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소재 경찰수사 중, 9월초·중순 지나야 결과 나와
두정역 인도난간 추락사고지점. 멀리 두정역이 보인다.
지난 8월9일 밤11시20분, 두정역 두정육교 인도 난간에서 발생한 추락 사망사고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사고가 난지 벌써 보름이 지나고 있지만 인근 주민들이나 이용객들 상당수는 여전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다. 주변에는 추락위험을 알리는 안내문이나 안내표지판조차 없기 때문이다.
서북경찰서는 이 사건과 관련, 설계 및 유지보수의 문제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수사 중에 있다. 하지만 충격에 빠진 유가족들의 억울함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두정역 난간 추락 사망사고의 경위
큰 아들(39)이 아직 미혼인 상태에서 둘째(37)아들의 첫 출산은 집안의 경사였다.
두정동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처음 손자를 만난 강씨는 아들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선선해진 늦은 시간에 원성동 집으로 귀가에 나섰다.
강씨는 흐뭇한 기분에 아내와 함께 주변의 새 아파트도 둘러보고 1번 국도로 나와 택시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두정역 교각근처 인도를 걷던 강씨는 인도난간을 붙잡았다가 난간 구조물과 함께 3.5m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고 시각은 8월9일 밤11시20분경.
당시 인근에서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관은 즉시 사고현장을 확인하고 119 구조구급대를 불렀다. 강씨는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결국 10일 새벽4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하루 수천명이 오가는 곳. 안전을 위해 설치한 안전펜스를 잡았다가, 그것과 함께 추락해 사망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서북구청은 지난 10일(토), 강씨가 사망한 현장(두정역에서 두정역 삼거리 방향 120m 지점), 난간이 떨어져 나간 부분에 쇠기둥을 로프로 묶어 임시 보수를 했다. 하지만 사망사고인 만큼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현장은 최대한 보존해 놓은 상태. 난간 여기저기에는 녹이 슬어있고 허술하게 조여진 볼트 등이 목격되는 등 여전히 위험해 보인다.
눈앞에서 남편의 추락사를 지켜본 아내(64)와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한 가족들은 걷잡을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유족들은 “추락방지를 위해 설치한 난간이 이렇게 쉽게 떨어진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설계의 문제인지 또는 유지보수의 문제인지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술해 보이는 난간. 용접도 부실하다.
유가족,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가는 인도’
지난 16일(금)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천안 두정대교 추락방지 난간붕괴 추락사 관할 시 책임회피?’라는 글이 올라왔다.(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3&articleId=254270)
8얼26일(월) 오전 현재, 1만3000여 건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이 글에는 댓글도 115개나 달려있는 상황.
사고가 발생한 세세한 정황과 현장의 모습은 물론 책임소재 규명의 필요성, 관할기관의 책임있는 태도 등을 촉구하고 있는 이글에는 천안시와 담당구청을 강도 높게 성토하는 댓글들이 가득하다.
어렵게 수소문해 연락된 피해자의 둘째아들 강모씨는 이번 일과 관련 안타까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둘째아들 강씨는 “사고현장과 그 인근을 수차례 확인해 봤다. 인도난간의 세세한 시설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밖이 그렇게 녹이 슬고 부실한데 안은 어떻겠나. 인도가 가장 높은 곳은 6m나 되는데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금속구조물이 가접상태(본 용접을 하기 전에 서너군데 눌러 임시로 용접해 놓는 것)인 것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씨가 더 분개한 것은 TV방송에서 보여진 담당공무원의 태도였다.
강씨는 “사건과 관련, 지난 14일 방영된 KBS 2TV ‘굿모닝 대한민국’ 2부에서 담당공무원은 ‘사고직후 현장을 찾아 인도난간을 모두 흔들어 봤는데 이상이 없더라. 왜 그곳에서만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번이라도 실제 현장을 방문해 확인해 봤다면 그런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11일 직접 현장의 위험한 상황을 찍은 동영상도 있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관련규정이 불분명하면 불분명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되는데 책임을 면하려고 거짓말을 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유가족 강씨는 “가만히 있으면 제2, 제3의 이런 사고도 그저 묻혀버리고 말 수 있다. 천안시 관계자의 관리소홀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처벌, 유사 육교의 안전관리 점검 및 재발방지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정미비 속에 20년간 방치된 ‘시민안전’
녹슨 내부 부품들. 고정나사가 2개에 불과하다.
현재 법규상 교량의 난간은 2년마다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인도 난간의 경우에는 명확한 규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천안시청 관계자는 “도로안전시설 설치기준에 의하면 인도 펜스와 관련해서는 높이가 1.2m 이상 돼야한다는 것과 안전망의 간격이 15㎝미만이어야 한다는 시설 규정 등 밖에 없다. 교량난간은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지만 인도난간은 사실상 규정이 없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실상 인도펜스를 만든지 20년 가까이 되도록 한 번도 제대로 된 점검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이 관계자는 “사고 발생 이후 현장을 확인해 봤다. 사고지점은 원래 기초볼트가 4개가 박혀 있어야 하는데 2개 밖에 박혀있지 않았다. 이전에 뭔가 사고가 있어 난간을 보수한 것 같은데 그 보수가 잘못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두정역에서 두정역3거리로 내려가는 인도 중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특히 반대쪽보다 먼저 개통돼 더 많은 시민들이 오랫동안 이용해 왔다. 두정인도의 개통일은 1996년이지만 사고지점 방향은 이미 20년 가까이 이용돼 왔다는 것. 규정이 부족하다는 탓에 문제의 인도펜스는 설치 이후 한번도 제대로 된 점검·보수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서북경찰서 김병규 형사과장은 “8월 셋째주 담당 시설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불러 조사를 마쳤다. 현재 담당형사의 보고를 수시로 받고 있는 상황으로 여전히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힘들다. 수사결과는 아마 9월 초·중순 정도는 돼야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서북구청 관계자는 “사건이 마무리 되는 대로 두정역 인도는 전면 개량할 계획이다. 피해자가 입은 민사상의 피해는 시에서 가입한 보험사가 처리할 것이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가 규명되면 응분의 형사책임도 받게 될 것”이라며 “피해자들에게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유족들이 올린 다음 아고라는 천안시를 성토하는 댓글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