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5일 오후 2시 충남 공주시 왕촌 살구쟁이 암매장지 현장에서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여 명이 산기슭에 모여 유해 발굴을 위해 흙을 파기 전에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다.
“63년하고도 100일 만입니다. 남은 유해를 발굴하게 돼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곽정근 공주유족회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15일 오후 2시 충남 공주시 왕촌 살구쟁이(상왕동) 암매장지 현장.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여 명이 산기슭에 모였다. 유해 발굴을 위해 흙을 파기 전에 토지신에게 제사(개토제)를 지내기 위한 자리였다.
유해 발굴 예정지(약 세로 20m*가로 10m)가 한눈에 들어왔다. 겉흙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엷게 묻힌 일부 유해들이 드러나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개골로 보이는 유해는 세월의 풍상에 시달려 이미 쪼개지고 바스러진 상태였다.
지난 2009년 이곳에서 317구의 유해를 직접 발굴한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가 경과를 설명했다.
“예산 부족으로 80여 구의 유해를 비닐만 덮어 남겨 놓고 수습하지 못해 맘이 좋지 않았습니다. 충남도와 공주시의 도움으로 5년 만에 남은 유해를 발굴하게 됐습니다. 희생자들의 신원 및 진실규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곽정근 공주유족회장과 유족들이 유해발굴 예정지 앞에 섰다. 곽 회장은 신명에게 알리는 고유문을 통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무참히 희생돼 구천을 헤매고 있을 영령들의 유해를 늦었지만 수습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수습된 유해는 5년 전 이곳에서 발굴한 300여 구의 유해와 함께 충북대 추모관에 함께 봉안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고인들의 흔적을 찾아 수습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한 안희정 충남지사를 비롯 공주시에 거듭 감사드린다”며 비록 이 곳은 “암매장지이지만 이후 작은 평화 공원으로 조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충북 청주에서 달려온 김창규 목사는 “오늘은 억울한 영령들이 구원받고 해방되는 날”이라며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자”고 추도했다.
뒤이어 영혼을 달래는 애잔한 노랫소리가 울러 퍼졌다. 웅혼한 대금 반주 소리가 가슴을 찔렀다. 지난한 한의 울림에 참가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약 70~80구의 유해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앞으로 약 12일 동안 발굴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80여 구의 유해가 수습될 경우 이곳에서 발견된 유해는 지난 2009년 발굴 유해를 합쳐 모두 400여 구로 늘어나게 된다.
김도태 유해발굴단장(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유해수습에 열과 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 2010년 공주 상왕동 살구쟁이에서 1950년 7월 9일께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 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을 공주 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이 집단학살한 일은 ‘진실’이며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희생자 위령제 봉행 및 위령비 건립 등 위령사업 지원’ ‘유해발굴과 유해안치장소 설치 지원’ 등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