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백석동 승지원에 백석의 전기 ‘시인 백석’ 출간의 주역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이한배 약산샘물 충남총판 대표, 송준 작가, 이은상 흰당나귀 출판사 대표. [사진제공 이한배]
올해가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 1912년~1996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인 백석’이 지난 9월5일 책으로 발간됐다.
‘시인 백석’(저자 송준, 흰당나귀)은 모두 4권으로 1권 ‘가난한 내가, 사슴을 안고’, 2권 ‘만인의 인연 쓸쓸한 영혼’, 3권 ‘산골로 가자, 세상을 업고’와 ‘백석시 전집’으로 구성됐다.
작가 송준은 백석에 대한 국내 최고 권위자이다. 백석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을 10여회, 러시아를 5회 이상 방문했고, 일본을 10여 차례 방문했으며, 특히 일본 청산학원을 5회 이상 방문해 백석의 청산학원 수학 당시 학적부 사진을 발굴,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처음 백석의 시와 만난 것은 1941년 북쪽 항구 어느 서점에서다. 새로 나온 시집 한 권을 꺼내 보니 백석 시인의 서시가 실려 있었다. 그 시는 이 세상에서 숨어 사는 아름다운 시인론이었다.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로 시작되는 20행의 이 시는 세상이야 알아주든 말든 송아지와 꿀벌이 시인인 것을 알아주고 하늘의 사랑만을 받으면 족하다는 내용이다. 나는 그때 이 시에서 받은 감동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으며 시인의 기본이 되는 이미지로 굳건히 가지려고 애써 왔다.”
이번에 펴낸 ‘시인 백석’은 1994년 채 출간하지 못한 3권이 포함됐다.
1, 2권은 백석이 열아홉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화려하게 데뷔한 뒤 투박한 북방 사투리로 토착적 정서를 노래하면서도 누구보다 모던한 감각을 지닌 시편으로 사랑받았던 시인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3권에서는 고당 조만식의 통역비서로 활약했던 시절의 백석, 평양 출신 영화이론가였던 오영진(1916~1974)이 쓴 ‘하나의 증언’에 등장하는 백석과 김일성과의 만남, 당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산간오지인 함경도 삼수로 유배되어 양치기로 살아야 했던 후반기 행적이 취재와 증언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가 송준은 1994년 ‘시인 백석’ 1,2권을 펴낸 바 있다. 하지만 당시 3권은 내지 못했는데
송준 작가는 시인 백석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서 모든 것을 덮었다. 혹시나 북에 생존해 있는 시인 백석과 그 가족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 때문이었다.
3권의 내용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던 상황에서 백석을 좋아하고 백석의 시를 사랑하는 천안지역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작가 송준과 이들이 의기투합, 마침내 10여년간 창고에 잠자고 있던 백석의 방대한 자료가 세상과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게 됐다.
백석에 미친 사람들
‘시인 백석’이 세상에 나오기 까지 그 과정은 한마디로 영화와 같다.
몇 달 전 까지 복자여고 인근의 헌 책방(현 갈매나무) 사장이었던 이한배(51)씨. 1999년 책방을 시작한 그는 어느 날 후배로부터 백석에 대해 아냐고 물었을 때 모른다고 답했다.
“후배가 어떻게 책방을 하면서 시인 백석에 대해 모르냐는 말을 들었을 때 자존심 상했어요. 그래서 백석의 시를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백석에 대해 빠질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한배씨가 인터뷰 중 백석의 시 ‘산숙’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산숙을 풀이하면 산에서 잠을 자다는 의미겠죠. 1930년대 가정생계를 위해 만주로 일하러 가는 가장의 애환이 담긴 시에요. 가슴에 사무치는 감정을 관조하면서도 민중의 아픔과 함께하는 불가에서의 ‘하와중생’과 같은 표현이죠. 놀라운 것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시는 현재성을 갖고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탁월한 토석어, 백석 매니아를 형성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인거죠. 3분만 백석의 시를 읽으면 환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헌 책방의 10년째 단골 손님이고 백석의 매니아였던 김중일(52)씨는 최근 이한배씨로부터 헌책방을 인수했다. 책방 이름 ‘갈매나무'는 백석 시 ’남신의주…‘의 마지막 행에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로 등장하는 활엽수다.
여기에 아산에서 토종 선인장 농사를 짓는 김복현(44)씨가 가세했다. 기회가 되면 백석의 책을 내고자 했던 그들이었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그러다 이한배씨의 절친한 후배인 이은상(45·승지원 대표)가 조건 없이 자금을 대기로 하고 합류했다.
“사실 전 백석에 미치지 않았어요.(웃음) 형님(이한배씨)이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책을 내고자 결정했던 것은 작가 송준을 만나고 나중 일이었다. 그들은 지난 4월 지인을 통해 작가 송준 선생을 무작정 만나러 갔다.
당시 송준 선생은 대장암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 그렇지만 백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것만으로 그는 3시간 넘게 이들과 대화 했다.
이렇게 작가 송준과 백석 매니아들이 모여 불과 5개월 만에 책이 발간됐다. 천안과 서울 사무실을 오가며 밤을 새기를 밥 먹듯이 했다.
송준 작가는 전화인터뷰에서 편집위원들인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시인 백석의 자취를 추적하는 과정은 고단한 삶의 여정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백석과 멀리 있고자 했던 내게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은 하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이 분들이 병원을 찾아왔을 때 깜짝 놀랐고,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먼지 속에 잠들어 있던 원고를 털어내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다른 자료들을 함께 정리해 마침내 책을 펴내게 됐는데 그 공로는 바로 천안에서 백석을 사랑하는 그분들의 덕택입니다.”
<공훈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