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 농민들은 좌절과 한숨 뿐이다. 일년간 애지중지 키운 농작물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린 뼈아픈 현실, 농민 누구도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박현희씨는 요즘 제15호 태풍 ‘루사’가 지나간 농작물 피해현장을 누비며 피해규모를 조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의 피해상황을 확인해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
“농업은 개별농가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처럼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정책으로부터 소외받고 자연재해에 대한 대책마련이 없는 한 농업의 미래는 불투명할 것이다.”
올해 식탁에서 만나는 각종 농산물들은 농민들의 온갖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나온 결과물이다. 일부 농가는 집중호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가까스로 수습하자마자 또다시 찾아온 태풍으로 일년 농사의 수확 자체가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박씨가 조사하는 내용은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의 피해실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회의도 크다. 피해조사 방법이 육안으로 드러나는 직접적인 피해만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낙과피해 보상은 바닥에 떨어진 과일수와 나무에 매달린 과일수를 세어 낙과율을 산정하고 그에 따른 보상기준이 정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 여파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무의 생장은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과수의 잎이 모두 떨어져 양분섭취를 충분히 못하면, 겨울나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결국 나무가 고사하거나 결실 저하로 이어진다. 이러한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박씨는 포도를 예로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포도알은 많은데 포도송이는 그대로 달려 있어 낙과율 계산이 애매하다는 것. 또한 낙과율이 계산된다 하더라도 송이에서 포도알이 몇 개만 빠져도 상품가치가 떨어져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중적인 피해에 대한 산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는 열과나 나무고사 등은 눈으로 당장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피해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또다른 애로는 피해농가를 방문했을 때 피해규모에 대한 농가의 주장과 객관적 근거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다. 심할 때는 피해규모를 축소하려 한다는 오해까지 받고 있다.
“같이 농사짓는 입장에서 피해농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지나친 항변에 당혹스러울 때도 많다”
박씨는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이와 반대로 결실이 좋아 풍년을 맞았을 때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국적으로 모든 작목이 풍년을 맞았을 때는 가격폭락으로 이어진다. 이럴 경우 생산비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는 어려움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 가격형성이 일정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농가에 돌아갈 소득은 기대하기 힘들다. 중앙정부에 기대하기 힘든 부분은 지자체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기, 강원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상당한 금액의 농업발전기금을 조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천안시도 연차적으로 농업발전기금을 조성해 다양한 농업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천안농민회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씨는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농민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시정건의를 펼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