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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내가 듣기 좋은 말 한마디!

천안서북소방서 성거119안전센터 정왕섭 지방소방장

등록일 2014년08월26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정왕섭 지방소방장. 필자는 119구급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현직소방관이다. 근무지로 출근할 때마다 즐겨 듣곤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내가 듣기 좋은 말 한마디”라는 코너가 흘러나오는데 그 사연들을 들으면서 얼마 전 필자가 근무 중 겪었던 두 가지 대비되는 상황이 떠올랐다.

두세 달 전의 일로 기억한다. 근무 중 오후 4시경 관할 면지역 A빌라 4층 손 출혈 환자라는 출동방송이 사무실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졌다. 구급차에 탑승해 급히 출동해 확인해 보니 집안은 아수라장이었고, 여성 2명이 만취상태로 싸운 듯 했다. 한 사람이 손가락에 일부 열상으로 출혈이 있어 지혈을 하고 이송을 위해 구급차로 옮기려는데 다른 여성이 따라 내려오며 욕설과 행패로 병원이송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간신히 그 여성을 떼어내고 환자를 구급차에 탑승시켰는데 곧바로 쫓아내려와 환자를 끌어내리려 하고 이젠 우리 구급대원에게까지 격렬한 욕설과 발길질을 퍼붓는 것이 아닌가!

출동인원이 운전원과 필자로 단 2명 뿐이어서 만취여성을 제지하고 무차별로 날아오는 발길질과 주먹질을 이리저리 피해봤지만 환자도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서 얼굴에 잔매를 한두 대 맞았다. 순간 필자도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가슴속에서 일어났지만 냉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또한 욕설과 사나운 발길질을 계속 해대는 여성도 만취상태로 제정신이 아니고 다칠 수도 있으므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경찰출동을 요청해 떨어지는 진땀을 훔치며 그 여성을 떼어내고 간신히 손을 다친 여성을 병원으로 이송해 그 날의 출동을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 동안 근무하면서 이런 당혹스런 소동을 처음 겪은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땐 깊은 한숨과 함께 만감이 교차한다. 아마도 이런 고질적 병폐인 구급대원 폭행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선 성숙한 시민의식과 턱없이 부족한 현장 구급대원의 인력충원 등이 예방책이 되겠지만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위와 같은 소동이 있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전일 야간근무의 피로로 연거푸 하품을 하고 업무를 종료할 무렵인 오전 8시경 인근 면지역에 호흡곤란 환자가 발생됐다는 출동방송이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그 면지역도 예전엔 대원 1명이 근무하며 구급차가 운영됐으나 현재는 인력부족으로 정규소방인력은 단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읍지역 119안전센터에서 출동해야 하므로 원거리 면지역에서 응급환자 발생시에는 특히 긴장되고 신속히 출동해야 한다.
급히 구급차에 몸을 싣고 달려가 보니, 80대 할아버지께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작년에 심박조율기를 삽입한 수술병력도 있는 환자로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아야 하는 위급한 상태였다.

병원으로 이송 중 의료용 산소를 공급해 드리니 체내 산소포화도가 올라가고 좀 전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점차 밝은 얼굴로 변하며 안정을 찾아갔다. 걱정스럽게 할아버지를 바라보시던 할머니도 다소 안심하시며 내게 한마디 건네셨다.

“아이쿠! 이런 시골에도 119가 있어 참 좋아!”

할아버지를 안전하게 대학병원 의료진에 인계하고 구급차 창 너머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119안전센터로 복귀를 서두르고 있노라니 옅은 미소를 보이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떠올랐다.

비록 부족한 인력 등으로 취객과 실랑이하고, 주야간 불규칙한 교대근무의 피곤함 등 녹록치 않은 소방관의 삶이지만 아직도 귓전에 여운으로 남아 잔잔하게 맴도는 ‘119가 있어 참 좋다’는 할머니의 고마운 말씀은 야간근무로 쌓인 피로를 씻겨내기 위해 마시는 흔하디 흔한 자양강장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렇듯 우리 소방관이 다시 힘을 내 사명감을 가지고 어디선가 119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할 수 있는 것은 가끔씩 이렇게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나의 조직 소방(119)이 존재하는 이유 또한 이런 고마운 말을 해 주시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 누구라도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말 한마디를 듣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직분에 충실하다면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의 결과로 나타나 보람과 즐거움을 가슴으로 느낄 것이고 나아가 보다 밝은 직장과 사회가 될 것이다.

필자도 십 수 년을 119구급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지나온 날들을 회고하며 소방관의 복무신조라 할 수 있는 간절한 119정신이 깃들어 있는 ‘소방관의 기도’와 ‘First In, Last Out!(재난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마지막에 나온다)’라는 슬로건에 내재돼 있는 가치를 그동안 타성에 빠져 가볍게 생각하고 있진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초심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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