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 교수(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건강 유지를 위해서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족 유대가 강한 문화다. 따라서 환자의 진료를 위해서 가족을 잘 활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가족은 환자의 질병 발생에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좋은 치료 자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
환자의 신체 증상은 종종 가족의 영향을 받는다. 가족이 주는 유전적 영향도 있겠지만, 가족 내에서 생기는 여러 생활사건이나 가족 관계의 어려움이 환자에게 상당한 영향(impact)을 주고 이러한 영향은 환자의 건강상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가정생활이 한 줄기 바람도 없이 평온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예기치 못하게 환자가 생기기도 하고, 이혼이나 사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외도의 사건을 경험하기도 한다. 종종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만성적인 관계의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가족의 건강은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들의 영향에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건강한 가족은 가족에게 닥치는 위기의 사건들 앞에서 잘 적응하여 더 건강한 가정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가정은 위기의 사건이 생겼을 때 혼동에 빠지고, 적절한 자원을 동원하지 못하며 가족이 갖고 있는 장점을 활용하지 못해 가족기능 자체가 어려워지게 된다.
건강한 가족의 특징은 가족 규칙이 있지만 너무 엄격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가족에게나 나름대로의 가족규칙(가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이 너무 강하면 가족 구성원들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가족 규칙의 예를 들면 ‘우리 집에서는 항상 저녁 11시 이전에는 모두 귀가해야 만 된다.’이다. 자신의 가정에서 ‘항상 ~해야 만 된다.’라는 규칙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러한 규칙이 갖는 본래의 좋은 뜻은 기리되, 그 적용은 유연성이 있게 할 필요가 있다.
건강한 가족은 친밀성이 강한 가족이다. 친밀성이 강하다는 것이 아무런 정서적 경계도 없이 감정적으로 뒤엉킨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적인 존재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존중되면서도, 가족 간에 친밀함을 위해 서로 노력하고 관계의 증진을 위해 힘쓰는 것을 말한다. 서로 신뢰하고,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지고자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간의 성생활도 친밀감의 중요한 요소이다.
건강한 가족은 가족 내에 비밀 만들기나 편 만들기가 없는 가족이다. 편 만들기는 가족 간에 불편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간에 솔직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또한 건강한 가족은 가족자원을 잘 활용하는 가족이다. 가족자원은 경제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건강에 대한 올바른 지식일 수도 있다. 가족 내에 어떤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러한 자원들을 잘 동원하여 대처할 수 있으면 건강한 가족이다. 가족은 나름대로의 회복 능력이 있다. 어떤 외부 자원이나 치료자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가족은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평온한 가정이 항상 건강한 가정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 내에 관계의 어려움들이 많이 있지만, 그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의 기대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차이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성장하는 가정이 진정으로 건강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