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46·천안목천읍)씨.
천안시 목천읍, 이동규씨 가족이 사는 작은 아파트 안은 기나긴 장마가 덜 개인 듯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 집에 들어가 인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동규 씨의 검은 팔. 긴 소매로도 가려지지 않는 그의 팔은 한 눈에 봐도 화상을 입은 흔적이다.
이동규, 이경옥 부부는 10년 동안 친구로 지내다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다. 서울이 고향인 이 씨는 매형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한다.
영업용 택시운전을 하던 그는 아내에게도 이제 중3·초6인 아이들한테도 따뜻한 아버지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가지 힘든 사건을 겪은 뒤 이런 점은 더욱 더 깊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부부로 산지 15년이 지났지만 성당에서 혼배성사만 치르고 식은 못 올렸어요. 웨딩드레스를 입혀주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라며 이 씨는 아내를 향해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2009년 3월, 전신화상을 입다
수도권에서의 복잡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천안으로 내려와 살게 된 이 씨는 품삯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체 사람과 술을 좋아하다보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가계도 궁핍해져만 갔다.
그러다 굴삭기 기사였던 처남의 소개로 삽교·예산 역사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됐고 동생과 함께 숙식을 함께하며 일하는 5인조의 큰 형님 역할을 하게 됐다.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하던 이때는 그나마 일도 잘되고 돈도 모이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운이 좋았는지 중견건설사가 수주한 충남 홍성에 22가구의 전원주택을 조성하는 공사를 하게 됐다.
하지만 사단은 바로 이 공사를 맡게 되면서 시작됐다.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2009년 3월20일. 저녁을 먹고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중 숙소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씨를 포함한 인부 5명은 화염에 휩싸였다. 간신히 숙소에서 빠져나온 이씨는 동료가 아직 갇혀있는 것을 보고 다시 불속으로 들어갔다. 동료는 구했지만 이씨는 다리에 3도 화상을 입는 등 전신에 70%의 화상을 입었다. 지금도 모자를 벗으면 화상으로 다 타버린 붉은 머리가 보인다.
“화상으로 오른쪽 눈을 제대로 감기 힘들어 매일 눈을 뜨고 자는 형편이었죠. 팔과 몸통에 입은 화상은 피부이식수술로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치료받아야할 부위가 많아요” 이씨는 차분히 그날의 악몽을 되뇌인다.
사고직후 이씨는 병원비의 압박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힘들었다. 화상치료에 바르는 특수크림은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라 하루에 18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매일 발라야 했지만 형편상 일주일에 2번밖에 바르지 못했다.
공사를 맡았던 건설사는, 사경을 헤매던 이씨 대신 이씨의 부인을 설득해 ‘회사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산재를 승인해주겠다며 서명을 받아갔다. 하지만 회사는 얼마 뒤 스스로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근로복지공단도 처음엔 승인했던 산재요양의 취소를 통보해왔다.
결국 이씨는 ‘감염될 수도 있어 위험하다’는 병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45일 만에 중환자실을 나왔다. 그리고 화상을 입어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손으로 직접 탄원서를 작성했다. 힘겹게 쓴 탄원서를 방송국, 청와대, 인권위원회 등으로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담당 소관이 아니라는 말 뿐이었다.
4년에 걸친 법정싸움, 허탈했던 승소
이씨가 개인보험으로 탄 7000여 만원의 보상금은 곧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소송비용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1년 반 정도의 재판이 이어졌고 그 해 12월, 1심에서 승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건설사는 항소를 제기했고 다시 2년 반 동안 2심 재판이 이어졌다.
선고공판을 앞두고서도 재판결과가 이씨에게 유리하게 기울자 근로복지공단은 결국 산재를 승인하고 항소를 포기해 버렸다. 1심 결과대로만 했어도 될 것 사안인데 이씨와 가족의 고통을 2년여 동안이나 끌며 허송하게 한 것이다.
건설사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던 이 씨는 결국 건설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2011년 3월부터 법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씨의 부인 경옥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 지금껏 3번이나 자살시도를 했고 2번은 응급실로 실려갔다. 한 번은 수면제 100여 알을 한 번에 먹은 적도 있다. 많이 호전됐지만 여전히 항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황.
화상으로 인해 장애 6급을 가진 이동규씨는 2010년 기초수급자로 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재판비용과 병원비는 이씨 내외에겐 여전히 버거운 짐이다. 내년에 각각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할 자녀들의 교육비도 문제다.
“기나긴 싸움에 가정이 피폐해질대로 피폐해 진 건 사실이죠. 하지만 대기업의 이런 횡포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와 같이 일했던 동생과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정당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대기업을 향한 이씨의 처절한 싸움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진희 기자·오혜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