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담한 도주행각을 벌인 30대 남자가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회삿돈 47억원을 횡령해 달아난 이 남자는 경찰이 자신을 쫓는 것을 눈치 채고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꾸는가 하면 은신처에 고성능 CCTV를 설치하는 등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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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모씨로부터 회수한 40억9000만원 |
‘무한 신뢰’ 이용한 범행
지난 2010년 5월, 전과 2범인 윤모(34)씨는 서울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코스닥 상장회사에서 재무업무를 했던 것처럼 허위로 이력서를 작성해 아산시 둔포면에 위치한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당시 윤모씨는 직원 10여 명이 힘을 합해도 해내지 못하던 재무관련 업무를 혼자서 단 몇 일 만에 해결하는 등 회사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회사의 무한 신뢰는 윤모씨의 욕망 부추겼고, 결국 그는 손대서는 안 될 돈을 손에 얻고자 범행을 계획하게 됐다.
윤모씨는 우선 자신의 재무과장 지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에게 휴가를 강요했으며, 부하직원이 휴가를 떠난 1월4일(금) 오전 9시경 회사의 법인계좌에 보관 중이던 200여 명의 급여와 회사공금 등 47억원을 본인 명의로 된 5개의 통장으로 계좌이체했다.
이어 그는 ‘아버님이 위독하다’며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왔으며, 곧바로 서울로 이동해 강남지역의 금융점포 10여 곳을 돌며 33억6000만원을 인출했다.
한편, 회사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지난 후 월요일인 1월7일에서야 윤모씨의 범행을 알게 되었으며, 아산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 한 다음 회사 자체적으로 40여 명의 전담팀을 꾸려 윤모씨 찾기에 나섰다. 특히 회사대표는 윤모씨에 대해 1억원의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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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모씨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총 8대의 CCTV로 은신처 안팎의 상황을 살폈다. 사진 속 1번 화면에 위치한 CCTV는 360° 회전과 함께 자동차 앞 유리의 전화번호까지 식별할 수 있는 고성능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속 2번 화면은 자신의 도피행각을 도운 공범이 돈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던 장면. |
도피행각, ‘한 편의 영화’
윤모씨는 범행 후 찾은 돈으로 강남의 특급호텔에서 머물며 최고급 외제차와 명품시계 등을 수억 원어치 구입했으며, 일부 돈은 유흥비로 날려 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는 백화점에서 명품가방을 구입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이서한 100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사용했으며, 가방을 구입한 다음날 급하게 수표를 되찾아갔으나 이를 계기로 경찰의 수사망에 포착됐다.
그는 이후 1월10일 전라남도 광주로 이동해 친구의 집에서 잠시 기거를 하다가 전세 7000만원을 주고 원룸을 얻었다. 또한 1월21일에는 광주의 한 성형외과에서 500만원을 주고 눈과 코, 이마에 성형수술을 받는 등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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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모씨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눈과 코, 이마에 성형수술을 받았다. 사진은 성형후 은신처 CCTV 장면. |
원룸으로 은신처를 옮긴 그는 원룸주인이 이전에 설치한 4대의 CCTV 외에도 4대의 CCTV를 추가로 설치했으며, 주인과 협의 후 총 8대의 CCTV를 이용해 은신처 안팎의 상황을 살폈다.
이중 한 대의 CCTV는 조이스틱을 이용해 360° 회전과 줌 기능이 가능한 고성능 CCTV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들 CCTV는 경찰의 검거작전을 무산시키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 2월1일 밤 9시경 윤모씨 검거에 나선 경찰이 은신처에 대한 기습작전을 펼쳤지만 CCTV로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돈가방을 줄에 묶어 밑으로 내린 뒤 이웃집 옥상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 쪽 팔이 골절됐고, 2억원 가량의 1만원권은 미처 가져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CCTV를 이용해 경찰의 검거작전을 피해간 윤모씨는 2월4일 자신의 고향이자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전남 목포의 한 섬으로 들어가 이곳 야산에 횡령한 돈의 일부인 16억원을 묻었으며, 2월13일 다시 찾아가 비닐을 이용해 돈이 젖지 않게 한 후 다시 묻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16억원은 야산의 1m 땅속아래가 아닌 그의 어머니가 창고에 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형수술과 CCTV 등을 이용해 영화와 같은 도주행각을 펼친 윤모씨도 경찰의 끈질긴 추적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지난 2월20일 전남의 또 다른 은신처에서 경찰에 검거 됐으며, 이에 앞선 2월5일에는 윤씨의 도피행각을 도운 고향친구와 사회선배가 체포됐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아산경찰서 지능팀 고욱환 팀장은 “윤모씨는 경찰의 추적을 알면서도 전혀 흐트러짐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성격이 차분했다”며 “원룸에 설치한 CCTV 중 한 대를 자신의 도피행각을 도운 지인이 돈을 가져가지 못하는 용도로 사용할 만큼 냉철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팀장은 “윤모씨가 횡령한 47억원 중 40억9000만원을 회수했으며, 검찰에 보고 후 회사에 돌려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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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모씨는 횡령한 회삿돈 33억6000만원 가운데 16억원을 고향의 야산에 묻었다고 했지만 경찰조사결과 그의 어머니가 창고에 보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16억원을 찾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담당경찰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