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회는 10여년간 묵묵히 무료급식 봉사를 펼쳐오고 있다.
“조금 봉사해놓고 생색내는 곳도 많지만 상록회 회원들은 마음에서 우러나 돕는 진짜 봉사자들입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시에서도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편안한 데서 봉사하는 것은 참 봉사가 아닙니다. 진정한 봉사를 하는 여러 분들은 복받고 오래사실겁니다.”
지난 21일(월) 오후, 청룡동을 연두순방하고 현장방문지로 (사)상록회 천안지회를 찾은 성무용 시장은 상록회가 그동안 진행해온 무료급식과 봉사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천안에 상록회가 생긴 것은 이제 10여 년. 이날 성시장을 맞은 상록회 봉사자들은 그간의 고생을 떠올리며 새삼스레 진한 감회에 젖어 들었다.
조용히 또 묵묵히, ‘무료급식 10여년’
상록회에서 하는 일은 독거노인 봉사사업, 소년소녀 가장지원사업, 양로원·장애인 돕기사업 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일은 바로 무료급식 사업이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청수동 226-6번지 청수산림공원 비탈에 자리잡은 조립식 건물에서 인근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현재도 매주 이곳을 찾아 식사하는 어르신들은 적게는 40명에서 많게는 50~60명 정도가 된다.
이순옥 회장은 상록회에서 처음 봉사를 시작한 것이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청룡동에서 통장을 한지 4~5년 쯤 됐던 해 였을 거에요. 예전부터 남들이 봉사하러 다니는 것을 보면 참 보기 좋더라고요. 그래서 ‘막내아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봉사를 하리라’ 막연하게나마 마음을 먹고는 있었죠. 때마침 당시 노인회장님의 적극적인 권유로 상록회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당시도 상록회는 무료급식을 해오고 있었다. 이순옥 회장은 청소, 목욕, 빨래 등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서부지회의 지회장이 되고 2004년 3월17일 문화원에서 창립식을 가졌다.
“당시 직산, 성거, 입장, 두정동 봉사해야 할 대상들의 집을 찾는 데만 닷새가 걸렸어요. 집에서 반찬을 해서 이집저집 찾아다니며 가져다드리고 정말 열정하나로 몸이 힘든 줄도 모르고 애쓰던 시절이죠. 운영자금이 부족해 매년 일일찻집을 하고, 김도 팔고, 흥타령축제 때는 식당도 운영해 기금을 마련하곤 했어요.”
그렇게 봉사를 해오다 2006년 동부지회와 서부지회가 지금의 상록회천안지회로 통합되기에 이르렀고 구성동에 보증금 200에 월 20만원짜리 사무실을 처음 마련했다. 이후 2년이 지나서 청수동에 새 사무실을, 2008년에서야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됐다.
상록회는 현재 30평이 채 안 될 것 같은 공간에 자그마한 사무실, 주방과 테이블 6개인 식당으로 구성돼 있다. 이순옥 회장은 그 세월동안 월·수·금 해오던 무료급식이 화·목 이틀로, 현재는 수요일 한 번으로 줄일 수 밖에 없게 돼 안타까워 한다.
회비도 내야 하고, 할 일도 많은 ‘상록회’
“상록회는 여타 봉사단체와는 달리 회비도 내면서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봉사단체입니다. 그러다보니 오래 못하시는 분 들이 많아요. 한 두어달 못 나오면 회비는 밀리고 그러다보면 봉사하는 주부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하거든요. 처음에는 매월 자동이체를 신청하셨던 시의원들조차 끊어버리기도 하는데요(웃음). 현재 실제로 활동하는 회원들은 20여 명 매주 나오셔서 도와주시는 분들은 15명 정도되요. 정말 진심으로 봉사하시는 분들이랍니다.”
상록회의 배식은 오전 11시30분부터 시작된다. 구성동 구 달동네, 청수 1·2통, 주공4단지, 중앙시장 쪽에 사는 어르신들이 주로 찾으시는데 11시면 급식소 앞에서 대기하고 계시다가 12시 쯤이면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가실 정도로 기다리고 계신다.
예년부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부족한 운영자금이다. 시에서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제 6년째. 200만원으로 시작해 현재는 600만원 정도가 지원되고 있다.
“시 지원금이 1년에 한번씩 5월쯤에야 나와요. 이게 3월달 정도에만 지급되도 좀 낫겠어요. 지원금이 나오기 전까지 1~4월은 자체회비를 조달해 운영하려니까 힘이 많이 들어요. 제 위치가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해야 하는 위치지만 어디가서 그런 얘기 웬만하면 안하려고 해요. 혹시나 어렵게 받아온 도움도 어르신들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조건도 없이 전달해드려요. 시가 보조금을 지급해 줄때 실제로 현장들을 답사해서 진짜 필요한 곳에 실질적인 지원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남편과 가족들, 회원님들이 없었더라면…’
이순옥 상록회 천안지회장.
봉사를 시작한지 10년 정도가 되다보니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도 많았다.
예전에 봉사하던 직산 살던 한 시각장애 할머니는 이 회장이 가는 날을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지 늘 “천사! 이제야 왔어?”하며 기다렸다 반겨주곤 하셨다. 눈이 안 보이시다보니 바늘귀 꿸 것, 청소할 것, 살림살이 위치 등 필요한 것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하나하나 일러주시던 할머니는 이제 요양원에 가셨다고.
또 좀 부족한 아들과 함께 살던 할머니도 기억에 남는다.
“집이 어찌나 더러웠는지 5명이 하루종일 청소하고 목욕시키고 이불을 태우고 새옷, 새침구를 교체해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새로 시집을 온 것 같다’며 기뻐하셨었죠. 다음에 갔더니 ‘상록회 만세!, 상록회 만세~!’ 하시면서 뛰어 나오시더라고요. 열심히 준비한 음식 맛있게 드시고 칭찬해 주시고 꾸벅 인사하시고 가는 모습을 보면 지금도 힘은 들지만 보람이 커요. 그런 것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아요”한다.
그동안 그녀가 이어온 이런 봉사는 사실 남편의 외조가 없었더라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남편은 지금도 ‘광덕산에서 늘 쓰레기 봉투 메고 휴지줍는 사람’이다.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일일찻집이라도 열면 티켓의 절반은 남편이 팔아줬고 지금도 식자재들을 사러갈 때면 실어주고 내려주는 게 다 남편의 몫이다. 자녀들도 이런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격려해 준다.
그렇게 어렵게 봉사를 이어온 이순옥 회장은 지난해 ‘천안시여성단체협의회장’에도 취임해 다양한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예전에 디스크로 1년여를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어요. 올해도 대퇴탈장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가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어서 그런 거래요. 정말 몸이 아팠을 때는 ‘남들이 잘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내 몸이 이렇게 상하면서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설움이 북받치더라고요(눈물). 정말 남편과 가족들, 회원님들이 없었더라면 혼자 이겨낼 수 없었을 거에요.”
‘07학번 사회복지학과 이순옥 학생’
이순옥 회장의 열정은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그것이다.
2007년 50대 중반이 넘은 나이로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2011년 졸업하면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냈다. 서른살이 넘게 차이나는, 자식보다 어린 동기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다.
“상록회 급식하는 날을 빼고 시간표를 짜느라 애를 많이 먹었죠. 그래도 수업은 한 번도 안 빠졌어요. 나이차가 나다보니 어울리지 못해 고민도 갈등도 많고 눈물도 많이 흘렸죠. 이제 그동안의 경험과 배운 것들을 접목해 맘껏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다른 바람은 상록회가 더 이상 어려운, 꺼려지는 봉사단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단체들처럼 회비없이 운영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지정후원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방법이겠죠. 진심으로 봉사하는 우리 상록회에 많은 관심과 후원, 참여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들도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동안 회한의 감정들을 짧은 시간에 토해낸 이순옥 회장은 인터뷰 말미 다시 긴 호흡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항상 푸르른 ‘상록’ 그 이름처럼.
<이진희 기자>
상록회의 무료급식은 매주 수요일 오전11시30분부터. 구성동 구 달동네, 청수 1·2통, 주공4단지, 중앙시장 쪽 독거어르신 40~50명은 늘 이날을 기다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