 이름이 ‘진둠벙’으로 바뀌었다.

바로 이 순교지에 해미순교성지가 조성돼 있고, 대성당과 소성당을 중심으로 순교전시관, 자리개돌, 진둠벙, 노천성당, 순교현양탑, 무명 순교자의 묘, 순교탑, 야외제대, 유해발굴지 등이 들어서 있다.

해미성지 전경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4일 해미읍성에서 6만 명의 천주교 신자 및 관광객이 참여한 가운데 아시아ㆍ한국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주례했다.

‘죽음의 길’은 ‘영광의 길’이 되고 2014년 8월 17일 ‘신앙의 묏자리’ 해미는 세계의 성지가 되었다. 그동안 해미성지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신앙의 진리를 위해 죽어 간 2000여명의 순교자들을 통해 이른바 ‘순교 신심’이라는 한국 천주교회의 독특한 정신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이제 그 의미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세계적인 성지가 된 것이다. 140여 년 전의 포승줄로 묶여 끌려갔던 ‘죽음의 길’은 이제 ‘영광의 길’이 되었다.

21세기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 ‘영광의 길’을 선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혜롭고 위대한 민족은 선조들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의 젊은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책임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충남도는 이에 따라 내포지방의 천주교 성지를 잇는 총 88.1㎞ 길이의 ‘내포 천주교 순례길’을 정비해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로 조성할 계획이다.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당진시 우강면 솔뫼성지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다블뤼 주교의 삶이 깃든 당진 합덕읍 신리성지로 이어지는 13.3㎞ 길이의 버그네 순례길, 신리성지에서 내포지역 순교자들이 해미읍성으로 압송되던 예산 한티고개로 이어지는 34.4㎞, 한티고개에서 해미성지로 이어지는 9.7㎞ 등이 연결된다.

특히 서산시의 경우 해미순교성지를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해 서산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어 나간다는 복안이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은 서산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동시에 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며 “관광수요에 부응하는 인프라를 확충하고 새로운 관광상품을 개발해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미읍성과 해미성지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순례길 조성, 교황 방문 도시라는 이미지에 걸맞은 새로운 도시 브랜드 개발이 필요하다” 며 “시민들은 물론 각계각층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 효율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감탄한 ‘해미밥상’

지역 특산품 ‘서산생강한과’...세계적인 명품으로 발돋움

지난 8월 17일 서산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점심상에 6쪽마늘이 가미된 한우 등심구이와 후식으로는 토종생강이 첨가된 한과가 상에 올랐다.

서산시는 교황의 오찬으로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한 메뉴를 마련했다. 교황의 검소함을 고려해 무채색 계열의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데 주안점을 두면서도 빡빡한 일정에 조금이나마 기력을 북돋울 수 있는 메뉴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

한식세계화 추진위원으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한국음식 개발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병우 명장이 오찬 준비를 진두지휘했다.

메인 요리로는 서산지역에서 나는 탑라이스쌀로 지은 쌀밥과 6쪽마늘을 곁들인 서산우리한우등심구이, 서해에서 갓 잡은 우럭살을 빚어 만든 우럭어알탕, 각종 해산물을 섞어 쪄낸 꽃게찜, 서산6년근 인삼을 곁들인 채소쌈이 제공됐다.

식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지곡 중왕리 뻘낙지를 갈아 만든 뻘낙지죽이 제공됐고 김치는 매운 음식에 익숙지 않은 교황의 입맛을 고려해 백김치가 상에 올랐다.

후식으로는 서산 특산물인 토종 생강이 첨가된 생강한과와 6쪽마늘을 넣은 6쪽마늘빵이 제공됐다. 교황은 낙지죽을 두 번이나 리필을 요청했고 오찬에 매우 흡족해 했다고 유흥식 대전교구장은 전했다.

서산시는 교황의 오찬 메뉴를 6쪽마늘 외식 브랜드인 '마늘각시' 메뉴에 추가 메뉴로 구성하고, '해미정식'으로 이름을 지어 상품화할 계획이다.

해미밥상‘으로 명명된 프란치스코 교황 오찬 상차림.

교황 방문한 서산 해미읍성 찾는 관광객 급증

평일 1천명・주말 5천명 넘는 관광객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 서산 해미읍성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서산시에 따르면 해미읍성에는 교황 방문 이후 평일 1천명, 주말 5천명 이상의 관광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교황 방문에 따른 인지도 상승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의 한 관계자는 “교황 방문 이후 해미읍성에 대한 문의와 평일 외지 관광객 수가 눈에 띄게 크게 늘었다”며 “해미읍성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만큼 세계적 관광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미읍성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인근 상점의 매출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미읍성 주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교황 방문 이후 손님이 다른 때에 비해 20% 이상 많아진 것 같다”며 “관광객들에게 좋은 이미지와 서비스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이후 해미읍성에는 평일 1천명, 주말 5천명 이상의 관광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충남지역언론연합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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