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지난 23일(화) 오후 5시무렵 을씨년스런 공설시장 풍경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증금 3천만원에 월 70만원씩 전세를 내놔도 세입자가 줄을 섰다. 그런데 요즘은 보증금 한푼도 없이 월 10만원씩만 받는다고 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
천안시 공설시장에서 40여년간 상업을 했다는 김종은(65)씨의 말이다.
“지난 한 해동안 세입자만 3번 바뀌었다. 한때는 무슨 장사를 해도 잘 됐는데, 요즘은 무슨 장사를 해도 몇 달 버티지 못한다.”
오세영(61)씨가 거들었다.
오씨는 “농촌지역만 이농현상이 있는 게 아니다. 도심지 한가운데서도 인구이동이 급격히 늘어나 요즘 재래시장의 고령화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예로 천안초등학교 주변의 상권이 침체되자 학생수가 매년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더이상 구도심의 상업지역에는 젊은 사람들이 살지 않기 때문에 도시학교 붕괴도 멀지 않은 말이라고.
“선거전엔 재래시장 활성화시켜 준다고 목청에 힘줄 돋우며 줄기차게 찾던 사람들도 선거 끝나고 나면 발길을 뚝 끊는다니까. 다음 선거때까진 아쉬울 게 없다 그거지. 이제 유권자도 얼마 안되니까 그나마 찾지도 않는구만.”
지난 30일(화) 비내리는 공설시장 모퉁이의 한 상가에서 비를 피해 모여 있는 상인들과 2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대형할인매장이 지역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재래시장은 지금의 천안을 이룩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곳이다. 한때 천안시 세금의 반 이상이 대흥동과 사직동에서 걷힌 돈이니까. 그리고 서민들의 물가안정과 정서에도 가장 적합하다. 따라서 지금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주장은 정당한 것이다.”
생존권을 주장하는 시장 상인들에게 일일이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열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10년전만 해도 평당 7백만원까지 치솟았던 공시지가도 매년 하락해 현재는 4백만원 정도. 그리고 내년이면 또 얼마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공시지가는 4백만원으로 나타나 있어도 실거래가격은 평당 2백만원 수준이다.
일부 상인들은 부당하게 세금만 더 내고 있다고 불평한다. 또한 해마다 이의제기를 해도 해당관청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넋두리했다.
그러면서도 상인들은 요즘 천안시의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예산이 확보된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집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집행했을 경우 사전전거운동에 해당된다는 것인데 이해할 수가 없다. ”장화순 공설시장 번영회장 말이다.
장 회장은 주차장과 돔시설이 갖춰지면 그에 걸맞는 영업형태가 정착되고, 상권이 활성화되며 떠났던 상인들마저 되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래시장도 이제 변해야 한다. 생활수준이 바뀌고 소비패턴이 변하는데도 예전 가난했던 시절의 구시대적 경영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는가.”
재래시장에서 7년간 분식집을 경영했다는 김남호(49)씨는 더 이상 천안시의 재래시장은 상권회복이 불가능하다며 체념했다. 김씨는 현재 매출이 7년전에 비해 20∼30%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이젠 김씨도 더 늦기전에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오세영씨는 “천안을 대표할 만한 재래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어느 도시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재래시장 하나씩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런데 유독 천안에만 대표시장이 없다.”
사실 심각할 정도로 침체된 재래시장을 앞으로도 계속 끌어안고 지속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는 답변을 갖기란 힘들 것이다.
오세영씨는 이렇게 주문했다. “천안시를 책임질 천안시장부터 실?국장, 과장들까지 모두 한 점포씩 맡아서 일일 판매를 실시하고 현장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오후 4시부터 2시간 넘게 이곳 상인들과 인터뷰하는 동안 단 한명의 손님도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