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중 해임이라는 극단적인 징계를 당한 김동근 교사가 무거운 표정으로 교문을 나서고 있다.
“어린 시절 수업료를 내지 못해 여러 번 교무실에 불려 다녔습니다. 30여 년이 흘러서도 그 기억을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무상교육을 정책으로 내건 정당이 있었습니다. 기꺼이 그 정당에 후원하게 됐습니다.”
“민주노동당 뿐만아니라 음성꽃동네, 기아구호단체, 장애인단체, 교육관련 단체들에도 후원을 했습니다. 힘들더라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마세요. 돕고 싶은 마음을 꼭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세요.”
“마지막으로 차렷, 경례 하지말고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하자”
“선생님 사랑합니다.” “나도 너희들 사랑한다.”
“학교·학생들에 대한 그리움만 사무칠 뿐, 한 점 부끄러움 없다”
“우리 선생님은 아무 잘못 없어요”. 찬 바람을 맞으며 부당징계를 알리는 제자들.
22일(월) 천안 성환고 김동근 교사(영어)가 23년 동안 봉직하던 교단을 떠났다.
진보정당에 월 1만원씩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지난 5일 충남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김동근 교사는 강당에서 학생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학생들도 숙연한 가운데 군데군데 훌쩍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어서 1학년6반 교실에서 학급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 시간이 주어졌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한, 262일을 기억하며 노란 종이 장미 262송이를 접어주었다.
추운 겨울 따뜻하게 지내라고 밤색 목도리와 스웨터를 선물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꼭 돌아온다는 약속과 함께 빨간 장미 한 송이씩 쥐어주며 손을 꼭 잡았다.
현관 앞까지 따라 나오는 아이들을 교실로 들어 보내며,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선생님의 뒷모습은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선생님 저희들의 장미꽃을 받아주세요” 스승과의 안타까운 이별.
“우리 선생님은 잘못한 게 없어요!”
22일 저녁7시 천안역 광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전교조 충남지부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유난히 쌀쌀했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충남 곳곳에서 멀게는 서천지역 교사들까지 모여들었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다 나온 교사도 있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참가해 지지에 나섰다.
한자리에 모인 200여 교사들은 비리도 아니고 특별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 교사를 학기중에 해임해버린 교육부와 교육청을 성토하며 향후 강도 높은 대응을 천명했다.
이 자리에는 김동근 교사가 담임했던 반 학생들과 지도했던 풍물반 학생들까지 나와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고 나섰다.
“우리 선생님은 잘못한 게 없어요!”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벙어리 장갑까지 끼었지만 빨간 코끝은 감추지 못한 제자들은 스승을 사랑한 이유로, 선생님은 제자들을 사랑한 이유로 원치않는 찬 바람을 맞아야 했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는 서명운동과 탄원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시 교단위에 설 날을 그리며’
“앞으로 전교조 충남지부를 중심으로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는 서명운동도 벌이고 탄원서도 넣을 예정입니다.”
24일 만난 작지만 강단있는 체구의 김동근 교사는 다소 감정을 추스린 듯 해 보였다.
하지만 학교에 대한 그리움만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어제 앨범을 하나 보내왔다. 반 아이들 하나하나의 생생한 표정을 앨범으로 담아 선생님께 전달한 것이다.
“이틀 밖에 안 됐는데 너무 마음이 허해요. 아이들도 너무 보고 싶고요. 아침에 아내를 출근시키고 자동차 핸들이 자연스레 학교(성환고) 쪽으로 향하다라고요. 학교에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정문 앞이라도 한 번 지나가볼까. 아이들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지켜볼까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어요(웃음)”
수능을 앞둔 큰 아들에게는 해임 직전까지도 아버지가 겪은 과정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둘째는 이제 중2. 아버지로써의 부담은 적지 않지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기억해 줄 것을 믿는다.
교원단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이례적으로 시 의회 의원들까지 나서 김동근 교사의 학기중 해임을 막으려고 했지만 서늘한 징계의 칼날에 비해 일선 교사가 저항할 수단은 꽃잎처럼 약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동료들은 그가 오래지 않아 다시 교단에 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이진희 기자>
진보정당에 월 1만원씩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지난 5일 충남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은 성환고 김동근 교사.