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봉주가 정확히 언제부터 뜀박질을 시작했는지 어머니 공옥희 여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어릴 때부터 운동에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에만 전념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가정형편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넉넉한 뒷받침은 해줄 수 없었다.그냥 그렇게 지켜보고 격려해 주고, 말없이 기도해 주는 것 외엔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이 선수가 학교 다닐 때부터 그 누구보다 안타까움에 애끓이고 눈물지었던 것은 바로 이봉주(32·삼성전자) 선수의 어머니, 공옥희 여사다.“내 손자가 운동한다고 하면 말릴 거구먼. 아들 하나로 족하지, 그 힘든 걸 또 어떻게 지켜봐. 정 하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리고 싶어.”아들이 운동하는 동안 공 여사가 얼마나 안타깝게 지켜봤는지 알 수 있었다.‘꺼벙이, 기계인간, 출세한 촌놈, 늦깎이 스타, 만년 이인자 그리고 오똑이.’ 흔히 스포츠 스타들에게 세련되고 환상적인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이봉주 선수에게 붙어 다니는 별명은 투박하고 우직한 느낌 그대로다.이봉주 선수의 별명엔 화려한 수식어 대신 그의 역경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꾸밈없고 소탈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그러면서도 웬지 처절한 느낌마저 드는 이봉주 선수의 뒤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다.지난달 아버지 이해구(향년 74세)씨의 유고 소식에 달려왔던 이봉주 선수는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꼭 우승해 아버지 영전에 바치겠다”고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어머니는 17일(화) 새벽 보스턴에서 날아온 승전보와 함께 바로 먼저 간 이 선수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지었다.이 선수에게는 휴가기간 잠시 들르는 고향집이다. 그리고 또다시 훈련 일정에 맞춰 떠난다. 집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때문에 어머니는 일년 내내 이 선수의 빈자리에 대한 회한이 남는다.허전한 마음이 들 때면 아들이 그동안 선수생활을 하며 받아온 각종 메달과 트로피를 어루만진다. 장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들의 사진첩을 들추는 것도 각별한 자식사랑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공 여사는 일년에 한 두 번 집에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만나는 기쁨보다 곧 떠날 것을 아쉬워한다. 이처럼 공 여사의 보이지 않는 자식사랑이 이 선수의 든든한 버팀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이제 가정도 꾸리고,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살아야지.” 공 여사의 가장 큰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