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고 차지하고 있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계속 그러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꼭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 주변에 있어 나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는 여러 색깔의 친구들 정도라고 해야 하나, 친구라고 선뜻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이, 요 녀석들이 저마다 다른 겉모습과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친해질 만하면 다른 모습을 보여 좀처럼 깊숙해지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작가 서문 중에서-
남서울대 오혜진 교수가 ‘소설과 수다떨기’(사람과 이야기들, 292쪽)를 펴냈다. 오 교수는 한번 쯤 소설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소설을 읽고 감상을 써라 압박(?) 했는데 어느 날 저는 감상을 쓰지 않고 있더라고요. 1년 전부터 일기 쓰듯 읽은 소설의 감상을 썼어요. 책을 내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책까지 발간하게 됐어요.”
오 교수가 어렸을 적부터 책을 가까이했던 첫 번째 원인 제공자는 엄마였다. 책을 읽기 좋아했던 오 교수 모친은 지금도 돋보기를 쓴 채 책을 읽는다.
“책장사 아저씨들이 집집이 돌아다니던 1970년대 우리 엄마 역시 단골이었고, 저는 그 덕에 집에서 뒹굴며 책들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어요. 그때 읽은 계몽사 판 세계문학전 50권은 아직도 그리워요. ‘소공녀’, ‘소공자’, ‘십오 소년 표류기’는 지금도 생생해요.”
수다 하나 ‘젊어서 서러운 청춘들아’
‘소설과 수다떨기’의 첫 단락은 ‘젊어서 서러운 청춘들아’다.
88만원 세대들. 작가는 모두 거쳐 가는 꽃다운 시절이 이제는 절망과 좌절의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도 모두 이 청춘들을 거치고 거쳤어요. 이들 역시 누구보다도 청춘의 서러움과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청춘들에게, 혹은 자신의 청춘 시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어요. 나 역시 이 소설들을 통해 위로받고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김혜나 ‘제리’, 전석순 ‘철수 사용 설명서’, 강희진 ‘유령’,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한윤섭 ‘봉주르 뚜르’ 등 작가는 청춘에 의해, 청춘을 위해, 청춘에게 바치는 소설들로 묶었다.
수다 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의 나라’는 배명훈 ‘타워’, ‘안녕, 인공존재’, 김남일 ‘천재 토끼 차상문-한 토끼 영장류의 기묘한 이야기’, 이평재 ‘눈물의 왕’,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김중혁 ‘미스터 모노레일’, 김장환 ‘굿바이, 욘더’를 묵었다.
“꼭 젊은 작가들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통통 튀는 상상력의 발선은 새로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고 환호하게 만들어요. 소설의 시·공간을 확장시키며 자신의 한계치가 어디인지 시험하려는 듯 튀어 오르는 소설들이죠.”
수다 셋 ‘욕망이라는 이름의 폭력’, 수다 넷 ‘역사 속에서 놀아 보자’, 수다 다섯 ‘노작가들의 웅숭깊은 내공의 힘’, 수다 여섯 ‘일본소설을 보다’, 수다 일곱 ‘이국적 향취에 취하는 날들’ 작가는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읽은 책들에 건넨 수다를 모두 7개의 장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책은 마흔 여섯 권의 소설들에게 필자가 각각의 소설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과 느낌을 솔직담백하게 담았다. 필자는 이 글들을 멋진 평론이 아닌 잡문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것보다는 여러 모습을 띠며 갖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소설들에게 거리낌 없이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을 쏟아내고 있다.
1930년대 한국추리소설 연구
오혜진 교수의 또 다른 저서는 ‘1930년대 한국추리소설 연구’다. 2008년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어문학사에서 2009년 출간됐다.
“소설은 장르 구분 없이 좋아하는 편이에요. 추리소설은 솔직히 친한 친구는 아니라고 해야 하나.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새로운 주제를 알아보다 선택한 것이 1930년대 한국추리소설이죠.”
논문을 준비할 시기, 1930년대 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1930년대 김내성 작가가 추리소설을 대표했다.
“당시 추리소설을 쓴 이가 김내성, 김동인, 염상섭 작가 등이에요. 작품 수는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출발점이라고 해야겠죠. 식민지 시대 일제 수탈에도, 그렇기에 더욱더 대중은 소설, 영화 등 문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죠.”
오혜진 교수는 1972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이후 몇 군데 직장을 거친 후 다시 동대학원 국문과에 적을 두었다. 2002년 겨울에 '김승옥론: 내면의식과 작품의 변모 양상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2008년 여름에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외, '1930년대 아동 문학의 전개', '대중소설론의 변천과 의의 연구', '근대 추리소설의 기원 연구', '근대 대중소설에 나타난 장르믹스의 변모양상', '계몽과 낭만의 소통, 역사 추리소설로 거듭나다' 등 근대와 대중문학 관련 논문이 다수 있다.
현재 남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글쓰기와 현대소설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공훈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